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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1.

자화룡(雌火龍) 리오레이아 (1)

 

 

 

한 여름의 햇빛이 탁자 위의 드링크 잔에 반사되어 눈을 찌른다. 등을 적신 땀은 갑옷 안감인 가죽을 기분 나쁘게 늘어붙도록 만든다. 조금이나마 괜찮아질까 기지개를 켜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지만 눅눅해질 만큼 한껏 눅눅해진 가죽은 거미줄처럼 더욱 살갗을 옥죄어오고 갑옷은 기분 나쁘게 절그럭거렸다. 결국 묵직한 습기에 눌려 이내 허리를 굽히고 만다.

나는 마지막 남은 쿨러드링크(Cooler-drink)를 들이킨다. 서서히 온몸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드링크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나는 탁자 옆에 기대어둔 대검을 들고 일어선다. 오늘따라 날이 푸르다.

오랜만에 코콧토 촌장을 찾았다.

 

비 군인가. 걸 맞는 의뢰가 들어와있네.”

 

촌장은 집 앞에 서서 나를 맞이했다. 그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자마자 의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하얗게 센 수염은 잘 다듬어져 끝이 뾰족하게 모여있었다. 그는 자신이 받아둔 의뢰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내게 몇 가지를 추천해주었다. 그의 뾰족한 수염 끝은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입술 끝에는 항상 미소가 걸려있었다.

젊었을 적에 유명한 헌터(Hunter)였던 촌장은 마을의 젊은 헌터들을 볼 때마다 흐뭇해했다. 그는 촌장이 된 후, 헌터 활동할 때의 인맥을 통해 많은 의뢰들을 받아 현직 헌터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소일거리로 삼았다. 헌터들은 촌장을 만날 겸 이곳에 많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의 집 옆에 마련된 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와 관련된 전설들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비룡(飛龍)들을 토벌하고 마을을 발전시킨 검사로서 그는 언제나 헌터들의 우상이었다.

헌터이자 검사인 나 역시 그것은 당연했다.

 

뭐요?”

 

나는 한 의뢰에 대한 설명을 듣다 촌장에게 물었다. 촌장은 대답대신 눈만 크게 뜬다. 수염 끝이 조금 흐트러졌다. 나는 질문을 조금 바꿨다.

 

토벌해야 할 대상이······.”

 

촌장은 한 손으로 수염을 쓸어 수염 끝을 모은다.

 

헌터 한 명이네.”

 

여전히 남은 쿨러드링크의 효과가 뒷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헌터의 토벌 의뢰는 처음이었다. 코콧토 촌장 역시 그렇다고 했다. 어찌 보면 현상수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현상수배의 목적이 대상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생긴 이래로 공공연한 살인의 의뢰 같은 것은 없었다.

의뢰주는 다른 마을의 헌터였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촌장도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말해 줄 수 없었다. 대신 촌장은 자신이 받은 의뢰 요청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의뢰 요청서 겉면의 구석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있었다. 나는 이미 들은 내용은 무시했고 세 번째 장을 넘겨보았다. 다른 마을의 헌터, 이름은 분명 불명(佛名). 그의 의뢰 사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화룡(火龍)을 포획하기 위해 숲 속의 화룡의 둥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우리는 공격 받았습니다. 우리가 맞은 것은 수면 탄환이었습니다. 우릴 공격한 그건 분명 헌터였어요. 그 헌터를 반드시 잡아주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촌장에게 말했다. 헌터는 인간을 대상으로 의뢰를 받지 않는다.

 

토벌 사유가 못 됩니다. 이런 건 왕국의 병사들이 해결하게 둬요.”

 

촌장도 고개를 저었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네만, 헌터는 보통 사람과 다르네. 적어도 자네는 잘 알지 않나.”

······그렇지만 비룡과도 다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상대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과 우리가 같은 것은 아니다.

촌장의 대꾸는 기다리지 않았다. 의뢰 요청서는 촌장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고정시킨 가죽 주머니 중 가장 앞에 있는 것을 빼내어 들었다. 주머니는 가벼웠다. 찰그락 찰그락. 주머니의 입을 열며 촌장에게 얘기했다.

 

아까 첫 번째 의뢰, 거기, 사막에 나타났다는 자화룡(雌火龍)을 토벌하러 가겠습니다.”

 

촌장은 잠시 입맛을 다셨다. 수염을 쓸던 손을 들어 촌장이 내게서 계약금을 받아갈 때까지, 나는 주머니를 들고 가만히 서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촌장은 결국 계약금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계약금은 의뢰 내용을 완수하면 돌려받으니 일종의 담보라고 볼 수 있다. 목숨이 달린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의뢰를 무작정 수주하는 자살 행위를 하거나, 의뢰주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수주를 취소하는 헌터를 막기 위한 하나의 제도였다.

나도 예전에는 의뢰 완수에 실패해 몇 번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마을의 입구에는 사람들의 발로 직접 다져진 길이 있다. 며칠 걸리겠지만, 계속 따라가면 도시로도 이어져있는 큰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무그늘을 찾아 따가운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대검은 나무기둥에 기대어 두었다. 햇빛을 받아 칼날이 푸르게 번쩍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에 금빛으로 빛나는 초록빛 나뭇잎.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저것들은 나뭇잎에서 금으로, 금에서 나뭇잎으로 계속해서 변했다.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려 안간힘 쓰고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태양은 햇살을 작살처럼 쏘아대었고 나뭇잎은 맹공에 맥을 추지 못했다. 저건 전장의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몇 장의 나뭇잎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람이 멎고 나서야 혼란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감춰져 있던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한 장의 나뭇잎이 내 어깨 위로 떨어졌을 때,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내렸다. 고양이들이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일렬로 나란히 서있었었다. 네 마리 모두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루들이었다. 연한 갈색 털 바탕에 코 주변과 귀, 손과 발의 반 정도만 짙은 갈색 털을 가진 두 발로 걸을 줄 아는 똑똑한 고양이. 아이루는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일을 도우며 어울려 살 정도로 똑똑했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빠르네요.”

 

아이루들이 대답할 리는 없었다. 도시에서는 말을 하는 아이루를 봤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나는 혼자 작게 웃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아이루들과 함께 온 도우미였다.

 

자네, 드디어 미쳤나?”

 

겐다 할아범이었다. 그의 옆에는 젊은 조수가 서있었다. 둘 모두 도우미답게 다부진 체격을 가졌고 등에는 짐을 잔뜩 챙겨 들고 있었다. 겐다 할아범은 아직도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D.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네요. 게임 <몬스터 헌터G>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팬픽으로 두기에는 애매한 것이, 원작의 '목적'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보면서 의아하시겠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튼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참, 비다방에 오랜만에 연재하게 되었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 별바 2009.07.21 11:52

    몬스터헌터!!!!!

     

    리오레이아.. 방심하면 한방에 나가떨어졌던 기억이[..]

  • 도톨묵 2009.07.22 09:30

    그렇죠.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전까진 정말 곤란한 비룡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