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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1.

자화룡(雌火龍) 리오레이아 (7)

 

 

빠각, 콰드득!

뼈를 부러뜨리는 듯한 소리가 불길을 집어삼켰다. 미간과 눈가 그리고 귓등에 고통과 같은 아찔함이 찾아왔다. 마치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억지로 두 눈을 뜨고 있었다.

돌진해오던 리오레이아가 그대로 다른 리오레이아의 목을 물어뜯었다. 목이 물린 리오레이아는 고통스러운 듯 더욱 짙은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람은 검붉은 파도를 불러 일으키고 사방에 검은 안개가 자욱해졌다. 두 다리로 지탱하고 서있던 리오레이아는 새까만 연기를 비명처럼 내뱉으며 뒤로 넘어진다.

눈에 익은 광경이 아니었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선 다행인 것은 랜든이 공격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속력을 더 내어 달렸다. 쓰러진 두 마리의 리오레이아의 관심을 끌어도 되지만, 둘이 싸우는 중이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좋은 상황이었다.

랜든은 그 자리에서 돌진해온 리오레이아의 목 바로 아래에 있다. 고개를 쳐들어 리오레이아가 동족의 목을 물어뜯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의 커진 눈동자, 꼭 쥔 한 손 검, 어찌할 줄 몰라 멈춰선 두 다리가 이제 확실히 보였다. 그에게 닿기까지 몇 미터 남지 않았을 때, 그의 모습이 잔상처럼 흐리게 보였다. 그리고 눈 한 번 깜짝하자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리오레이아의 한 쪽 다리가 스쳐 지나갔다. 번개 이후에 찾아오는 천둥 소리처럼, 큰 소리가 뒤따랐다.

랜든은 돌진해오던 리오레이아의 다리에 치였다. 두 마리의 리오레이아는 완전히 쓰러져서 몇 미터를 더 나아갔고 그곳에 휩쓸린 랜든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곳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목이 물어뜯긴 리오레이아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돌진으로 인해서 자신의 무게에 균형을 잃고 쓰러진 리오레이아에게 달려들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일어나는 리오레이아의 머리를 발도로 벤다. 머리는 한 아름 정도의 바위만하다. 용의 비늘은 벤다는 느낌보다 단단한 돌을 긁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감촉은 언제나 기분이 나빴다. 내려 벤 직후, 무릎을 굽히고 한쪽 손목을 안으로 비틀며 오베론을 힘껏 쳐들었다. 그대로 올려 베자 타격이 있는지 리오레이아는 눈을 감으며 움찔했다. 그 사이에 재빨리 검을 거두고 랜든을 찾았다. 멀리서 겐다 할아범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 등 뒤였다. 목에 이빨 자국이 난 리오레이아가 어느새 일어나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벴던 리오레이아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섬광탄을 머리 위로 던져 터뜨렸다. 겐다 할아범은 눈치껏 눈을 감았기를 바랄 뿐이다.

섬광탄이 터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강타한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로 빛을 피했다. 빛이 사라지자마자 눈을 떴고 두 마리의 리오레이아를 확인했다. 두 마리 모두 섬광탄에 당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이빨을 드러내고, 할퀴고, 꼬리를 휘둘러댔다.

 

여기다! 젠장, 어서 이리로 와. 부축해서 끌어내야 해!”

 

겐다 할아범의 목소리를 따라 뛰었다. 무언가에 의해 몇 그루의 나무가 부러져 있는 곳이다. 할아범은 무릎을 꿇고서 랜든을 안고 있었다. 한 쪽 팔로 그의 목을 받치고, 다른 팔로는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가 입고 있었던 갑옷은 완전히 찌그러져서 뒤편에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그의 몸 또한 마찬가지로 성한 곳이 없었는데 특히 오른팔은 가장 심했다. 팔꿈치 방향이 완전히 돌아가 있는 데다가 팔꿈치 바로 아랫부분에서는 뼈가 드러나 보였고 피가 계속해서 났다. 그 아래로 손목 위까지도 두 세 군데는 부러진 듯 했다. 출혈은 말할 것도 없다. 할아범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랜든은 신음이 섞인 비명 소리를 내었다.

 

이건 위험해. 부상 수준이 아니야.”

 

할아범은 그를 일으키는 것을 포기했다.

 

곧 저 녀석들 시력도 돌아올 거야. 만에 하나에 대비해서 잠시만 막아. 옮기다가 뒤를 잡히면 정말 끝이다. 아이루라고 해도 쉽게 도망칠 수 없어.”

 

내게 이렇게 말하고 할아범은 중지와 엄지를 이어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고 그 끝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것을 힘껏 한 번 불고, 아주 잠깐 쉬었다가 다시 불어 숲 속으로 신호를 보냈다. 메아리가 되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등 뒤에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레이아의 시력이 돌아왔다. 그때 마침 두 마리의 아이루가 신호를 받고 두 발로 달려왔다. 나머지 두 발로는 수레의 손잡이를 잡아 빠른 속도로 끌고 오고 있었다. 다른 두 마리는 회복약이 든 아이루용 가방을 매고 수레에 타고 있었다.

한 번 더 리오레이아의 포효 소리가 들린다. 나를 바라보고 지른 소리인 듯, 분명하게 들렸다. 나는 슬쩍 고개만 돌려 보았다. 내게 머리를 맞은 녀석이 내 쪽을 쳐다보고 목을 길게 뻗고 있었다. 녀석은 긴 목 위의 비늘들을 세웠다 눕혔다 반복해 부딪쳐댔고 얇은 쇠사슬 뭉치가 흔들리며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겐다 할아범이 한 숨을 내쉰다. 랜든을 두 팔로 들어서 수레 위에 태우고 있을 것이다.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사냥해도 된다.”

 

리오레이아와 눈을 맞추면서,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의뢰 받은 것 이외에는 사냥하지 않아. 할아범.”

 

그리고 몸을 돌렸다. 두 손을 폈다 접었다 반복하며 한 걸음씩 리오레이아에게 다가갔다. 다른 리오레이아는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구를 공격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이 멎고 움직임도 멎자, 어느덧 이 주위의 불길은 잦아들어간다. 리오레이아의 목을 울리는 낮은 울음소리만이 불씨를 살릴 뿐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대치하고만 있었다. 겐다 할아범과 아이루는 수레에 랜든을 태워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상하게도 주변을 살피기만 하던 리오레이아는 하늘로 날아올라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녀석의 목에서 흐르는 피가 불빛을 반사시켜 분명히 보였는데,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았다. 한 두 번 물어뜯긴 것이 아닌 듯싶다.

 

그럼.”

 

나는 한 발을 내딛자마자 무릎을 굽혔다가 힘차게 폈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내 움직임에 흥분한 리오레이아는 마주 달려온다. 리오레이아의 머리에 부딪히기 조금 전에 한 손으로 오베론을 걸쇠에서 뽑아내며, 다른 손으로 잡아 그대로 내리친다. 땅에 일부가 박힌 오베론을 축으로 옆으로 몸을 굴리며 리오레이아의 머리에 부딪히는 것을 피했다. 하늘을 보고 누워있자 몸통 바로 위로 리오레이아의 큼지막한 발이 지나갔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는 속도 때문에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리오레이아의 뒤를 좇았다. 리오레이아가 넘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뒤까지 따라가 발을 한 번 내려 베고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원심력으로 오베론을 휘둘렀다. 푸른 섬광이 정확히 리오레이아의 무릎 뒤쪽을 베어냈다. 아직 회전이 멈추지 않은 오베론을 따라 무게중심을 옮겨 뒤쪽으로 약간 걸었다. 리오레이아는 일어남과 동시에 서서히 내 쪽으로 몸통을 돌렸다. 적당한 간격이다. 나는 팔에 온 힘을 집중해 억지로 오베론의 회전을 멈췄다. 허리가 반쯤 돌아간 상태에서 오베론을 위로 당겨 칼등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리오레이아의 머리가 완전히 나를 보았을 때, 튕겨내듯 오베론을 하늘 높이 든다.

 용의 비늘을 연마해 만든 무기로 용의 비늘을 뚫는다. 인간이 용에게 대적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하늘에서 땅으로, 무게를 실어 오베론을 내리쳤다.

  • 도톨묵 2009.08.26 18:35
    컴퓨터 고장에 피서까지 다녀왔더니, 너무 오랫동안 못 썼네요 ^^;
  • KaRa 2009.08.28 21:36

    수고하셨습니다 -_)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