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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썬더블러프-






오랜 여정으로 지친 포세이큰의 여행자가 지친몸을 이끌고 멀고어 초원에 우뚝 솓은 바위산 정상에 올라섰다. 평화로운 바람이 대지의 초원을 가르며 포세이큰 여행자의 망토를 펄럭이고 웃음지었다. 초원 위에 우뚝 솓은 웅장한 바위 산 정상에는 타우렌들의 고향 '썬더블러프'가 있다. 지친 여행자가 정상에 도착하자 커다란 타우렌이 넋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냈다.

"허허허. 환영하오. 여행자여 무슨 일로 이 곳을 찾아 왔습니까?"

포세이큰 여행자는 로브 모자를 살짝 뒤로 젖혀서 얼굴의 일부가 보이게 한 뒤에 타우렌에게 탁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포세이큰의 일원이지만 짧은 시간이 주어져 칼림도어 대륙 곳곳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이곳은 저의 가슴에 심장이 뛰고 있던 시절 살았던 곳과 비슷하군요."

여행자는 지금 비록 가슴에 심장이 뛰지 않은 싸늘한 몸을 가졌지만 기억만큼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눈동자 대신 퍼런 안광을 빛내고 있는 눈은 왼지 모르게 슬픔에 젖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타우렌은 그녀를 보고 안타까움 심정과 함께 경외감이 들었다. 포세이큰의 일원들은 하나같이 내면에 깊은 슬픔과 누구보다 고귀한 추억을 뼛속 깊이 새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타우렌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빛바랜 퍼런 입술 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어주었다.

"정기의 봉우리로 가보시는게 어떻습니까? 그곳에 가면 전 항상 마음에 안정을 찾게 된답니다."

길 안내를 자처하는 타우렌을 보고 여행자가 긍정의 뜻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좋겠네요."

정기의 봉우리로 가는 구름다리는 아래에 초원에 서있는 나무들이 하나의 점으로 보일 정도로 까마득했다. 타우렌은 다리를 지나면서 그녀에게 우스개 소리를 건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참 재밌습니다. 하하하."

포세이큰 여행자는 그의 우스개소리에 조용히 웃어주었다. 조용한 성격의 그녀는 타우렌이 뭐라고 말을 건낼 때마다 살짝 미소를 보내거나 동의의 뜻으로 몇마디 하는게 끝이었다. 그러나 타우렌은 그녀가 약간의 반응만 보여도 매우 흡족해 했다. 워낙에 쾌활하고 당당한 타우렌의 성격은 가끔 회의적인 포세이큰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녀와 타우렌은 꽤 잘지냈다.

구름 다리를 지나 정기의 봉우리에 도착하자 타우렌은 사냥갈 시간이라며 그녀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내고 다시 구름 다리로 사라졌다. 다시 혼자가 된 여행자는 고요한 정기의 봉우리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이 곳의 타우렌들은 주술사가 대부분 이었는데 쾌활한 타우렌들과 달리 이 곳의 주술사들은 조심스럽고 평온했다. 길을 안내해준 타우렌은 이들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하고 소탈했다.

포세이큰 여행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술사들은 약간의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주 불편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리 건너 북적북적한 썬더블러프의 분위기와 달리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느낀 여행자는 일단 그들과 대화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시선은 사실 포세이큰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스컬지와 같은 저주받은 몸을 한 그들을 호드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타 종족들은 처음엔 대부분 이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행자는 주변의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정기의 봉우리 중앙의 커다란 원형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은 엄숙한 분위기가 대기를 가라 앉혀서 매우 정적인 곳이었다. 여행자는 천막 안에 앉아있는 나이 많은 주술사에게 약간 허리를 숙여 예의를 차렸다. 그러자 주술사가 그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곳에서 자라지 않은 이방인들 일지라도 이 곳에 들어오면 무릎을 꿇고 예의를 차려야 하네. 포세이큰이여."

여행자는 고개를 들고 그 주술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평소와 다른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 포세이큰은 실바나스 여왕님 이외의 다른 어떤 자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주술사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작은 토템을 바닥에 꼿았다.

"자네도 역시 다른 포세이큰과 같군. 굽히지 않는 신념이 있는 자들은 대지모신께서 돌보아 주신다네. 대지모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여행자는 주술사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 천막 안을 살폈다. 왼쪽에 커다란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 두루마리는 대지모신의 전설이 적혀 있었다.




기억의 시대 이전에 온화한 대지모신께서 여명의 금빛 안개 위로 입김을 불어넣으셨다. 황색 구름이 쉬러 오는 곳에는 바람결에 일렁이는 밀밭과 보리밭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으니, 위대한 희망과 생명의 바구니. 이것이 대지모신의 근원이다.

대지모신께서 그대가 생명을 불어넣은 대지를 굽어보시니 오른쪽 눈인 안쉬(Anshi-태양) 는 대지에 온기와 빛을 주고 왼쪽 눈인 무샤(Musha-달) 는 새벽녘에 꿈틀대는 생물에게 평화와 수면을 주었다. 대지모신의 눈빛이 이렇게도 강렬하니 하늘이 한 번 돌 때마다 꿈을 위해 한쪽 눈을 감으셨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눈빛으로 세상의 첫 날을 낮에서 밤으로 바꾸셨다.

오른쪽 눈이 금빛 여명을 비추고 있을 때는 대지모신의 온화한 손길이 금빛 평원을 어루만졌고 대지모신의 팔 그림자가 지날 때마다 고결한 자들이 그 풍족한 대지에서 일어났다. 수할로(Suahalou-타우렌) 도 일어나 사랑을 베푸시는 어머니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되니 그 끝없는 여명의 들판에서 대지의 자식들은 대지모신의 은총에 맹세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이름을 축복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대지의 자식들이 여명의 들판을 배회할 때 세상의 밑바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어둠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 대지의 자식들은 어둠의 속삭임으로부터 전쟁과 책략을 배우게 되었다. 수할로 중 상당수가 어두운 그림자에 넘어가 악의와 사악함을 받아들이게 되고 더럽혀지지 않은 동지들을 배반한 후 그들의 순결한 영혼은 결국 평원을 표류하게 되었다.

이 참상에 마음이 아픈 대지모신께서는 도저히 자식들이 타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으셨다. 비탄에 젖은 대지모신께서는 두 눈을 뽑아 별이 반짝이는 끝없는 하늘에서 회전하도록 두셨다. 이에 안쉬와 무샤는 서로 슬픔을 위로하려 했지만 하늘너머로 서로 희미한 빛을 뒤쫓을 뿐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세상이 돌 때마다 서로 뒤쫓고 있다.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모신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셨으니 바람에 귀 기울여 여명의 들판을 가로질러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셨다. 대지모신의 드넓은 마음은 항상 자식들과 함께 있었기에 사랑으로 가득찬 지혜로움으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대지모신께서는 순수한 자식들 중 용감한 이들에게 사냥에 대한 열정을 심어 주셨다. 첫 여명의 생물들이 사납고 포악했던 까닭이다. 그들은 대지모신으로부터 숨어 땅의 어둠고 거친 곳에서 위안을 찾았다. 수할로는 눈에 보일 때마다 이 짐승들을 사냥해 대지모신의 축복으로 길들였다.

하지만 한 위대한 영혼이 그들을 벗어났다. 그것은 바로 나이트 엘프에게는 '말로른'으로 알려진 아파로라는 새하얀 눈 같은 털을 가진 훌륭한 수사슴이었다. 그의 뿔은 창공에 닿을 듯했고 강인한 발굽은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수할로들은 아파로를 동트는 세상 끝까지 추적해 이 훌륭한 수사슴을 잡으려 했다.

수사슴은 도망갈 구멍을 찾으려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확실한 탈출이었지만, 그만 강인한 뿔이 별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리 차고 저리 차고 발버둥을 쳤지만 아파로는 창공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여명을 향해 오빠 안쉬를 뒤쫓던 무샤가 그를 발견했다. 무샤는 몸부림치는 강인한 수사슴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영리한 달은 수사슴이 동생을 사랑해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놓아주겠다는 거래를 했다.

무샤는 아파로와 사랑을 나누며 아이를 가졌다. 어떤 이는 반신반인이라고 하는 그 아이는 방의 어두운 숲속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는 세나리우스라 불리며 깨어나는 세상과 천상계 사이의 별이 빛나는 길을 걸었다.

세나리우스는 곧 자라서 아버지의 당당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다. 나무와 별의 형제이며 탁월한 사냥꾼인 그는 조화로운 여명의 노래를 부르며 먼 세상을 돌아다녔다. 모든 생물이 그의 기품과 아름다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달과 백색 수사슴의 아들만큼 아름다운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세나리우스는 수할로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에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예기해 주었다. 대지의 자식들은 그를 형제로 여기고 생명의 들판과 위대한 대지모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생물들을 같이 돌보기로 맹세했다.

세나리우스는 대지의 자식들에게 나무나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수할로들은 드루이드가 되어 땅을 돌보는데 위대한 마법적 업적을 이루었다. 또한 수할로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세나리우스와 함께 사냥하며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세상을 지켰다.

여명의 안개가 걷히고 기억의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반신반인 세나리우스는 세상의 들판을 따라 자신만의 길을 떠났다. 수할로들은 세나리우스가 떠나 너무 슬픈 나머지 그가 가르쳐 주었던 드루이드 지식을 거의 잊어버리게 되었다.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그들은 나무와 대지의 생물과 대화하는 법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악한 속삭임이 다시 한 번 그들의 귓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대지의 자식들은 사악한 속삭임을 듣지 않으려 했지만 무서운 저주가 그들에게 내리고 말았다. 서쪽의 검은 땅에서 잔인한 켄타우로스가 달려온 것이다. 식인과 파괴를 일삼는 켄타우로스는 수할로들에게 역병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용감한 자들과 사냥꾼들이 대지모신의 축복을 가슴에 담고 싸웠지만 켄타우로스를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 후 수할로들은 조상들의 땅을 버리고 영원히 끝없는 벌판을 배회해야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 희망을 되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뿔뿔이 흩어진 수할로 부족이 대지모신의 포근한 품 안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여행자가 글을 다 읽고 주술사를 바라보자 주술사가 눈을 감고 토템에 손을 올린채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대족장 쓰랄님과 오크들이 우리에게 왔지. 우리는 그들 덕분에 이 땅에 정착해 살아 갈 수 있었다네. 강한 신뢰와 굳은 결의로 다져진 우리들은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주술사는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샤는 나이트 엘프들이 섬기는 여신 '엘룬'이라네. 대 드루이드 말퓨리온은 우리 종족에게 이런 말을 건냈지. '그대 들이 드루이드의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습지 않나?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전부터 자연과 대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어."

"어쩌면 우리보다 더 위대한 종족이 이 땅 어딘가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지 모른다네. 그들은 가장 나은 해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일어설 의지를 심어 주기 위해 아직도 어딘가에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을지 모르지."

주술사는 말을 끝내고 작은 토템을 여행자에게 건내주었다. 그리고 대지모신의 가호를 빌어주고 천막을 나갔다.




  • 도톨묵 2007.04.18 12:47
    오랜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 Ryu 2007.04.19 00:38
    ... 다시 와우나 해볼까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