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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1.

자화룡(雌火龍) 리오레이아 (3)

 

 

 

나는 발도와 동시에 대검의 날을 일부 땅에 박아 넣는다. 넓은 면을 방패 삼아 그 뒤에 몸을 숨기자마자, 대검에 무언가가 부딪친다. 손잡이를 움켜쥔 손에 저릿한 고통이 전해져 오고 강렬한 파열음이 밤을 울렸다. 손잡이는 그대로 잡고 몸을 돌려 대검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손바닥에 머물던 저릿함이 전신의 피부로 전해진다. 겐다 할아범과 랜든은 짐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잠시만 조용히 있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를 공격해온 것은 멀리 있으며, 그 이상 우리들 근처로 이동해오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계 혹은 위협. 계속되는 정적 속에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겐다 할아범, 랜든 그리고 몇 마리의 반딧불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잠시 정적 속에 묻혀있었다.

 

 

 

 

 

벌레 우는 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천천히, 그러다 순간에 바뀌어간다.

 

피곤하시겠어요.”

 

잠에서 막 깬 랜든이 나를 걱정했다. 그의 눈 밑은 새까맸다. 밝은 아침 햇살 때문에 실눈을 뜨고 있어서 까만 부위가 더욱 넓게 보였다. 그는 옆으로 기어가 겐다 할아범을 흔들어 깨웠다. 겐다 할아범은 일어나며 성질을 부렸다. 지난 밤에 잠자리를 새로 잡느라 잠잘 시간이 많이 적었던 탓이다.

겐다 할아범은 어젯밤 받은 공격에 대해서 기운 좋게 결론을 내렸다.

 

성질 더러운 녀석!”

 

한 손에는 수면탄환을 들고 앉아 내린 결론이다. 어젯밤에 공격 받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면서, 나무에 박혀있던 것을 내가 가져온 것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그 근방의 비룡을 토벌하기 위해 캠핑하고 있던 어떤 성질 더러운 헌터가 자신의 사냥터임을 알린 것이라고, 겐다 할아범은 생각했다. 내친김에 언젠가 그 비슷한 헌터라도 만나게 되면 반드시 한 대 쥐어박겠노라고 선언까지 했다.

할아범이 성토하고 있는 사이, 나는 랜든이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첫 장에 괴물들이라고 새겨져 있는 책이었다. 뼛조각을 이용해 낱장의 종이를 엮어 만든 것이다. 사전 즈음으로 보였는데, 랜든이 직접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용이 제목과 달랐다.

······수소문 해봤지만 그때 그 행상인은 찾을 수가 없다. 공로를 인정받아 약간의 상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후 행방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 도시를 찾는 행상인은 그 이외에도 수백 명은 됐다. ······그 행상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단서가 될만한 것이 없다. 자화룡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도 아는 것이 없었다. 보통의 것보다 커서 크기가 한 이십 미터로 보였다라는 것뿐.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헌터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았다. 비룡들은 절대 서식지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을을 파괴한 그것은 마을 근처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녀석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색하러 갔던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거지? ······ 

사전보다는 일지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헌터가 되기 위한 자기만의 사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일기 같은 내용 외에 괴물에 대한 것이라고는 랜든의 마을을 습격했던 자화룡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그림도 모두 자화룡으로 보였다. 간혹 한 종()만을 노리는 헌터가 있긴 했지만, 랜든은 그들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랜든의 책에 너무 집중했다. 랜든이 내게 다가와 낚아채듯 책을 가져가버릴 때까지, 나는 그가 다가오는 지도 몰랐다. 당황해서 뭐라도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게 진짜 사냥이에요.”

 

그 말에 별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고 그도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책을 챙긴 다음 성실하게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짐을 거칠게 다룬다거나, 짜증을 쥐어짜듯 행동하지는 않았다.

나도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짐을 챙겼다. 다만, 진짜 사냥이란 말이 커다란 벌레가 목덜미를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곧 있으면 푸른 숲에 붉은 석양이 지고 시간이 더 흐르면 숲은 불타고 남은 재처럼 밤으로 검게 물들 것이다. 우리는 불에 쫓기듯 걸음을 빨리 해야 했다.

그런데 걸음을 걸으면 걸을수록, 랜든이 말수가 적어져 갔다. 꿋꿋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 많은 힘을 쏟아 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본 그의 얼굴은 어금니를 세게 물어 광대뼈 밑의 살이 쑥 들어가 마치 말라가는 것 같았으며, 머리가 무거운 듯 점점 숙여져도 눈만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독이 올라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그의 주변에 머물렀다. 햇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짙어져만 가는 그림자.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가리면 가리는 것 위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랜든은, 그의 눈은, 아마도 그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겐다 할아범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랜든의 우상 군, 네가 상태 확인 좀 해봐.”

 

아침의 일로 꺼림직했지만,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다.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돌아가는 것은 최악이었다.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다.

겐다 할아범이 한 번 더 내 옆구리를 더 세게 찔렀고, 나는 말을 뱉어냈다.

 

복수만이라면······.”

 

내 말에 랜든이 멈칫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마지못해 나는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도 많을 거에요. 굳이, 헌터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랜든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골랐다. 그가 걸음을 멈춰 나도 자연스레 멈춰 섰다. 그는 허리를 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헌터에게는 힘이 있으니까요.”

 

마치 반문하는 것처럼, 나는 서둘러 다시 물었다.

 

사냥······. 무엇이 사냥이라고 생각해요?”

 

느닷없이 생각해낸 질문치고는 퍽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겐다 할아범은 내 상태가 정상인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의심이 확신이 되기 전에 대답이 들려왔다.

 

사냥감을 죽이는 것.”

 

기운은 없었지만 막힘도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지도 않다. 아주 지당한 사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