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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1.

자화룡(雌火龍) 리오레이아 (2)

 

 

 

젊은 조수는 짐을 풀어놓고 지급품과 장비를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는 뜬금없이 물었다.

 

, 비 씨, 자화룡이 사막에 나타난 건가요?”

가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의뢰가 잘못 들어온 게 아니라면 그럴 거에요.”

 

그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겐다 할아범이 그의 어깨를 한 대 때렸다.

겐다 할아범과 그의 조수는 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짐을 챙겨 들었다. 나도 대검을 등에 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루들도 바퀴가 달린 수레에 약간의 짐을 나눠 담아 끌고 왔다. 미야오 미야옹 먀오. 보통의 고양이들보다 좀 더 날카롭고 변칙적인 소리로, 그들끼리 무슨 대화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라면 비룡과도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아이루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있을지언정, 비룡과 마주앉아 수다나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도 없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아이루는 비룡과 대화를 하고, 호쾌한 비룡은 아이루를 따라 춤을 출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룡의 날개 짓에 아이루들은 이리저리 날리며 새로운 춤을 발명해냈다고 즐거워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뙤약볕 아래 말 없이 몇 시간을 걸었다. 가끔 그늘에서 쉬곤 했지만 다시 걸으면 그도 소용없었다. 길은 잔뜩 달궈진 철과 같아 매우 뜨거웠다. 숨통이 막혀올 때도 있었지만, 쿨러드링크의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아서 여분을 챙겨왔다고는 해도 아무 때나 마실 수는 없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야 했다. 지금은 밤이 멀지 않았으므로 쿨러드링크는 아껴두는 편이 좋았다.

결국 우리들 중에는, 비록 자기들끼리였지만, 아이루들만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미야오 미야옹 먀오. 나는 그들의 대화 내용을 제멋대로 상상하며 길을 걸었다.

밤이 되어, 길에서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왔다. 자리를 잡으려면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이고 주위에 나무가 많은 곳이 필요했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 멈춰 섰다. 달빛도 별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창문 없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겐다 할아범이 아이루들에게 지시를 내려 숲 속 깊은 곳으로 보냈다. 이 이상 우리들의 눈으로는 마땅한 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세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버린 아이루들을 향해 할아범은 구시렁거렸다.

 

동족을 만나면 춤추고 놀아버릴 텐데, 영 불안해.”

 

그의 말에 조수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땅바닥 이곳 저곳을 더듬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처럼 이곳 저곳을 더듬어보았다. 초식룡들이 즐겨 먹는 풀들이 잔뜩 나있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아이루들이 빨리 자리를 찾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 자리를 잡을 수는 없다. 화룡은 초식룡들이 사는 곳을 배회하기 마련이다. 헌터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한 밤중에 아무런 소용도 없다. 아무리 전설적인 헌터라 할 지라도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밤 중에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일에 도전한다면 헌터는 눈 깜짝할 새에 사냥 당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짧게 투덜댔다.

 

메라루들을 끌고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메라루는 아이루와 같은 종족이다. 다만 털이 검고 손과 발, 코의 털은 하얗다. 그리고 두드러진 특징은 손버릇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짧든 길든 여행길에서는 만나기 싫은 녀석들이었다.

겐다 할아범이 나를 노려봤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돌려 조수를 향해 물었다.

 

자화룡한테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당황스럽게도 조수의 대답보다 먼저, 나를 노려보던 겐다 할아범이 내게 다가왔다. 할아범은 고개를 저으며 내 발목을 걷어찼다. 갑옷끼리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조수가 서둘러 괜찮다고 말했다.

조수의 이름은 랜든. 내가 겐다 할아범과 마지막으로 나간 토벌에서 본 적이 없으니, 그가 겐다 할아범의 조수가 된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전직 왕국의 병사였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렸을 적부터 헌터를 동경했지만 그에게는 가족을 지키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헌터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왕국의 병사가 되기로 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도시로 떠났고, 그것이 약 4년 전 일이었다.

아이루의 울음 소리가 랜든의 이야기를 잘랐다. 곧 아이루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루는 한 손을 수레의 손잡이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숲 속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랜든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범과 나도 따라서 일어나 같이 짐을 챙겼다.

랜든은 내 앞을 걸으며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가 도시에 자리를 잡고 2년째 되던 해, 즉 재작년에, 도시 근방의 한 마을에 자화룡이 나타났다. 나도 아는 사건이었다. 정확히는 나타난 것뿐만 아니라 그 마을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 직전에 그 마을을 떠난 행상인이 도시에 소식을 전했었다. 이후 귀족들이 많은 헌터를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왕국의 군대가 움직인 것은 당연했다. 생존자 수색과 자화룡의 위치를 탐색하기 위해 군대는 신속하게 파견되었다. 랜든은 병사로서 경력이 형편없었지만 수색대에 자원했다. 파괴된 마을은 그의 고향이었다. 가족들은 도시에서 살았기에 참극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같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랜든이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먼저 도우미가 됐습니다. ······, 당신은 강한 헌터라고 들었고, 먼저 당신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많은 것들을 배워서 저도 곧, 최대한 빨리 헌터가 될 생각입니다.”

 

복수.

나는 궁금해졌다.

 

그럼, 가족들은?”

 

어둠 속에서도 랜든의 옅은 미소는 볼 수 있었다.

 

저를 많이 걱정해주었지만, 누구도 제 결정을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오히려 저한테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가족들은 그를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기억 속에 마을이 선명하게 남아, 마치 통째로 살아있는 유령처럼 그들을 쫓아다니는 한은.

겐다 할아범이 아이루와 함께 선두에 서서 걷다 불쑥 끼어들었다. 잔뜩 가라앉은 억양이었다.

 

멈춰.”

 

겐다 할아범은 말과 함께 한 손을 어깨 위로 들어 확실히 멈춰 서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위에 아직 다른 아이루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검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겐다 할아범에게 다가갔다. 정면에서 수풀이 헤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길잡이 역할을 하던 아이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것은 세 마리의 아이루였다. 아이루들은 수염과 털이 빳빳하게 서있었다. 그리고 공포에 짓눌린 듯 저음으로 울어댔다. 그때 숲 저편에서 일순 별빛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파팍.

우리의 뒤쪽에 있던 나무가 무언가에 맞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겐다 할아범을 옆으로 밀치며 소리친다. 동시에 대검을 뽑아 든다.

 

엎드려!”

 

별빛이 다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