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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1.

자화룡(雌火龍) 리오레이아 (6)

 

 

 

 

새까맣게 탄 나뭇잎들이 리오레이아의 포효에 먼지처럼 부스러지며 우리들 쪽으로 날려온다. 불길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몇몇 나무들은 큰 소리를 내며 휘고 꺾어지고 완전히 부러졌다. 검붉은 바다의 거친 파도가 우리들에게 밀어닥쳐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보았지만, 파도는 손등을 강타하고 그대로 관통해 귀로 흘러 들며, 핏줄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파도와 함께 쓸려온 검은 재는 눈으로 들어가 시각을 앗아갔다. 불의 바다에, 깊고 깊은 심해로 빠져들어갔다.

눈 앞에서 한 점 밝은 빛이 번쩍였다. 서서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청력이 회복되어 간다. 시력도 돌아올 때쯤 강렬한 빛은 심해를 새하얗게 바꾸어 놓고, 이내 사라졌다. 팔을 허우적허우적 움직여 몸의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고 귀를 두 세 번 때렸다. 빛은 암흑으로 암흑은 붉은 빛으로 바뀌었다. 다시 자화룡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는 우리들을 향해 있지만 우리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목을 길게 빼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꼬리를 있는 대로 크게 휘둘러댔다. 그러다 몸을 숙이고 발톱으로 땅을 긁으며 머리를 낮게 낮춰 울음소리를 냈다. 낮게 위협하는 목소리로 경계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녀석이 정신 차리기 전에 어서 도망쳐야 돼.”

 

겐다 할아범이 내 어깨를 잡고 소리 질렀다. 그의 다른 손에는 섬광탄(閃光彈)이 들려 있었고, 언제든 던질 수 있도록 어깨 높이로 쳐들고 있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윽박질렀다.

 

저런 미친 자식, 돌아오지 못해!”

 

랜든이 검을 들고 리오레이아에게 달려나갔다. 한 팔을 눈높이로 쳐들어 재와 불씨를 막으면서 검을 머리 위로 들고 그대로 돌진했다. 직선으로 달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비틀거리는 그의 그림자는 사방팔방으로 돋아나 정신 없이 타오르고 몸을 떨었다. 그는 고함을 질러댔다. 뭐라 하는지 내용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선명히 들리는 것은, 죽이겠다, 라는 말 한 마디. 나머지는 거의 울부짖는 것에 가깝다.

겐다 할아범과 나는 뒤늦게 자리에서 튕겨져 나가듯 달렸다. 랜든은 리오레이아에게 거의 다가갔다.

도우미가 입는 장비라고 해봐야, 도우미용으로 가볍게 제작된 최소한의 보호장비 일 뿐, 전투 능력으로 보면 형편없는 것이다. 한 두 번 비룡에게 얻어맞는 것으로, 완전히 정신을 잃고 안 잃고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된다. 아니, 저렇게 흉포해질 대로 흉포해진 녀석에게는 단 한 대 제대로 얻어맞는 것으로 확실히 죽는다.

오른쪽에서 여러 그루의 나무가 순식간에 일제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순간, 급격히 몸이 무거워지며 무릎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고, 시야는 커다란 타원형의 무언가가 대부분을 가렸다. 머릿속에 불똥이 튀어 오른다. . 오른쪽 어깨에 덜컥 묵직한 고통이 밀려오며 가슴 바깥쪽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왔다. 오른쪽 팔꿈치는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사라졌고 두 발은 허공에 떠서 하늘에 버려진 물고기처럼 허우적거렸다.

. 콰직.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나 곧이어 나무기둥이 부러져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두 눈을 번쩍 떴다. 내 위로 곧장 나무가 쓰러지려고 했다. 굴러서라도 피해보려 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저 나무들과 하등 다를 것 없이 뼈 마디마디가 부서져나가는 것 같았고 통증은 정말 불길처럼 느껴졌다. 특히 오른쪽 팔은 계속해서 타오르는 듯 아파왔다. 나무는 이제 내 머리 바로 위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그나마 성한 두 다리를 허공에 들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꼬았다가 잔뜩 힘을 주며 꼬인 것을 풀면서, 그 반동으로 몸을 굴렸다. 허리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머리통을 통째로 갉아먹어갔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났다. 간신히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세 바퀴쯤 굴렀다. 땅에 볼을 대고 누워서 심호흡을 했다. 두 팔로 상체를 지탱해 무릎을 꿇고 반만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내가 날아온 방향을 봤다. 또 다른 리오레이아가 막 땅에 착지하고 있었다. 겐다 할아범이 양 팔을 흔들며 시선을 끌었다.

랜든은? 이 위치에서는 나무에 가려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은 리오레이아가 정신을 차리고 랜든을 향해 정확히 공격했다. 계속해서 방향이 바뀌는 것이, 랜든이 간신히 리오레이아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겨우 두 다리로 서서 우선 겐다 할아범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른 팔은 아무래도 독에 당한 것 같았다. 리오레이아의 꼬리에는 독침이 나있었다. 우선은 해독초를 씹어 응급처치를 했다.

겐다 할아범은 리오레이아의 덩치에도 밀리지 않고 욕을 해댄다.

 

이 빌어먹을 화룡년아! 이 구워먹을 새끼, 여기다! 그쪽이 아냐!”

 

욕설이 예상외로 통하지 않았다. 리오레이아는 곧장 몸을 돌려 랜든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괴성을 지르며 돌진한다. 두 개 달린 다리로는 균형이 잘 안 잡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간신히 한 발 앞서 다리를 내뻗어 달리는 모양새로 돌진했다. 돌진을 멈추면 곧 넘어질 것이다. 나는 서둘러 방향을 바꿔 랜든이 있는 곳으로 내달리며 할아범에게 소리질렀다.

 

섬광탄! 두 마리가 동시에 나를 볼 때 내 등 뒤로 던져!”

저 놈의 반말은······!

 

리오레이아의 보폭은 그 덩치만큼이나 넓어서, 달리면서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이판사판으로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허리를 굽힐 때 넘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균형을 잡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랜든이 바로 앞에 보였고 나는 서둘러 돌멩이를 던졌다. 리오레이아의 머리를 겨냥해, 오른팔로는 무리라 왼팔로 던졌건만,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런, 랜든!”

 

왼손으로 오베론의 손잡이를 잡고 전력질주 했다. 어떻게든 단 한 번만 랜든이 두 마리의 리오레이아 사이에서 공격을 피해내면 내가 닿을 수 있다. 힘들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불 때문에 시야에는 불편함이 없으니, 상대할만할 지도 모른다. 한 마리만이라도 도망치게 만들 수 있다면 오히려 잡아낼 수도 있다. 섬광탄은 만약을 위한 계획일 뿐이다.

 

피해라, 어떻게든 피해봐!”

 

입에 검은 연기를 물고 있는 리오레이아는 머리를 옆으로 높이 쳐들고 서서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렸고, 랜든의 등 뒤로 목을 곧게 펴고 돌진해가는 리오레이아 역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위와 뒤에서, 두 개의 입이 그대로 랜든을 고기조각으로 만들어버리려 했다.

 

거기서 당장 나와!”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지만, 리오레이아의 발 소리와 울음소리에 가볍게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