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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카톡형 넥스트노벨 파트2

릴리즈 : 2017.05.28 ~ 2017.06.08 19:14 홍차매니아까지


※ 작가들의 순서는 줄띄움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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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시나리오 : 별바


메인캐릭터

홍차매니아 : 살바토르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

포르쉐 : 아이린 하퍼

반딧불 : 크리스 어반

별바 : 두보아


적 메인케릭터

홍차매니아 : 카타리나 플레겔

포르쉐 : 루비로즐리

반딧불 : 이벨리아

별바 : 스콧


고정 조연 케릭터

홍차매니아 :

포르쉐 : 루카스 마이어

반딧불 : 빈센트

별바 : 리키


순서 (파트2에서 변경됨)

홍자 - 별바 - 딧불 - 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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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집 링크

[제 1 회 넥스트노벨] 케릭터설정

[제 1 회 넥스트노벨] 고정조연설정(파트2부터 시작)

[제 1 회 넥스트노벨] 추가배경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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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킨 슬레이어 」

 -        파트 2        -

 - 파트오더 : 포르쉐 -


      ◁ 이전화


  [포르쉐 05.28 22:52]

  "이쪽입니다. 아가씨."

  하퍼는 늙은 남자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작지만 고풍스러운 장식과 고급소재로 만든 가구가 놓여져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오래된 듯 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은은한 나무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곧 목욕준비를 마칠 겁니다. 1시간 뒤에 식사준비가 끝날테니 그때 다시 오도록 합죠."

  "고마워요."

  하퍼는 하인에게 인사를 하고,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 편안해 보이는 침대위에 걸터 앉았다. 

순식간에 의도치않은 일을 겪은 탓에 멍해져있었는데, 발코니 쪽에서 은은한 수선화 향기가 흘러나왔다. 

시원하면서 풍부한 수선화 향기가 방안에 더해지면서 긴장이 풀려 살짝 미소지었다.

  똑똑-

  "목욕준비 끝났습니다. 아가씨."

  발코니쪽에 여자 하인 두명이 서있었다. 아마도 하인들만 쓰는 길이 따로 있나본데, 

확실히 지체높은 사람이 쓰는 저택이기 떄문에 다른것으로 보인다.

  "수선화 향이 좋네요? 어멋?"

  하퍼는 수선화 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발코니 문을 열었는데, 동그란 욕조 위에 수선화 꽃이 가득 떠있어서 놀라고 말았다. 

하녀들이 미소지으면서 커다란 타올을 들고 말했다.

  "아가씨, 옷을 벗어주세요."

  스륵-

  하녀들이 타올로 가려주는 사이에 하퍼는 옷을 하나씩 벗었다. 

가죽과 벨벳으로 이루어진 외투를 바깥 옷걸이에 걸어두고, 리넨셔츠를 벗어서 하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부츠를 벗기위해 허리를 숙였다.

  "아아..."

  하녀가 당황한듯 낮은 탄식을 질렀다. 아마 나의 등과 어깨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을 본 듯 하다. 

부츠를 벗어두고 하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놀랐어요? 용병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상처가 하나 둘 생기더라구요."

  가죽과 울로 이루어진 타이트한 바지를 벗고, 속옷을 풀자 하퍼의 맨몸이 완전히 다 드러났다. 

  "여기 가슴아래랑, 여기 허벅지에도 큰 상처가 하나씩 있죠. 같은 시간에 생긴건데 정말 죽을 뻔 했다니까요."

  "용병생활은... 그래도 자유롭지요?"

  하퍼가 흉터를 가르키며 설명해주자 옷을 받던 하녀가 동경의 눈초리로 질문했다. 하녀의 삶에 지쳐 한번쯤 모험을 꿈꾸었을 테니까.

  "여자는 잃는 것이 더 커요. 대부분은 겁탈당하다 죽겠죠."

  "아..."

  그녀의 삶이 최선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하퍼는 최대한 냉정하게 말해주었다.

하녀가 어쩔줄 몰라하며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자유는 달콤하니까요?"

  하퍼는 미안한 마음에 긍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말을 들은 하녀가 다시 밝게 웃었다. 

  '열 일곱, 열 여덟쯤 되었을까? 저 나이에 나는...'

  하퍼는 슬픈 생각이 들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발부터 욕조안으로 집어넣으면서 

기분좋게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구었다.

  "엣취이!"

  옆 발코니에서 남자 재채기소리가 들렸다. 

  '두보아? 옆방이었구나.' 

  욕조에 담긴 몸이 점점 나른해진다.



  [별바 05.29 16:07]

  두보아는 살바토르의 배려로, 하인의 안내를 받아 목욕탕에 도착했다. 럭키가 꼬리를 흔들면서 쫒아온다. 

안내를 맡은 늙은 하인은 목욕탕을 설명했다.

  "이 목욕탕을 말하자면 오래된 유적지나 다름없죠. 루만제국 요새 시절부터 이 아그리파 가문 저택에 만들어졌으니깐요. 몇 번의 보수 공사가 있었지만 거의 초창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대 루만식 목욕탕인 셈이죠."

  늙은 하인의 말에는 오래된 명가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두보아는 잠깐 럭키를 바라봤다. 

잘생기고 귀염성이 넘치는 럭키는 꼬질꼬질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혹시 이 녀석, 럭키도 같이 씻길 수 있을까요?"

  "손님, 제가 따로 씻기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늙은 하인에게 럭키를 맡긴 두보아는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푸른색 도자기 타일과 새하얀 대리석 타일이 교차하여 바닥에 깔렸었다. 따듯한 색감의 대리석의 벽면과 한하게 뚫린 창문 사이로 햇빛이 걸려있다. 

목욕탕 정 가운데는 물을 뿜어내는 거대한 늑대 조각상이 있고, 늑대 조각상을 중심으로 원형의 탕이 있었다. 

늑대 조각상의 입에서 뿜어내는 온수덕에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햇살에 비춘 수증기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목욕탕 한쪽에는 수건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마사지를 위한 단풍나무 탁상이 있다.

  "손님, 옷가지를 저에게 주시면, 세탁해 돌려 드리겠습니다"

  목욕탕 안에서 바구니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하녀가 두보아에게 말했다. 두보아는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워낙 하녀가 덤덤하게 말하는 통에 두보아는 옷을 벗어 하녀의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하녀는 종종걸음으로 목욕탕을 나갔다. 

그 와중에, 역시 주인님이 제일 크셔. 애호박만 한 건 역시 없네. 라는 중얼거림을 들은 거 같았지만 두보아는 애써 참았다.

두보아는 말로만 들었던 고급 향유와 라벤더 향이 들어있는 비누,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해면에 잠시 망설였으나, 

곧 몸을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 깨끗한 물에 씻어내고는 탕에 들어갔다. 따뜻한 온수에 온몸이 늘어져 갔다. 

지난 몇 일간 감옥에 갇혀있던 스트레스, 허기짐, 피곤함이 사르르 녹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잠이 사르르 왔다. 

두보아는 이런 식으로 잠들지 않기를 원했다. 무방비적으로 잠들면......

  "멍청이"

  여자의 냉소적이고 차가운, 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보아는 잠이 확 깼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체로 서 있었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는 윤기가 넘쳐 흘렀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 키가 작지만 아담하면서도 색기가 가득해 남자를 금방 설레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곱슬곱슬 거리는 흑발의 단발머리와, 짙푸른 파란 눈동자의 매력은 쉽사리 잊지 못하게 만든다.

두보아는 그녀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함께 지내온 포르토벨 산의 마녀. 환영 숲의 지배자. 

온갖 이명을 가진 마법사. 그리고 두보아의 영혼의 절반을 저당잡은 '리키'.

리키는 비웃음을 지으면서 두보아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고작 감옥에 갇혀서 쩔쩔매려고 나한테서 도망친 거야?"

  "보고 있었다면, 도와주지 그래?"

  "뭐하려고. 내가 왜 자길 도와줘야 하는건데?"

  두보아는 말을 그만두었다. 서로 물음표의 연장선. 이 여자와 말싸움을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냉소를 한번 짓고는 대화를 그만두었다. 리키는 탕 속으로 들어왔다. 

6년 동안 못 볼 것 다 보고, 툭하면 살까지 섞던 사이답게 둘은 무덤덤했다.

  "어머, 자기야. 자기야"

  리키는 쿡쿡 웃으면서, 두보아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귓가에 교태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랜만에 봤다고 성욕이 넘쳐흐르네. 자기의 성욕이 내 심장까지 뛰게 만들어"

  리키는 두보아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리키의 말캉거리는 가슴 감촉에 두보아는 식어버렸던 마음이 뛰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의 반쪽은 내 것이라는 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자기가 느끼는 것, 자기가 생각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스며들어와"

그리고는 얇고 긴 손가락으로 사타구니를 쓸어내렸다. 간질거리는 움직임과, 목덜미를 물고 핥는 감촉에 두보아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리키는 깔깔 웃었다.

  "자기, 오랜만에 할래?"

  두보아는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내뿜었다. 에취! 리키는 두보아의 입술에 살포시 입맞춤 해줬다. 

둘이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서로의 혓바닥이 뒤엉켰다.

  "그러니까......내게 돌아와."

  얼굴이 붉어진 리키가 입술을 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두보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쉬움이 머릿속을 가득했다.

  "......"

  서로 말이 없었다. 리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가! 꺼져버려!"

  두보아는 눈을 떴다. 리키는 없었다. 

심하면 찾아온 그녀의 환상. 

지독한 실체감에 두보아는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녀의 손길로 솟아오른 사타구니가 그녀가 왔다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파트오더 상황부여]

  정신차린 두보아는 갑자기 인기척을 느껴서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살바토르와 크리스가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살바토르는 그 거구가 어디갔는지 놀랄 정도로 머리만 남기고 욕탕에 누워있었고, 크리스는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로 허리까지만 욕탕에 담근채 앉아있었다. 둘다 흐믓한 미소로 두보아를 쳐다보며 입술을 씰룩거리고 있다.



  [홍차매니아 05.29 17:54]

  “이 존마니! 저거,저거 풀발기 된 거 보소! 여자라도 불러줄까?”

  살바토르는 천박하게 웃으며 두보아에게 삿대질을 했다.

  “야이씨. 이거 존마니가 아니라 존나 대물이네. 엉? 완전 지구라트야! 지구라트!”

  먼 고대 이교도들이 높게 쌓은 성스럽지 못한 재단을 언급하며 살바토르는 두보아를 놀려댔다.

아직 정신이 덜깬 두보아는 멍하니 크리스와 살바토르를 보았다.

살바토르는 만면에 웃음기를 띈체로 두보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팔짱꼈다.

  “어떠냐. 업소에서 끝내주는 여자 좀 불러주랴?”

  “...네?”

  “농담이야. 존만아.”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그의 근육질 거구를 자세하게 볼수 있었다.

무슨 고대 헬라스 문명의 조각상이라도 되는 듯 부위부위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근육은 보는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들게 만들었다.

사람 머리통만한 어깨에 팔, 바위같이 단단한 가슴은 마치 무슨 고대 신을 보는 듯 했다.

거기에 밧줄같이 튀어나온 힘줄하며 배를 단단히 조이는 복근은 갑옷과도 같았다.

거기다 허벅지 까지.

  욕탕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피부의 하인이 다가와 하반신에 수건을 감아주었다.

제법 큰 수건이긴 했으나 하체와 상체 사이를 간신히 가릴뿐이었다.

그가 목욕탕 한쪽에 마련된 안마대에 엎드려 눕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인이 다가왔다.

하인은 따뜻한 올리브 유를 넉넉하게 붙더니 허리춤에서 황동열쇠 같이 생긴 목욕칼을 꺼내어 살바토르의 피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생선비늘을 벗겨내듯 그동안 쌓인 때를 살바토르의 피부에서 벚겨낸 하인은 한쪽으로 모아 허리춤에 찬 천으로 밀어냈다.

어찌나 때가 많이 꼇는지 그리고 살바토르의 덩치가 하도 커서 두어번 더 같은 작업을 반복해해야 때를 벗겨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피부가 말끔해질때까지 천으로 딱더니 재차 올리브 오일을 부어 마사지를 했다.

다리까지 때를 벗겨낸 살바토르는 안마대에 걸터 안더니 한쪽팔을 쭉 내밀었다.

어깨와 팔을 따라 하인이 때를 벗기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크리스와 두보아를 향해 살바토르가 웃음을 띄며 말했다.

  “어이 촌놈들. 니들도 해볼래?”



  [별바 05.29 22:30]

  촌놈인 두보아에게는 신세계였다. 크리스도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하인의 서비스를 받은 세 남자는 개운한 기색으로 온탕에 몸을 집어넣었다. 자고로 온탕에 남자끼리 들어가다고 해도 

수다가 시작되는 법이었다.

  시작은 크리스였다. 

  "이야, 이런 최상의 서비스를 맨날 받는거야?"

  "손병신, 이건 최상이 아니야!"

  "이게 최상이 아니라고요?"

  "그래, 존만이. 최상의 서비스는 따로있지!"

  살바토르는 진지하게 말했다. 

  "당연히 최상의 서비스는 북해의 진주, 합스부르크의 '레드 루비'의 서비스지!"

  "나도 들어본 적 있어"

  크리스는 바로 대꾸했다.

  "세상에 손꼽히는 미녀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던데! 벗은 계집들이 최고급 올리브유를 자신의 몸에 바르고는 고급 포도주를 따르는 천국으로 유명하던데 거길 가봤어?"

  살바토르는 씨익 웃었다. 살바토르의 하얀 이빨이 유독 빛나 보이는 듯했다.

  "물론! 거긴 정말 최고의 천국이지. 몇 일이고 계집을 품에 안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다만 더럽게 비싸서 말이야.. 나는 거의 공짜로 맛보았어"

  "뭐? 공짜라고? 거짓말 더럽게 못하네"

  "손병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계집도 말야, 성욕이 넘쳐흐른다고. 내가 모조리 천국의 맛을 보여줬지! 보라고!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크리스와 두보아의 시선은 저절로 살바토르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그리고 저절로 수긍이 가버렸다. 둘은 떨더름한 표정으로 인정했다.

  "아 맞다. 손병신, 아까 왜 병신같은 반응을 보인거야?"

  "뭔 개소리야"

  "이 존만이가 했던말에 존나 싸구려 희극인마냥 웃기던데"

  살바토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두보아가 입을 그때 열었다.

  "제가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 시장 암살사건에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이..이상한 점?"

  크리스가 순간 말을 더듬었다. 두보아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각 해보세요, 그 날 조슈아 주교의 비판에 빈 피넬리 가문이 몽땅 모여서 항의를 하려고 성당에 모였죠"

  두보아는 자신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빈 피넬리 가문원들 사이에 오르겐 시장이 암살 당했죠. 하지만 저는 오르겐 시장을 제외하고는 빈 피넬리 가문의 그 누구도 최소한의 부상을 당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죠. 심지어 감옥에서도 말입니다. 확인해봐야 겠지만, 아마 당일은 부상당했다는 빈 피넬리 가문원이 있다는 말은 없었을 겁니다." 

  살바토르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하인을 불렀다. 두보아의 의심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두보아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빈 피넬리 가문의 사람들이 작당하고 오르겐 시장을 살해했다는 것이 아니라면, 고도로 훈련받은 암살자의 짓 일겁니다"



  [반딧불 05.30 01:39]

  크리스는 두보아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고도의 훈련받은 암살자는 본인이 맞지만, 어떤 사건의 주범으로 오해 받은 것이 사실, 한두번이 아니라서 크리스는 그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나 범인으로 오해받아 이 일행으로부터 쫓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리고 크리스는 이내 결심한듯 탕에서 슬적 일어서며 물을 가른다.

  "어이 손병신, 거기 스탑"

  "히익"

  눈치빠른 살바토르는 특정 이야기가 거론될 때마다 행동이 이상해지는 크리스를 발견하고, 척하니 보아도 자리를 피하는 크리스의 뒷통수에 제지를 가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죄지은 범인마냥 소스라치게 놀라고, 얼어붙은 듯이 똑바로 살바토르를 보지못하고 곁눈질만 슬적슬적 한다.

  "왜, 왜, 빌어먹을 오크 놈아...!"

  "아까도 그렇고, 암살자 얘기하니까 당황한게 이 새끼 좀 수상해. 그리고 분명히 내 어깨에 걸레같이 걸어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단검으로 바뀌질 않나. 너 이새끼 설마.."

  "꾸~울꺽"

  크리스의 불안한듯 침을삼키는 소리가 온 목욕탕 사방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두보아도 덩달아 외쳤다.

  "그러고보니 자꾸 암살자 얘기 나오니까 불안해 했어요! 아까도 분명히 살바토르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제 뒤에 있더라니까요?"

  크리스는 동공이 요동치며 여길 어떻게 탈출할까 궁리를 해본다. 불안한 탓에 정신집중도 되지 않는다. 지금 있는 자리로부터 목욕탕 문과의 거리는 2m는 훌쩍 넘어보이고, 위치바꾸기라던가 어떤 암살자의 기술도 쓰기가 애매했다. 그럼과 동시에 살바토르의 입에서 크리스를 옥죄는 공포의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너 이새끼... 주뎅이도 병신이냐?"

  살바토르의 한마디에 떨림이 멎어들고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걸 듣던 두보아는 '이게 아닌거 같은데' 라는 표정으로 살바토르의 표정을 쳐다본다.

  "아니.. 그게 중점이 아니지 않아요?"

  "엉? 또 뭐가 있는데, 아. 발병신이란걸 뺐나?"

  "아니 그게 아니..."

  두보아와 살바토르가 설전하는 찰나에 크리스는 스르륵 하고 살바토르와 두보아를 마주보도록 탕에 몸을 뉘인다. 그리고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어릴때부터 자신을 키워주던 블러드나이프 어쌔신 길드에서 자란 것과. 의뢰란 의뢰는 제대로 처리해본적도 없어서 길드장에게 매일 혼나고, 아끼던 동료들이 위험한 의뢰로부터 함정에 빠져 살아돌아오지 못하거나. 30골드에 자신의 아내가 데려온 입양딸을 죽여달라는 의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돈을 쥐어주고 도망가라고 했다가 들통나서 난리난 사건과, 신임을 잃어서 가장 최하급 의뢰인 동물을 찾아다니거나 사람을 찾아다녔던 그 시절. 그리고 적대 길드인 리오넬 길드로부터 쫓겨다니다가, 최후에 어떤 단검을 강에 빠트린 탓에 자기가 범인으로 오인받고 도망쳤던 그런 일들을. 크리스는 한참이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생각해낸 결과는. 이런 부족한 자신을 구해주려 노력하고, 같이 여기까지 와준 동료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이 어쌔신이 라는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말한뒤 모함받지 않고 당당하게 이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면 했다. 크리스는 탕에 몸을 뉘어 얼굴만 남겨둔채 초점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말한다.

  "방금 교전에서 난 너의 어깨에 있었지.. 그건 너도 알거야.. 나를 어깨로 올린건 너거든..."

  쓸때없이 티격태격 하던 살바토르와 두보아의 소리가 멎는다. 그리고 크리스의 말에 집중했다.

  "불과 1~2초 정도였나.. 두보아. 당신. 당신이 살바토르의 경고로부터 화살을 피하고 나서. 다시 앞으로 뛰어갈때. 뭔가 느끼지 못했어?"

  두보아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그 당시 탈출하던 장면이 회색빛으로 떠오른다. 등뒤에서 벌트 화살이 빗발치고.. 땅바닥에 쳐박히는 화살도 있고.. 그 와중에 럭키가 자신을 바라보며 짓던...

  "엇?"

  두보아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성을 내뱃는다.

  "설마..."

  크리스는 대충 두보아가 상황을 이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이어간다.

  "너의 개는 네가 위험에 빠진걸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지. 개들의 육감은 정말 뛰어나. 내가 의뢰를 받고 어떤 저택에 갔을때도 실패했던 이유가 개가 참 눈치가 빠르더라고."

  크리스의 '의뢰'라는 말에 이목이 집중된다. 그리고 살바토르의 손이 주먹으로 긴장된다.

  "두보아 당신의 등 뒤로 정확히 날아오던 화살한방. 그리고 나는 그걸 이미 알아차리고 이 능력으로 화살과 나의 위치를 바꾸었지. 그것이 바로 암살자의 기술 스위칭."

  "뭐뭣?!"

  두보아와 살바토르는 암살자라는 말에 기겁하며 탕으로 부터 몸을 일으키고 크리스를 향해 전투할 자세를 갖추었다. 두보아는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설마, 오르겐 시장을 암살한게...?"

  살바토르와 두보아는 충분히 위협적인 상태였지만, 크리스는 개의치않고 자세를 고치치 않은채 말한다.

  "당시 내 나이. 6살.......

  .

  .

  .

  기껏해야 엄마 품에 안겨서 애교를 떨어야 할 나는 부모로부터 버려졌어.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사실 아직도 기억이 안나 그리고 배가 너무 고파서 이집저집 구걸을 하다가 문전박대당하는 걸 반복하면서, 난 어느 한 주점에 들어가. 그 주점에는 나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고, 또 경계하는 인원이 딱히 많지는 않았지. 그리고 나는 음식냄새를 찾아서 창고에 몰래 들어가. 그런데 그 곳이. "

  크리스는 숨을 고쳐쉬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블러드 나이프라는 암살자 길드. 리오넬 어쌔신 길드보단 명성은 떨어지지만 그 길드엔 이름 난 암살자가 많았지. 난 실수로 그곳에 들어갔고. 배고픔과 피로감, 불행감에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 어쌔신 길드에 잡힌 나는 함부러 침입한 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 빠지게 되. 근데 참 웃긴게 말야. 나를 단검으로 벽에 걸어두고 지내들끼리 낄낄 웃으면서 다트 게임을 하려고 하더라? 그거보면서 참, 그 어린나이에 기가 막히더라구.. 깔깔 웃어대면서 어린아이 하나 죽이겠다고 서로 단검을 내미는 꼴이란.. 그것을 보면서 나는 삶을 포기했다. 아무래도 충격적이었던 일화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나. 그때의 그 절망감은 아직도 별로 잊혀지지 않아.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줄어들어. 아 이제 곧 죽는가 했지. 근데 갑자기 내 눈 앞에 단검이 날아오는데, 너무도 느리게 날아오는거 아냐. 그래서 나는 아무생각없이. 그 단검을 고개를 돌려서 피했어. 그리고 또 다리쪽으로 날아오는 단검하나. 그리고 나한테 적중하지 못할 단검은 그냥 가만히 있었지. 그렇게 피한 단검이 대략 10자루였나? 그걸 보던 블러드 나이프 길드 마스터가 나를 보고는 크게 될놈이라고 하면서 나를 놓아주고, 암살자가 될 생각이 없냐며 나를 설득시켰지. 나는 그러겠다고 했어. 딱히 갈데도 없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없고. 나에겐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암살자의 길을 걷게 되. 그런데 참 순탄하진 않더라고. 마음이 악독해지지가 안더라고. 그 어린나이에 누굴 죽여보라는 명령을 받아도, 막상 누군가를 죽이려 들면 손부터 떨려와. 머리는 새하얘져.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 그리고 단검을 놓치는것도 수십번. 동료가 눈앞에서 죽는 것도 수십번. 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입양딸이 싫다고 재산을 물려주기 싫다고 30골드에 죽여달라고 하더라 킥킥킥.. 어린 아이면 차라리 죽이기 쉽겠다 생각해서 의뢰를 내가 덥썩 받아버리고 시도했는데.참.. 그 아이를 보니까 어릴적 생각이 나더라. 그리고 난 그 여자애한테 말했지. 너네 아빠가 너 죽일라고해. 이 돈가지고 도망가. 그랫더니 아이가 도망안가고 엄마한테 말했다가 난리가 난거야. 난 블러드 나이프의 명성을 훼손했고, 고양이나 잃어버린 사람이나 찾아다니며 하급 어쌔신의 업무만 해왔지. 그러다 어느날 사건이 발생해. 블러드 나이프의 1급기밀 의뢰로 어떤 함하나를 옮기게 되. 그런데 그 함에 들어있던 것은 알고보니 전설의 무기. 우리 암살단원들은 그걸 모른채 그 함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정보가 새어나갔는지는 몰라도 우리 단원들은 리오넬 길드의 습격을 받게되. 그런데 하필 나는 도망간 고양이를 잡아달란 의뢰에 길을 돌아다니다 잘못들은 곳이 하필. 우리 암살단원과 리오넬 길드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난 변변찮게 전투를 잘했던 경험이 없어서. 우리 암살단원들은 나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주었지만. 우리 암살단원들은 리오넬 길드에 전멸당하고, 죽어가던 내 동료녀석이 피칠갑을 하고 나한테 기어와서 함을 내가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지. 그리고 난 그 함을 들고 리오넬 길드로부터 도망가. 쫓기고 쫓기고 쫓기는 상황이 발생했지. 난 빠른 거라면 자신있어. 그런데 그 수십명의 어썌신에게 쫓기는 건 정말. 정말 죽을수도 있겠다라는 공포더라. 그리고 길드에 거의 다 도착해갔지. 레드 브릿지 그 다리만 하나만 건넜으면 난 그 함을 안전하게 길드에 넘겨줬을꺼야. 그런데 다리의 틈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함을 떨어트렸는데. 그 함이 박살나면서 튀어나온 것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른다는 전설의 암살자 무기인. 제왕의 단검. 난 그걸 강속으로 빠트리고 말았어. 그리고 어쨌든 도망쳤지만, 난 우리 길드로부터 단검을 훔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제왕의 단검이라면 어떤 암살자들도 눈독을 들일테니까.난 그렇게 모함아닌 모함을 받고 암살자 길드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지. 그렇게 몇일동안 굶었더니, 정말 죽을거 같더라. 그러다가 본게 어떤 마을의 벽보였는데. 현상범들을 잡으면 돈을 준다는 벽보를 보고, 나는 그 범죄자들을 잡으러 다니는 현상금 헌터로 일을 했지.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준 블러드 나이프 길드를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거야. 내게 걸린 오해를 내 스스로 풀고싶어. 난 그 단검을 찾아서 그 길드에 넘겨주어야해. 그럼 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수 있어. 그 단검의 단서를 찾아서 이동하던 와중에 홀스타인에 고대 루만인이 만든 단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현상금 헌터로 일하려면 단검이 필요하니까. 난 단지 그걸 찾으러 왔을 뿐이야. 이게 여태까지의 내 이야기다."

  크리스의 긴 과거 이야기였지만, 살바토르와 두보아는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정적을 깨고 살바토르는 입을뗐다.

  "손병신 아니, 주뎅이 병신 아니 이게 아닌가 발병신! 젠장! 어쨌든! 그걸 어떻게 믿지?"

  긴장한 살바토르와 두보아. 탕에 몸을 뉘인채 초점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나체로 대치아닌 대치중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떤 여성이 있었으니..

  '멍청이들... 다들려...'

  그리고 크리스는 정적이 다소 흐른 뒤에 입을뗀다. 

  "못믿겠으면 여기서 날 죽여. 너의 힘이라면 가능할꺼야. 내가 잡혔을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건 고작 녹슨 단검이었고. 그리고 난 더 이상 누군가의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아.."

  크리스의 말에 살바토르와 두보아의 어깨에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두보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녹슨 단검...? 최근에 현상범들이 파상풍에 걸려서 죽었다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그건가?" 

  "특히나, 내가 다쳤을때 끝까지 나를 데리고온 살바토르 너. 그리고 나를 지켜준 두보아, 그리고 활도 엄호해주던 하퍼 아가씨."

  크리스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다신.. 동료를 잃고 싶지않아..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어.. 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거든"

  살바토르와 두보아는 이내 자세를 풀고 서서 서로 스윽 바라보더니 살바토르가 물살을 해치고 크리스 앞으로 걸어가 어깨를 잡고 끌어낸다.

  "어이! 팔병신! 아니 발병신! 아니..."

  "아니 어쨌든 상관 없잖아요!"

  살바토르가 두보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니가 어쨌든 상관없어! 어쨌든 오르겐 시장을 죽이지 않았고! 빈 피넬리 가문만 아니면 되! 난 너를 믿는다! 병신!"

  두보아는 끝내 살바토르의 대사에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푸하하하 살바토르 정말 당신답네요."

  크리스가 살바토르의 손에 들려있는채 한마디 한다.

  "이 빌어먹을 거인들 팔부러질거 같으니까 웃는건 그만두고 내려줘!"

  살바토르와 두보아와 크리스.이 셋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체로 서로 낄낄낄 웃으며 등치큰 두 사내들이 물살을 일으킨다. 그 사이에 크리스는 어쩔 수 없지 당하지만, 그 분위기는 행복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걸 원치않게 듣고 있던 하퍼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바보 같아도 멋있는 구석이 있네"

  그러면서 들리는 괴성의 소리.

  "으아악! 내 허리 부러져 이 빌어먹을 거인!!!!"



  [포르쉐 05.30 04:46]

  "본의아니게 엿듣게 되서 미안해요. 

블러드 나이프 길드면 용병일 하다가 몇번 마주친 적 있어요. 암살자 길드 답지않은 바보같은 면이 있던데..."

  "어... 허흠! 으허음! 크흠!"

  하퍼가 담담히 말하면서 목욕탕에 들어와 몸에 가리고 있던 타올을 벗고 나체가 되자, 셋은 하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귀여운데?'

  그 광경에 하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왜 시선을 다들 피하나요? 20년 이상 용병일 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흔해서, 남녀 혼탕도 익숙하다구요. 

게다가 여기는 피부마사지도 해준다니, 올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나저나 살바토르는 정말 크네요?!"

  "이쪽으로, 아가씨."

  하퍼가 세 남자의 물건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보니, 하인이 다가와 불렀다.

  안내를 따라 안마대에 눕자, 검은색 피부의 하인이 하퍼의 온몸에 올리브유를 발라주었다. 

하퍼는 약간의 창피함이 밀려왔으나, 마사지하듯 온몸에 올리브유를 펴바르는 손짓이 워낙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금방 편안해 졌다. 

  그리고 하인은 황금빛 목욕칼을 꺼내어 하퍼의 몸에 각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몇 일동안 씻지 않아서일까 약간의 각질이 벗겨나 나오는 듯 했다. 

벗겨진 각질들은 천으로 모아서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다리와 팔까지 마무리 한 다음, 

하인이 똑바로 눕기를 권유해서 자세를 바꿨다. 목과 쇄골을 지나 가슴과 허리, 그리고 다리를 살짝 벌리고 아랫배와 사타구니, 

마지막으로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올리브유가 고르게 펴 발라졌다.

  "하..."

  기분좋은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입에 흘러나왔다. 마사지를 시작 한 후 부터 남자들이 조용해져 있는데, 

이따금씩 참방참방 소리만 들릴 뿐이다. 

  '왠지 구경당하는 기분이라 조금은 부끄러워졌어...'

  하인은 계속해서 목욕칼로 각질을 벗겨낸 후 수건으로 마무리 해주었다. 몸에서 윤기가 나는 듯 해서 하퍼는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하퍼는 하인에게 고맙다고 말한 다음 빤히 보고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타올을 걸치고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파트오더 상황부여]

  하퍼가 목욕탕을 나가고 난 후, 곧바로 늙은 남자 하인이 목욕탕입구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저녁 식사준비 마쳤습니다! 원하실 때 시장하시면 드시러 오시지요."

남자 세명은 멍하게 있다가 그말을 듣고 나서야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달았는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목욕탕에 울려퍼졌다. 

은은하게 쟈스민 향이 목욕탕의 수증기와 어우러 지면서, 천장에 수증기가 맺혀 방울지고 있다. 

두보아와 크리스가 차례로 마사지 받기 위해 준비하고 살바토르는 하인을 불러 무언가 논의하고 있었다.

하퍼는 방에 따로 받은 물로 씻는 것을 마무리한 다음 몸에 타올만 걸친 채, 발코니 밖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석양이 홀슈타인 성벽을 붉게 물들였다. 루네아 강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내성 밖의 빈민가 빼곡히 들어선 집들사이로 검은 그림자와 황금빛 노을이 뚜렷한 명암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많은 집과 상점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성벽 사이 망루에서 석양을 등지고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병의 인영이 유난히 쓸쓸하게 보이는 저녁이다.

  여전히 목욕탕쪽에서 시끌시끌한 남자들 목소리가 들려오고, 하퍼가 슬쩍 미소를 짓는다.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저택 주변 어디선가 만돌라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홍차매니아 05.30 13:35]

  살바토르는 2층에 있는 회의실에 발을 디디었다.

문가에는 하인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그가 다가가자 인사를 올렸다.

살바토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응답했다. 

출입구 너머로 들어가니 그의 아버지인 피오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가 있었다.

근데 회의실에는 그의 아버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홀슈타인 시의 다른 유명인사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에 선출된 신임 상인 길드장인 유겐 부르크그라프 폰 바이스펠트, 조슈아 주교를 비롯하여 글라우쉴트 가문의 에릭, 코드키에비츠 가문의 얀, 에스텡 가문의 발레리 등 빈 피넬리 가문의 정적이거나 아그리파 가문과 우호적인 인사들이 모여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한창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피오레는 살바토르의 인사에 겨우 고개를 돌릴수 있었다.

  “아! 고생했다. 아들아.”

  피오레는 표정을 활짝 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을 반겼다.

살바토르의 아버지가 아니랄까봐 그 역시도 크고 단단한 체구를 자랑하였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대여서 그런지 잘 정돈된 수염과 머리카락에서 희끗희끗한 가닥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자리에 앉도록 하여라.”

  손짓을 하며 자리를 권한다.

  “네"

  살바토르는 그러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꺼내서 앉았다.

피오레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많이 힘들었느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근데 와인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치즈랑 햄도 갖다 줄까?”

  “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피오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맞추어 아까 문가에 서있던 하인이 예를 표하더니 음식을 가지러 갈려는 모양인 듯 뒤돌아 사라졌다.

  “잡혀간 후 어떻게 된것이냐.”

  “특별한 재판도 없이 바로 사형을 시키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문과 절차적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슐츠 씨는 어떻게 됬습니까? 3일째 되도록 본적이 없었는데.”

  살바토르는 그의 변호사 행방을 물었다.

  “하인리히는.... 하인리히 슐츠는 암살당했네.”

  “....네?”

  “새 변호사도 구하기 너무 어려웠어. 돈을 몇배 씩 준다고 해도 아무도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지. 거기다 피넬리 가문 쪽에서도 노골적으로 압박이 들어왔지 뭐냐. 세금이며 법률문제며 사업이며 그리고 순찰대 일까지 거들먹거리며 말이다.”

  “이런 쳐죽일 새끼들!”

  절로 분노가 일어났다.

이에 자기도 모르게 살바토르는 강하게 주먹쥐었다.

피오레는 쓴웃음을 지었다.

  “살바토르야. 말을 곱게 쓰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여기엔 귀한 손님들도 와계신단다.”

  “죄송합니다.”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그러나 마음속의 분노는 쉽게 가라안질 않는다.

거칠게 나오던 숨도 좀처럼 진정되질 않는다.

  “성격은 여전하군요.”

  거칠어진 마음속을 달래듯 고운선의 목소리가 그의 귀로 파고들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이런게 아닌가 싶다.

놀란 살바토르는 몸을 돌렸다.

거기엔 붉은색 드래스를 입고 금발벽안의 아름다운 여자가 와인병과 약간의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엘레나.”

  “거리에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암살범을 찾는 다는 미명하에 아무집이나 허가증도 없이 들어가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죠. 불시 검문은 다반사구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같이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죠.”

  엘레나 폰 바이스펠트는 유겐 폰 바이스펠트의 외동딸로 살바토르의 약혼자이다.

근 몇일만에 약혼자를 본 살바토르는 정신을 못 차렸다.

살며시 다가온 엘레나는 살짝 웃음을 짓더니 마실것과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고운 얼굴과 몸에서 사는 좋은 향기는 살바토르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뒤이어 살바토르 옆에 앉더니 햄에다가 치즈를 잘아 얹어놓았다.

바로 옆에서 보니 살바토르는 숨이 막힐 듯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약혼자의 자태를 구경하던 그를 지켜보던 피오레는 헛기침을 했다.

  “으흠! 화난 모습보단 보기 좋은건 알겠는데, 마저 이야기해주지 않으련?”

  “아 넵.”

  몸가짐을 다시 가다듬고 살바토르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결국 저는 감옥에서 탈출해야했습니다. 함께 갖힌 사람들과 같이요.”

  “친구를 새로 사귀었구나!”

피오레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새 친구들도 누명을 썼느냐?”

  “네”

  “저런!”

  “저희가 탈출할 수 있었던 건 갑자기 큰 충격을 받고 건물 자체가 크게 무너져 내려서입니다.”

  “경비대는 어떻게 하고?”

  “다짜고짜 아무이유도 없이 사살을 해대고 그래서 힘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피오레는 한쪽 턱을 괴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잠깐 말을 멈춘 살바토르는 와인을 마시며 약혼녀가 손질한 햄과 치즈를 입에 집어넣었다.

  “어쩔수 없었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활을 쏴대고 창칼을 들이밀며 위협해대는데 달리 방도가 없었어요.”

  “그래, 아까 광장 쪽에서도 소란이 있었더구나.”

  “....기병대 놈들을 손 좀 봐줬습니다.”

  “손 봐줬다고? 죽인건 아니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에게 쓴웃음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피오레는 충분히 의미를 전달받을수 있었다.

  “오! 살바토르야. 야만인이나 괴물들이라면 모를까.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된단다.”

  “안 그러면 저희가 죽었을태니까요. 치키니 그 자식. 가문 간 분쟁은 이미 일어났다면서 저 하나 죽는 건 앞으로 닥쳐올 큰일 앞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아, 오르겐의 죽음도 언급하면서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피오레는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차에 여자 하인 하나가 와서 인사를 올렸다.

  “주인님. 식사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알겠네.”

  피오레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밖은 또 위험하니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하고 하룻밤 묶고가심이 어떠신지요?”

  “좋소.”

  “고맙습니다.”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살바토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방안을 나서는 가운데 피오레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가왔다.

  “나머지는 새로사귄 친구들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게 어떠냐. 안그래도 여기계신 손님들도 이것저것 궁금하신게 많으시단다.”



  [별바 05.30 16:11]

  살바토르와 피오레 그리고 관련 가문의 인사들은 하인들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식사는 아그리파 ㅁ자형 저택의 가운데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정원에서 이뤄졌다. 솜씨좋은 정원사가 가꿔놓은 정원수 아래 커다란 식탁에서 식사는 조촐하게 시작되었다. 식탁 위로 향초를 가득 담은 향로가 놓이고, 향로에 불꽃이 떨어지자 향긋한 향이 퍼진다. 해가 저물어가자 하인들이 미리 준비해놓은 저택 벽에 매달아놓은 줄 따라 걸린 유리잔 안의 양초의 불꽃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연회장에 마련된 식사에서 피오레가 제일 상석에 앉았고, 손님들은 차례대로 앉았다. 살바토르의 옆에는 약혼자 엘레나가 앉아, 살바토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두 남녀의 상그러운 청춘의 빛에 피오레의 얼굴에는 잠시 미소가 머물렀다.

하인들이 가벼운 에피타이져와 포도주를 식탁에 내려놓는다. 피오레 가주가 말했다.

  "모두의 번영을 위해, 포도주 한잔씩 합시다."

  포도잔에 붉은 포도주가 채워진다. 강한 포도주의 향이 코를 스치고, 모두 천천히 포도주를 음미했다.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모이게 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요"

  피오레 가주가 입을 열었다. 손님 몇몇은 침울한 기색이었다. 유난히 화려한 장식을 달고있는 주교관을 쓰고 있는 조슈아 주교가 대답했다.

  "비극이지요..."

  "허, 주교님은 아무런 말도 안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대머리인 신임 상인 길드장 유겐이 조슈아 주교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조슈아 주교는 심기가 불편했는지, 얼굴이 굳었다.

  "뭐라 하셨습니까?"

  "아무런 말도 안해주셨으면 했습니다. 길드장 선거때 대놓고 오르겐 시장을 지원했..."

  "무슨 헛소리요!"

  "그만!"

  파오레 가주가 큰 목소리로 두 사람를 말렸다.

  "지금 해묵은 감정 다툼을 하려고 모였습니까!"

  피오레 가주는 포도주를 벌컥 마셨다.

  "지금 사태를 해결하자고 모였지, 우리끼리 싸우자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유겐, 자네도 좀 자제하게."

  "......." 

  "알다시피, 빈 피넬리 가문이 폭주하고 있소. 오르겐 빈 피넬리의 복수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반대자들을 숙청하려고 작정하고 있지요"

  손님 한명이 맞장구 쳤다. 그때, 하인 한명이 허겁지겁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살바토르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꺼냈다. 살바토르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허, 별일이군"

  살바토르는 혓바닥을 차면서 말했다. 약혼자인 엘레나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고는 살바토르가 이야기를 꺼냈다.

  "존경하는 명사분들. 파오레의 아들, 살바토르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번 일과 연관된 일인가"

  "많이 연관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파오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새로이 사귄, 제 친구 두보아는 암살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의구심을 저에게 말했죠. 방금 그 의문 중 하나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무슨 의문이라는 겁니까?"

  유겐 길드장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암살사건 당시, 오르겐 시장은 빈 피넬리 가문원들과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조슈아 주교가 긍정했다. 

  "헌데, 사상자는 오직 오르겐 뿐이었다. 이 말입니다"

   손님들은, 순간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빈 피넬리 가문이 언제부터 제 가문원이 공격받는데 가만히 있는 바보천지였습니까. 헌데 그 당일날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혹시나 몰라서 도둑길드와 빈 피넬리 가문 하인들까지 수소문 했지만, 곧장 누군가 크게 다쳤다. 이런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 설마 자작극인가"

  유겐 신임 길드장이 서늘하게 말했다. 조슈아 주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맞소... 지금 기억을 상기해보니, 소란통에 난리는 났지만 정작 큰 부상자는 없었지"

  "섣부르게 단정짓지 말게"

  파오레 가주가 엄격하게 말했다. 조슈아 주교는 답답한 마음에 포도주를 크게 들이켜 마셨다.

  "나는 지금 이 홀슈타인 자유시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오. 정확히는 감이지"

  조슈아 주교는 냉정한 표정으로 재차 말을 이어갔다.

  "썩은내가 가득해.... 이런 기분은 예전에 흡혈귀 백작을 찾아냈을 때, 딱 그 느낌이오"

  "맙소사.... "

  손님 한명이 탄식을 내뱉었다. 

  "감옥이 무언가에 한순간 박살난 것을 알 것이오. 그리고 성화가 잠시나마 불타올랐네."

  "무슨 소리입니까?"

  피오레가 물었다. 조슈아 주교는 심각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무언가 경비대 본부 아래에 있는 것이 확실해. 뱀파이어든 늑대인간이든, 추악한게 말이지"

  조슈아 주교는 단언했다. 

  "가서 확인해봐야 할거 같소. 왠지 이번 암살사건과 연관있을 것 같은 예감이오"

  "하! 단지 예감일 뿐이오.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잖소!"

  유겐 신임 길드장이 반발했다. 그 순간, 아그리파 가문의 병사 한명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치키니 빈 피넬리가 용병대까지 끌고와 저택을 포위했습니다!"

  모두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크리스만이 서글프게 포도주를 마저 따르며 앉아 중얼거렸다.

  "아직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반딧불 05.30 21:48]

  아직 식사가 도착하지 않아, 식탁위엔 먹던 포도주와 포도 사과 정도만 남겨두고 다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철그럭, 철그럭 ·  ·  · 

  하는 무기를 드는 소리도 요란하게 나며, 크리스는 혼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식탁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정원에 홀로 남자마자 온전한 사과와 포도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과일을 집어들다보니 손이 부족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정원 우측 거실로 들어가는 길에 옷걸이가 하나 있었는데, 갈색 천으로 된 크로스백이 보였다. 크리스는 얼른 사과와 포도를 내려놓고 살금살금 옷걸이 근처로 다가가 가방을 살펴보았는데, 가방을 뒤져보며 옷걸이를 스윽 보니 아무래도 외출할때 쓰는 우비나 코트같은 것들을 걸어두는 옷걸이인 듯했다. 마침 크로스백의 안도 비어있었고, 허름한 것으로 보아 하인들이 장볼때 쓰는 듯한 가방이었다.

  "이거면 충분하겠는데."

  크리스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하인들에게 들통나기 전에 사과 2개와 포도 한송이를 담았다. 크로스백이 생각외로 넉넉해서 몇개 더 들어갈거 같았다. 그래서 식탁의 반대편에 있는 과일을 가져오려고 식탁을 둘러서 돌아가고 있는 찰나에 저택 외부로부터 무슨 소리가 들린다.

  다그닥 다그닥 이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저택 주변으로 병사들이 모이는 것이 들렸다. 때문에 크리스는 슬슬 나가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 방금 사람들이 나간 길로 나가려는 찰나, 뭔가 잃어버렸다는 듯이 옆구리와 가슴팍을 더듬었다.

  "아차..."

  크리스는 다급하게 셔츠를 풀어 헤치더니 셔츠 안엔 얇은 가죽조끼가 있었다. 가죽조끼엔 뭔가 걸어둘 수 있는 모양의 고리나 홈이 여러개 있었지만, 걸려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가 없... 네..."

  문득 생각이 난 크리스는 주머니를 뒤져보다 보니, 방금 전의 전투에서 추격자의 단검집에서 꺼냈던 날이 울퉁불퉁한 작은 투척 단검 두자루를 꺼내어 가죽 조끼에 걸었다.

  "이거라도..."

  다시 나가려는 찰나에 한발자국을 못가 크리스는 다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스윽 하고 뒤를 돌아보며 식탁에 눈이 갔는데, 식탁에는 은빛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 등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빛에 크리스는 절로 눈이 갔다. 그리고 곧장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포크를 잡아 들더니 포크의 생김새를 관찰했다.

  "오.. 이거 은근히 무기가 될 수 있겠는데..."

  크리스는 식탁에 보이는 포크와 식나이프를 모조리 잡아들었다. 그러나 크리스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 저택의 거실에는 아그리파 가문이 장식으로 걸어둔 단검 두자루가 x자모양으로 걸려있는 데, 척보기에도 굉장히 예리하고 날카로운 단검이었고, 크리스가 보고 있는 방향은 바로 그 단검 쪽으로 향해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보지 못한 듯했다.

  "좋아 많이 챙겼다."

  크리스가 다시 돌아서려고 하자, 시선을 돌린 순간 뭔가 반짝거리는 것에 눈이 갔다. 

  "설마..."

  크리스는 반짝거리는 것을 향해 곧장 경쾌한 발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검을 발견하여 단검 앞으로 가는 듯했지만..

  단검이 걸려있는 곳을 그냥 지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눈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행복해했다.

  "오오! 포크 몇개 더 가져가야지!"

  다행히도 하인들이 없어서 크리스는 안심하고 주방을 뒤졌다. 수저와 포크가 들어갈만한 서랍을 열어보며 찾다보니,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듯한, 은빛을 발광하는 포크와 식나이프가 한 움큼 있었다.

  "우와아.. 이거다..!"

  크리스는 포크와 나이프를 가죽 조끼에 걸 수 있는 만큼 걸고, 몇개는 가방에 넣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포크와 식나이프를 다 챙겼다고 생각했을때, 순간 말려놓던 그릇을 팔꿈치로 쳐내며 떨어트리고 말았다.

  터억, 데구르르르르

  "히익!"

  크리스는 그릇을 깨트린줄 알고 기겁했지만, 높이가 꽤나 높아보이는 선반에서 떨어졌는데도 멀쩡한 그릇을 보며 놀랐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릇을 살펴보는데, 그릇은 금이 간 흔적조차 없었으며 반들반들하게 빛이 나는 것으로 보아,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럽다는 것을 뽐내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비싸보이네.."

  가방엔 포크와 식나이프가 한움큼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 다지 무거운 편이 아니어서, 그릇의 질에 크리스는 욕심에 차올랐다.

  "이거 던져도... 한방에 죽겠는데..으흐흐..."

  크리스는 더 고민하지않고 그릇을 몇 장 가방에 넣고, 가방의 앞에 달린 주머니 같은 곳에 그릇을 몇 장 더 우겨넣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신난 표정으로 활짝웃으며 발을 통통 튀어르는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달그락 달그락 · · ·

  크리스의 가방으로부터 나는 소리는 뭔가 가득 담겨있다고 소문내고 다녔지만, 신이 난 크리스는 아랑곳하지않고 발을 통통 구르며 저택의 입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을 떠나는 찰나에, 자물쇠가 걸린 유리 장식장에 눈을 빼았겼다. 크리스는 곧장 발을 멈추고 장식장 앞에 다가섰다.

  "오 이거도.. 비싸보인다."

  장식장 안엔 붉그스름한 빛을 내는 와인이 있었는데 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에이, 이건 그냥 가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헤헤 저 병신. 문따는 거 좀 봐! 저 병신새끼! 완전 손 병신이구먼! 크크큭!....헤헤 저 병신. 문따는 거 좀 봐! 저 병신새끼! 완전 손 병신이구먼! 크크큭!....헤헤 저 병신. 문따는 거 ㅈ...'

  감옥에 갖혀있을 때, 초기에 철창문을 열지못한다고 놀리던 살바토르가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크리스는 이내 입을 앙다물더니,

  "그래! 나보고 문도 못따는 손병신이랬지?! 두고보자!"

  크리스는 살바토르의 놀림이 떠올라 다시 장식장 앞에서 섰다.

  "흥! 문도 못따는 병신이라고? 복수해주마 내가"

  크리스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방을 지나는 통로 근처 선반 위에 보이는 작은 머리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케이! 딱 이거다!"

  크리스는 머리핀을 얼른 주워서, 머리핀의 다리를 벌린 후 좁은 역삼각형모양으로 만들어 곧바로 자물쇠에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귀엽게 혀를 내밀어 살짝 깨문다. 이내 자물쇠에 꽂힌 머리핀을 휘적휘적 돌렸다.

  "히히힣, 딱봐도 비싼거 같은데, 이거 내가 훔쳐가줄게!!"

  그리고 얼마 돌리지 않아 곧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철컥

  "이거봐! 이거봐! 내가 못열리가 없다니깐?"

  크리스는 장식장 안에 뭐가 들어있는 지 확인하지는 않고, 곧바로 와인만 꺼내들어 가방에 다시 우겨넣었다. 다소 힘들게 넣었지만, 가방을 닫는 방법이 위로 뚜껑을 덮는 형태라서 어떻게든 들어가긴 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다시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다시 발걸음을 통통 구르며 저택의 입구를 향해갔다.

  달그락 달그락 · · ·

  가방엔 역시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크리스는 하인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하인들은 크리스가 지나가는 길을 비켜주며 멍하니 크리스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야.. 저거 우리 심부름 가방 아니냐?"

  "맞는거 같은데... 아니면 기분탓인가?"

  크리스는 저택의 넓은 뜰을 지나, 저택을 두르고 있는 높은 돌담 위에 사람들이 올라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계단을 통해 저택을 감싸고 있는 돌담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피오레와 치키니 빈 피넬리가 대치하고 있었고, 이어서 치키니의 언성이 들려왔다.

  달그락 달그락 · · ·

  "아그리파 가문은 그 범죄자들을 내놓지 않으면, 범죄자 따위를 육성하는 도둑소굴 따위로 명예가 실추될 것이오!"

  피오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척하니 보아도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보였다.

  "더러운 것이 누군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것일텐데, 그런 소리가 주둥이에서 잘도 튀어나오시나 보오 치키니 경비대장."

  치키니 역시 눈썹이 꿈틀댄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확실한데, 그걸 보호할 것이라면, 내가 당신 가문을 용서치 않겠다. 빈 피넬리 가문의 이름을 걸고 더러운 아그리파 가문의 피가 홀스타인 외곽과 성벽에 뿌려질 것이다!"

  금방이라도 싸울듯이 분위기가 급격하게 험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치키니의 역시 누가봐도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어보이지만 크리스가 불쑥 하퍼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근데 쟤, 왜 목소리만 높이고 화는 안났어?"



  [포르쉐 05.30 22:10]

  하퍼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 크리스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치키니를 바라보며 관찰했다. 분명, 본인 아버지가 살해당했는데도 소리만 칠 뿐 정말 분노에 찬 느낌이 들진 않았다.

  "예리한데?"

  크리스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대답을 하다가, 가방안에 반짝이는 수많은 쇳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와서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어엇! 그...그렇지? 흐흠...! 크흠!"

  크리스가 눈치챘는지 가방을 슬쩍 뒤로 숨겨서 안보이게 했으나, 요란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주변에 있던 아그리파측 병사들도 한번씩 쳐다볼 정도로 컸다.

  상황은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작정하고 왔는지 병력 규모차이가 두배는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쪽에는 고위 인사들이 나와있었기 때문에 치키니 역시 당황한 듯 처음보다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치키니 대장님!"

  갑자기 요란한 발굽소리와 함께 경비대기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고 치키니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당황한듯 치키니가 불호령을 내렸다.

  "뭐어?! 뭐라고 했는가!? 젠장, 모두 경비대 본부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 어서 시청에 가서 최우선 관리대상이 깨어났다고 전해라! 가! 어서!"

  치키니의 명령에 저택을 포위하던 경비병들이 일제히 경비대 본부로 달리기 시작했다. 최우선 관리대상이 깨어났다? 대체 뭘 수감하고 있는 걸까? 경비대 본부라면, 나도 가야하는 곳인데 상황이 복잡해졌다.

  달그락- 달그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크리스가 다가와 물었다.

  "경비대 본부에 아가씨도 볼일 있지?"

  "눈치하난 빠른거 같네요? 당신도 갈일 있어요?"

  크리스도 동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파트오더 상황부여]

  잠깐의 대치상황이 지난 후, 일순간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듯 했다. 정적을 깨고 피오레가 손가락을 튕기면서 소리쳤다.

  "자자, 어서 식사하러 가세, 뭐부터 먹어야 싸움이라도 하지 않겠나?!"

  "네, 아버지!"

  달그락- 달그락-

  살바토르가 크게 대답하며 들어가다가 묘하게 낯이 익는 달그락 소리에 크리스를 쳐다봤다. 그러자 크리스가 잠깐동안 경직되있다가 럭키가 배고픈지 짖어대자 살바토르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왈! 왈!

  "너도 배고프냐?! 그래, 일단 뭐좀 먹자!"

  아그리파 일행이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시작할 때 즈음, 

  경비대 본부 건물에 불빛이 환해지고 성벽에 있던 봉화가 하나 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성벽 사이로 경비병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홍차매니아 05.30 23:38]

  상황이 끝나자 각자 자리에 앉았다.

소란스러웠던거 빼고는 별다르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자, 식사를 계속합시다.”

  피오레가 다시 음식을 권하였다.

그 순간 주방 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약혼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살바토르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어쩔줄 몰라해 하는 하인들을 보며 의아해 했다.

그러던 중 하인장인 세베루스가 이를 알아차리고 주방쪽으로 달려갔다.

몇마디 다른 하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파악한 세베루스는 순간 흙빛으로 바뀌었다.

당황해하던 세베루스는 급히 피오레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세베루스?”

  “주, 주인님! 귀하게 여기시는 와인이...”

  “음? 무슨 말인가?”

  “200년된 팔레르모 와인이 사라졌습니다!”

  선언하듯 외치는 하인에 말에 피오레가 한쪽 눈썹을 치켜떳다.

그 순간 음료를 마시던 크리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푸우 하고 내뱉으며 입안에 있던 것들을 허공에 흩뿌렸다.

맞은편에 앉은 두보아는 졸지에 침과 와인이 뒤섞인 세례를 뒤집어 썼다.

팔레르모 와인이라면 팔레르모 지방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뜻한다.

기후와 토양이 포도 생산에 최적인 지방이라 고대 헬라스 제국시절부터 포도와 와인을 생산하던 지역이다.

‘팔레르모 와인을 대접하다’라는 관용어가 있을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약탈과 전쟁으로 200년 전에 팔레르모 지방이 황폐화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뼈속까지 본인이 라티움인으로 생각하는 피오레에게는 술 이상의 것이었다.

빈 피넬리 가문의 악행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피오레의 눈은 고대도시인 파타비움를 묻어버린 피드나 화산이 폭발 때처럼 매우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살바토르도 그 어느때보다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예의도 잊어버린채 피오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장 충직한 하인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팔레르모 와인이 사라졌다니! 차라리 보헤미안 놈들이 들판을 불태우며 프네시아를 침공했다고 말하게!!!”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손님중 발레리 드 에스텡은 식탁을 유심히 보더니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음? 포크랑 나이프가 없군. 원래 없었나?”

  살바토르는 생각했다.

여러모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 근데, 저 손병신새끼는 와인 사라졌다는데 왜 뿜은거지?

그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크리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하퍼는 뭔가를 알았다는 듯 한쪽 입술을 치켜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두보아는 얼굴을 닦으며 맞은편의 크리스를 보았다.

그리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어쩌지?’



  [별바 05.31 09:48]

  달그락

  크리스의 가방에서 소리가 났다. 럭키의 귀가 쫑긋 세워지고, 럭키가 갸웃갸웃 거린다. 크리스는 그 모습에 식겁했다.

  달그락 달그락

유난히 소리가 심하게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불처럼 화를 내는 파오레의 모습덕에 아직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뭐, 이런 개같은... '

  조금만 움직여도 소리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집어 넣을 걸하며 후회는 잔뜩하다보니 살바토르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 미친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테러를 당한 두보아가 갸웃갸웃 럭키를 보더니,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서 살바토르가 크리스에게 물었다.

  "이봐, 손병신. 너 혹시"

  살바토르의 말에 크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때 살가토르 옆에 있던 엘레나가 소근소근 이야기 했다.

  "살바토르. 지금 나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건 아니죠?"

  "그럴리가, 엘레나. 절대로 그런적 없어"

  "후후....그렇다면 방금 제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엘레나의 달달한 목소리에 살바토르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바토르는 크리스 따위 남자보다 약혼녀가 훨씬 중요했으므로 신경을 껐다.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달그락.

  럭키가 크리스에게 다가와 갸웃거린다. 

  "훠이! 훠이! 저리가." 

  크리스가 속삭이듯이 말하며 럭키를 발로 밀어내려고 했다.

  달그락.

  이 소리만 아니였다면 두보아가 럭키의 섞연치 않은 모습에 의구심이 들어 크리스에게 뭔가 물어보려는 순간,

  "어떤 개자식인지!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여지껏 신사다운 면모를 보이던 파오레 가주가 폭발하고 말았다. 손님도 당황한 모습이었고 하인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두보아, 잠깐 크리스랑 이야기 할게 있어서요"

  하퍼가 크리스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하퍼의 성숙한 체향과 분위기에 남자라면 가슴이 뛸거 같았지만, 크리스는 다른 이유로 뛰었다.

  달그락.

  또 럭키가 갸웃갸웃 거린다.

  하퍼가 웃으면서 크리스를 끌고 나가듯 데리고 나갔다.

  달그락. 달그락.

  두보아는 뭔가 홀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럭키는 갸웃갸웃 거리다가, 두보아 다리 밑으로 돌아와 긴 하품을 했다.

  하퍼가 크리스를 품에 안듯이 데려가며 웃음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빚진거야. 갚을거지?"



   [반딧불 05.31 13:49]
   하퍼가 크리스에게 어깨동무한 상태로 목을 감싸며 목을 졸랐다. 그러면서 크리스의 자세가 숙여진 상태가 되었고, 덕분에 하퍼의 가슴 살결이 크리스의 뺨에 닿았다. 부드러운 기분에 크리스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며 헤 웃었지만, 그런걸 모르는 하퍼는 크리스를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갔고, 크리스는 하퍼를 올려다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달그락 달그락

  “근데 내가 빚졌다고 해도 갚아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는 데”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크리스의 표정은 다시 의문을 가졌다.

  “그럼 뭐 시킬라고?”

  하퍼가 크리스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크리스는 슬쩍 올려다보니, 그 하퍼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느껴졌다.

  “그건 그때 가보면 알겠지”

  “꾸~울꺽”

  크리스는 하퍼의 미소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왠지 두고두고 발목을 잡힐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이야기를 나누다 둘은 각자의 방으로 이동해 흩어졌다. 어느덧 시간은 밤이 되었고, 다들 깊은 잠에 빠지며 아그리파 병사들만이 저택을 맴도는 소리만 들렸다.

  크리스는 침대의 바로 밑에 앉아 등불을 밝힌 채 가방을 정리했다.   짜랑, 짜랑, 짜랑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 소리가 방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기겁한 크리스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살짝 살짝 내려놓는다. 그리고 사과를 꺼내어 한입 베어먹는다.

  “사각 사각, 에이씨, 하퍼한테 걸릴 줄이야. 사각 사각”

  그리고 가방속에서 와인을 조심쓰레 꺼냈다. 낮에 봤던 빛깔을 한번 더 보고 싶어 등불에 가까이 댄다.

  “우와...”

  역시 말도 안되는 빛깔이었다. 장식장에 있을 때도 그늘이 져 어뒀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지금 와인은 등불의 빛을 받아 우주에 수놓은 별들과 같이 빛이 났다. 그 빛깔에 크리스는 빨려들것 같았지만, 문득 낮에 피오레의 말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팔레르모 와인이 사라졌다니! 차라리 보헤미안 놈들이 들판을 불태우며 프네시아를 침공했다고 말하게!!!’

  ‘어떤 개자식인지!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피오레의 불같은 언성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다시 떠오르기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와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크리스는 결정했다.

  “에이.. 이건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크리스는 자신의 오른쪽에 와인을 내려두고, 포크와 식나이프를 하나씩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민무늬에 평범한 포크였으며, 식나이프의 손잡이엔 미끄러지지 않는 용도로 테두리에 울퉁불퉁한 무늬가 나있었으며, 스테이크를 썰기 적당하도록 날카롭지 않고 작은 뭉툭한 톱모양으로 날이 나있었다.

  “흠.. 나이프는 무기로 쓰기엔 적당하지 않군.. 몇 개는 돌려놔야지..”

  그리고 포크를 곱게 포개는 과정 중에 유난히 무늬가 나있는 포크를 발견했다. 

  “엉? 이건 뭐지? 이거만 무늬가 있네”

  크리스는 포크를 등불에 비추고 얼굴를 등불에 가까이 대며 유심히 살펴봤다.

  포크 테두리엔 프렉탈 무늬로 보이는 두 개의 선이 교차했다가 벌려졌다가 교차하는 식으로 멋스럽게 되어있었으며 손이 닿는 부분엔 미끄러지지 말라는 용도로 타일무늬가 있었는데 마치 드래곤의 비늘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포크의 목 부분엔 용이 입을 벌리는 모양의 각인이 있었다. 그리고 포크를 뒤집어 보니 민무늬로 맨들하고 뭉툭한 손잡이 부분에 글씨가 각인 되어있었다.

  R.M 776 For the K

  “R.M.. 776 For the K...?”

  각인의 글자는 필기체 형태로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고, K부터는 각인이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셔츠를 벗어 나머지 포크도 확인했지만, 똑같은 포크는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K를 위해? 남자친구한테 선물한 건가? 여튼 무늬가 이쁘니까 이건 잘 보관해야지”

  유난히 무늬가 들어있는 포크를 가죽조끼 안쪽 주머니에 깊게 꽂아 넣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포크와 접시를 가방에 차곡차곡 넣고, 식나이프 10개와 접시 5장, 그리고 와인을 들고 방을 떠났다. 

  문을 나서니 복도엔 딱히 보초를 서는 병사가 없어서 적막한 듯이 조용했고, 복도 중간 중간 등불이 장식되어 있었다. 크리스는 좌측 방쪽으로 바짝 붙어서 자세를 숙이고 암살자 버릇이 나온 듯이 조심히 걸어갔는데, 암살자 특유의 발걸음 소리를 죽이는 클라우드 워크의 암살자 능력으로 발걸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크리스는 한방을 거쳐 다음 방을 거쳐갈때 쯤 그 방이 두보아의 방임을 알았다. 그렇게 두보아의 방도 지나치려는 찰나에 의도하지 않게 문틈사이에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바람을 맞으며 나풀거리는 흑발의 단발과 흰색 원피스, 푸른색 눈동자를 한 여인이 테라스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고, 나풀거리는 옆머리 칼을 귀 뒤로 넘기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깐 보기만 해도 하프의 연주소리가 들리는 듯한 신비한 여인은, 사람이 풍기는 인기척이 아닌, 뭔가 다른 기운이었다.

  “두보아의 여자친구인가?”

  그리고 일순간 그 여인의 시선이 크리스의 눈과 마주쳤다. 눈을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문틈으로부터 눈을 뗐기 때문에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지만, 크리스는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이질감에 다시 문틈에 눈을 갔다 댔다. 그러나 테라스에 앉아 있어야할 여인은 없었다.

  크리스의 암살자 감각이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이는 인기척을 감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시야는 굉장히 좁았지만, 몸을 숨기기엔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였다.

  “뭐지...”

  크리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이동했다.

  그리고 좌측 계단을 지나 거실근처 통로 부근에 도착하여 주변에 인기척을 확인하며, 다시 거실을 통해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낮에 보았던 장식장 앞에 도착했다. 장식장은 닫혀있었지만, 있어야할 물건이 없어졌기에 딱히 자물쇠는 잠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는 슬쩍 장식장을 열어 와인을 넣으려는 찰나에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장식장의 벽이 마치 이중으로 열리듯이 틈이 있었다. 낮에 와인을 훔칠 때는, 와인에만 눈이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크리스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틈에 손을 넣어 장식장 안쪽의 벽을 당겨 열어냈다. 장식장 안쪽에는 물건을 넣을 만한 공간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와인과 누렇게 변질된 두루마리와 작은 나무 조각이 있었다. 크리스는 신기해서 와인을 꺼내 와인의 빛깔을 확인하기 위해, 달빛이 비치는 곳에 와인을 갔다댔다.

  와인의 빛깔은 장식장에 서있던 와인과는 반대로 마치 어떤 빛도 빨아들일 듯한 두터운 진붉은색의 와인이었다. 투명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이것도 와인이네, 이 집은 무슨 이렇게 와인이 많지?”

  크리스는 들고있던 와인을 내려놓고, 방에서 들고 온 와인을 장식장에 올려두려는데, 역시나 장식장 안쪽의 두루마리와 나무 조각에 눈이 갔다. 결국 크리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두루마리와 나무 조각에 손을 댔다. 우선 두루마리부터 살펴보았는데, 붉은색 끈으로 묶여있었고 종이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누렇게 변질되어 있었다. 크리스는 고민도 하지 않고 두루마리를 풀어헤쳐서 무엇이 적혀있는지 달빛에 비추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두루마리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건 뭐지? 뭔데 아무것도 안적은걸 여기에 둔거지?”

  크리스는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나무 조각을 살펴보았다. 육각기둥으로 된 나무 조각이었는데, 윗부분이 약간 대각선으로 깎여서 좁아지는 육각형으로 평평했고, 기둥의 중간에는 나무 조각을 반으로 나누는 표시를 한 줄눈이 있었다. 그리고 윗부분을 살펴보는데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육각면을 꽉 채우는 어지러운 무늬와 중앙에는 상형문자가 그려져 있는 듯했다.

  “이건 또 뭐야”

  나무 조각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지금의 조명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일단 방안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두루마리와 나무 조각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방안에서 가져온 접시를 제자리에 올려두고 나이프를 꺼냈던 서랍을 열어 다시 나이프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문득 특이한 문양을 한 포크가 생각나서 다른 포크를 살펴보았다. 서랍 속에 있던 나머지 포크들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같은 문양을 한 포크가 없었다. 크리스는 혹시나 하고 서랍속의 아무 포크 하나를 집어, 조명이 없어 잘 보이지도 않는 포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거기! 누구야!”

  “히익!”

  크리스는 얼른 웅크리고 근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 몸을 숨겼다. 포크 하나를 집어든 채 바닥에 있던 와인도 같이 잡아들었다. 그리고 병사가 한명 장식장 앞으로 다가왔다.

  저벅 저벅

  “누구냐! 아니면 방문자이십니까?”

  크리스는 와인을 훔친 범인이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병사가 장식장의 문이 열려있는 탓에 장식장 안을 바라보니, 낮에 사라졌던 와인이 다시 돌아와있음을 확인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그리고 크리스는 병사의 시선이 다른 곳에 팔려있는 동안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주머니에 넣고, 와인을 품에 안은 채 엎드려서 슬금슬금 기어갔다. 그리고 모퉁이를 지나려는 순간 장식으로 서있던 창 모양의 장식물을 무릎으로 쳐버리고 말았다.

  퉁

  “응?”

  병사가 소리난 쪽으로 바라보았고, 크리스는 급히 장식물이 넘어지는 줄 알고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 장식물을 손으로 밀어버린 탓에 장식이 쓰러지며 병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으윽”

  털썩

  장식물이 병타의 얼굴을 강타하며 바닥에 大자로 쓰러졌다. 그리고 크리스는 놀라서 급하게 창 모양 장식물을 다시 세워두고, 병사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드렸다.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아무리 두드려도 깨어나지 않는 병사에 크리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얼른 코에 손을 대더니 숨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 죽진 않고 기절한 듯했다.

  “어, 어쩔 수 없다.. 아저씨 미안해요”

  크리스는 얼른 주방에서 자리를 떠나며,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더 은신에 신경썼다. 그리고 2층의 방문자를 위한 침실 복도로 진입하고, 두보아의 방을 다시 스쳐 지나갔는데, 문틈으로 그 여인이 다시 있나 보려했지만, 테라스는 역시 아무도 없었고, 두보아의 코고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대형사고를 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두려움이 온몸에 엄습했다. 크리스는 일단 가져온 증거를 숨기고자 와인과 두루마리, 나무조각을 가방에 깊숙이 넣고, 얼떨결에 들고온 포크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하며 답답한 마음에 테라스에 다가갔다. 그리고 테라스에 기대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미치겠다...”

  그리고 손에 든 포크를 공중으로 던지고 받았다를 반복하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으어, 그 아저씨는 어떻게 하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포크 쥐고 던지는 시늉을 했다. 혼자서 중얼중얼 거렸지만, 듣는 이는 없는 듯했다.

  “아니 그리고 와인 갔다뒀잖아? 그럼 됐지. 뒤에 숨겨져 있던 건 그 사람들도 모르는 거 같더만.”

  저벅 저벅

  크리스가 보는 방향은 저택의 정면이 아닌 측면이었지만, 담벼락과는 거리가 꽤 있어서 1층의 측면으로도 저택을 감시하는 병사가 있었다. 크리스는 아무생각없이 포크를 던지는 시늉을 하다 실수로 포크를 놓치고 말았다.

  “헉, 내 포크”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손에서 떨어져나간 포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이질적으로 뭔가에 맞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휘릭휘릭휘릭

  퍼억

  “으억! 뭔가에 맞았다! 표,표창인 것 같다! 습격! 습격이다!”

  “헉”

  크리스는 냅다 발코니 밑을 바라보았는 데, 거기엔 좌측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병사가 보였다. 크리스는 들키기 전에 얼른 방 안쪽으로 몸을 숨겼지만, 복도 쪽으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비상! 비상! 침입자가 있다!”

  “으아아아”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저택의 비상을 알리는 나팔소리까지 들린다. 크리스는 등줄기와 머리가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정신이 나간 채로 혼란스러워 했다.

  “날 본사람은 없으니까 자는 척 하자! 자는 척하자!”

  크리스는 얼른 침대로 뛰어들었지만, 문제는 아그리파 저택의 모든 조명이 들어왔고, 크리스는 침대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망했다...”

  그리고 뜰에는 크리스가 던진 포크하나가 덩그러니 떨어져 반짝거리고 있었다.



  [포르쉐 05.31 15:05]

  뿌우우우우우우우-

  요란한 비상나팔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저택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하퍼는 발코니에서 크리스가 포크를 떨어뜨리는 것 까지 구경하고 있다.

  '참 저 남자 볼 수 록 재밌어...'

  윗층까지 밝아지기 전에 하퍼는 크리스 방의 발코니까지 뛰어넘어왔다. 하퍼는 잠깐 두보아 방을 넘어올 때, 어떤 흑발 여자가 두보아와 침대에서 뒤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능력좋은 남자네?'

  "망했다..."

  크리스가 나지막히 외치면서 침대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불도 뒤집어쓴게 꼭 어린애 같아 하퍼는 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그 분이 그러셨다니요?"

  바깥 복도에서 경비병의 외침에 재빨리 문앞에 귀를 귀울였다.

  "네! 제가 주방에서 경비병을 쓰러트린 다음 확인까지 하는 걸 똑똑히 봤다니까요?!"

  하인 목소리인듯한 중년 남자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발소리가 방쪽으로 점점 크게 들렸다.

  하퍼는 재빨리 리넨 셔츠와 바지를 벗어 침대 옆 쇼파에 던졌다. 그리고 속옷차림으로 이불 속을 파고 들었다.

  "어?! 아...?!"

  "쉿! 당신 들켰어, 경비가 오고 있다구. 어서 옷 벗어! 빨리!"

  그리고 하퍼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우물쭈물하는 크리스의 윗옷을 거칠게 벗기고 일어서려는 크리스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바지를 훌렁 벗기고 속옷차림이된 크리스를 껴안았다.

  벌컥!

  일부러 열어둔 방문이 거칠게 열리고, 경비병이 소리쳤다.

  "수상한 제보가 있어서 무례를 무릎쓰고 들어왔습... 어?! 흐...흠!"

  "아이고 세상에!!"

  하퍼와 크리스가 속옷만 입은 채 뒤엉켜 있는 모습에 경비병이 몸을 확돌렸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하인을 잡아 뒤로 돌리면서 다그쳤다.

  "아, 아닛! 저분이 확실합니까?!"

  "아... 저, 사실 얼굴을 확인하진 못해서, 체격은 저분이 확실했습니다만..."

  그러자 경비가 고개를 푹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확 돌린 다음 큰 소리로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오,오해가 있어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아! 저흰 이만...!"

  경비병은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하인을 끌고 방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하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재밌어서 킥킥대며 웃고 있었는데, 넘어져서 하퍼에게 깔려있던 크리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흠흠! 저기, 이제 상황은 끝난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셔야..."

  얼굴이 제대로 빨개진 크리스의 시선이 하퍼의 가슴을 보다가 얼굴을 보다가 허벅지쪽으로 내려갔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얼굴을 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남자, 설마 처음? 조금 더 놀려줄까?'

  "그러고보니 많이 어린듯 한데, 여자 살결은 처음 맞대는 거? 후훗, 순진한 남자였구나? 그래서 말인데, 당신 나한테 지금 몇개나 약점잡혔는지 알지?"

  하퍼는 짖굳게 크리스의 허벅지로 손을 가져가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히...히익!? 잠깐! 잠까아아아안!!!"

  크리스의 비명이 복도까지 울려퍼졌다.



  [파트오더 상황부여]

  저택이 한동안 자객으로 시끌시끌해졌다. 그리고 깜짝놀라 주방을 점검하던 주방장이 깜짝 놀라 소리치면서 바지만 입고 안뜰을 점검하던 살바토르에게 달려왔다.

  "나리! 와,와인이! 와인이!"

  "뭐야? 와인을 또 훔쳐갔어?! 이 좀도둑새끼를 내가 그냥!"

  주방장은 숨을 고르고 살바토르에게 손사래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팔레르모 200년산 와인이! 돌아와있습니다!"

  "뭐, 뭣?!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주방장 양반!?"

  살바토르가 놀라 주방장과 함께 주방으로 뛰어가는 그 순간, 이층에서 크리스의 비명소리가 나즈막하게 들려왔다.

  "이,이러지마! 안돼! 아,안됩니다!"

  소란스러운 저택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홍차매니아 06.01 00:14]

  크리스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살바토르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을 올려다 봤다.

  그러고 보니 낮기는 한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도 같이 들려오는거 같았다.

  '하퍼인가?'

‘뭐짓거리 하는겨. 병신!’

  아침이 되면 하퍼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대충 특이사항은 없는 듯 했다.

어째서인지 포크와 나이프가 굉장히 많이 도둑맞은 듯 했다.

그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이상은 없다.

창고도, 장부나 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사업서류도, 평상시 경계가 단단할 터인 무기고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살바토르는 팔짱을 낀체 경계를 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돌아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나 또다른 한편으로는 저택 안전이 염려되었다.

살바토르는 아버지의 방으로 가서 상황을 보고했다.

주방에서 습격당한 병사, 돌아온 팔레르모 와인, 바닥에 떨어진 포크 등등

특이하게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는데, 기절한 병사 외에는 인명피해도 없었고 도난된 물건도 없었던 점도 보고했다.

무엇보다도 팔레르모 와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하자 피오레는 채통도 잊은체 방을 뛰쳐나갔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대하듯 매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다시 찾아왔다.

상황수십되자 살바토르는 피오레를 대신하여 당직사관인 데키티오(Decitio십인대장) 루벤스에게 지시하여 부백인대장과 의논하여 경계를 늘릴 것을 지시했다.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방안으로 돌아오자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후우”

  “대체 무슨일이었나요?”

  고운 선율이 기운이 빠진 그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그 말에 살바토르는 피곤함도 잊고 미소를 지었다.

약혼녀인 엘레나는 언제나 그를 기운나게 만든다.

  “별일 아니야.”

  “그 잘난 살바토르가... 피곤해하다니...!”

  “엘레나.”

  장난기가 서린 짓굿은 웃음을 짓는 입술은 언제나 봐도 싱그로워 보였다.

하얀피부 또한 말할 것도 없다.

화사한 금발에 가만히 보면 바다빛 같은 눈동자는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분홍빛 실크 가운은 속이 비춰보였는데, 대놓고 몸을 들어내는 것도 아닌 것이 그녀의 품위를 살리면서 매혹스러운 모습을 강조했다.

그녀가 맞은편에 앉은 살바토르는 그녀의 외모를 안주삼아 다시 와인잔을 기울였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

  "....헤에?”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엘레나는 상체를 살짝 숙였다.

가운 사이로 그녀의 앙가슴이 강조되어 보인다.

거기에 힐끔 눈길을 준 살바토르는 다시 그녀의 얼굴과 시선을 마주했다.

  “말이 좋아 홀슈타인 최강이 전사라고들 하지. 솔직히 나 망나니 잖아? 술먹고, 놀기좋아하고 틈만나면 어... 홍등가에나 가고. 나 같은 망나니를 대체 엘레나가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제가 싫으신건가요?”

  “아니.”

  살바토르는 엘레나의 푸른 눈을 주시했다.

마치 빨려들어갈것만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 원해.”

  그녀는 쿡쿡 웃더니 살바토르의 빈 잔을 다시 채웠다.

  “본인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군요? 살바토르씨.”

  “...놀리는거야?”

  “네! 이 호색한!”

  갑자기 엘레나는 몸을 일으키더니 살바토르에게 다가가 그의 무릎에 앉았다.

그녀의 엉덩이 감촉이 허벅지를 통해 전해진다.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사이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

그녀의 팔이 살바토르의 목을 감싸안자 그 모든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심장박동이 점차 빨라진다.

그 와중에 엘레나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알려드릴께요. 살바토르.”

  그 순간 둘은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자리를 침대로 옴겨 마치 서로 하나가 되지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살을 섞었다.

밤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별바 06.01 13:11]

  다음날. 

  아침을 알리는 장닭 소리와 성당의 종소리 대신 아그리파 저택의 사람들을 깨운것은 질서정렬한 군화소리였다. 치키니가 이끌고 온 어용 용병대와 경비대였다.

  용병대 정식 명칭은 톨리오 용병대로, 창단주가 거물급 용병으로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친소 톨리오였고, 그가 세운 용병대였다. 톨리오 사후에도 방패를 기막히게 썼다는 톨리오의 노하우가 대대로 전수되었다. 어지간한 맷 앤 암즈보다 강력한 중장보병이라는 평가답게 대단히 비싼 몸값을 하는 용병대였다. 

  30년 전에 홀슈타인 자유시가 어마어마한 금으로 어용 용병계약을 맺으면서 톨리오 용병대는 홀슈타인 자유시에 상주하기 시작했다. 오합지졸인 경비대 대신에 외부의 도적들과 몬스터를 쓸어버린 톨리오 용병대가 고대 루만인들의 군단병들이 썼다는 커다란 사각방패인 스쿠둠 방패로 대열을 맞추면서 전진했다. 500여의 용병들의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아그리파 저택을 포위한 채로 용병대와 경비대가 멈춰섰다. 치키니 빈 피넬리가 전투마를 타고 나타나 아그리파 저택에 선포했다.

  "잘들으시오! 치졸하고 더러운 암살따위로 홀슈타인의 정치를 어지럽히는 위선자들이여! 최후 통첩을 하겠소! 기한은 반나절이요. 내 아버지를 살해한 암살자를 내놓지 않으면, 피의 복수를 실천하겠소!"

  아침부터 일어난 난리에 두보아는 멍한 기분이었다. 두보아는 옆에 있던 살바토르에게 물었다.

  "저 용병대가 언제부터 빈 피넬리 가문의 사병이었습니까....."

  "존만이. 빈 피넬리가문을 견제하던 크리드 가문이 무너지고 나서, 시가 아니라 빈 피넬리가문이 계약의 주체로 바꿨지"

  "이렇게 되면 우리는 고립될거 같네요"

  하퍼가 말했다. 

  "빵뎅이.... 뚫고 지나가던지, 몰래 나가던지 둘중 하나겠군!"

  살바토르가 으르렁거렸다. 



  [반딧불 06.01 21:10]

  터벅 터벅

  두보아와 살바토르의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셋의 고개가 돌아가며 시선이 발걸음 소리를 향했는데, 팬더곰이라도 된 마냥 다크써클이 눈 밑에 개활했고, 팔을 축 늘어트린 채 곱등이처럼 허리를 숙여 뉘적뉘적 걸어오는 좀비같은 사람은 크리스였다.

  크리스의 헬쑥한 모습에 두보아가 묻는다.

  “어디 몸이 안좋으십니까?”

  크리스는 두보아의 물음에 충혈 된 눈을 억지로 뜨는데, 반쯤 풀린 눈으로 두보아를 바라본다.

  “으어어?”

  “조,좀비인가?!”

  두보아가 화들짝 놀라며 주먹을 움켜쥐고 태세를 갖춘다. 그걸 본 살바토르는 한숨을 쉬며 두보아의 팔을 손으로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크리스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살바토르는 팔짱을 끼며 하퍼를 응시한다.

  “어이 빵뎅이 아줌마.”

  하퍼의 시선이 살바토르에게 향했다.

  스윽, 스윽, 스윽 · · · 

  “응? 왜 그러시죠 살바토르?”

  둘이 말하고 있는 사이 크리스는 발을 질질 끌며 이들의 사이를 지나간다.

  “어젯밤 크리스가 있던 방에서 빵뎅이 아줌마, 네 목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손병신이 저러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해서.”

  하퍼는 혀로 입술을 한바퀴 핥고는 입맛을 다시며 매혹적인 미소로 말했다.

  스윽, 스윽, 스윽 · · · 

  “후후훗, 좋은 시간을 가졌지요..”

  “너, 설마 저 손병신을...?”

  하퍼는 두보아의 뒤쪽으로 지나가던 크리스를 보며 말했다.

  “크리스 다음에도 좋은 시간 가져요~”

  순간적으로 두보아가 놀란 눈치로 하퍼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입을 헤 벌린다. 그 시선을 알아챈 하퍼는 두보아에게 다시 시선이 향했다.

  “왜요? 두보아. 당신도 관심이 있는 건가요?”

  두보아가 당황하며 양손을 내밀어 손을 저었다.

  “아, 아뇨, 저는 나름대로 사정이...”

  “어제 보니까 두보아 당신도..”

  그 순간 크리스가 바닥에 있던 종이를 밟으며 발이 앞으로 날아갔고, 동시에 몸의 균형이 뒤로 무너진다.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두보아의 등으로 크리스는 뒤로넘어갔고, 하퍼의 말에 당황하고 있던 두보아는 등뒤로 누군가 미는 힘에 대처하지 못하고 뒷꿈치가 들리며 앞으로 몸이 쏠려졌다. 그리고 하필 두보아는 양손을 내밀고 있던 바람에 그대로 하퍼의 양 가슴을 잡고 하퍼와 함께 꼬꾸라졌고, 두보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하퍼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두보아와 같이 넘어졌다.

  쿠웅

  “아, 뒤통수 박는 줄 알았네.”

  두보아의 등에 크리스가 누운 채 안심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두보아는 하퍼의 가슴을 양손으로 잡은 채 당황하여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가 다시 하퍼의 얼굴로 시선이 향하는 것을 반복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넘어진 하퍼는 정신을 차려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기에 시선을 보니 두보아의 양손이 정확히 가슴에 얹어있는 것을 보았다.

  “아흐흐, 꺅!”

  “으아아!”

  두보아는 하퍼의 비명에 정신을 차리고 얼른 하퍼의 가슴으로부터 손을 떼며 일어났다. 일순간 하퍼의 비명이 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이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그걸 의식하긴 어려웠다.

  “미, 미안합니다!”

  처억

  두보아의 눈앞에 석궁이 드리워진다.

  “관심을 바로 이런 식으로 표현하시다니, 응큼하시군요?”

  곤란한 상황임은 분명했지만, 묘하게 색기가 철철 넘치는 하퍼의 표정은 두보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닙니다! 이건 사고가!”

  이와중에 살바토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허허허, 다들 잘 쉬셨습니까. 아침부터 다들 건강하시군요.”

  피오레가 아침부터 일어난 헤프닝으로부터 사람들을 일깨운다. 다들 시선이 피오레에게 쏠리며 피오레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아버지, 빈 피넬리 가문과 용병대가 주택을 포위했습니다. 병사들의 수가 정확히 파악은 되진 않지만, 3~400여 정도 될 듯합니다.”

  “음.. 지원군이 필요하겠군..”

  다들 피오레에게 시선이 쏠려 집중하고 있는 동안, 두보아는 방금 전 상황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양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크리스에게 시선이 향했다가 다시 손으로 시선이 가는 것을 반복했다.

  “현재 우리 저택의 병사 규모는 100여명 정도이며, 에스텡 가문과 글라우드쉴트 가문의 병력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정면을 찌르고 들어가 치키니 빈 피넬리를 끌어내리겠습니다.”

  피오레가 고개를 저었다.

  “일전에 글라우드쉴트 가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이들은 되었다, 오히려 화재가 났을 때 도와줬던 코드키에비츠 가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그리고 더군다나 코드키에비츠 가문은 명궁들이 많지. 그리고 천방지축들만 모인 녀석들이지만, 빈 피넬리 가문의 야비함 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지. 덕분에 국민들의 신망이 높고,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니 최대한 충돌은 피하되, 빈 피넬 리가 먼저 공격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을 듯하다. 너희는 이 전투는 피하고, 어서 경비대 본부를 조사해보거라. 빈 피넬리의 병력이 이곳에 집중되어있을 때 좋은 타이밍인 듯하구나.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렴.”



  [포르쉐 06.02 15:29]

  "알겠습니다. 아버지. 다들 나 따라와 맨몸으로 갈 순 없으니까."

  살바토르가 사뭇 진지한 말투로 일행을 데리고 갔다. 병사 몇명이 마주치면서 살바토르에게 깍듯이 경례하였다. 

살바토르도 병사들도 전투를 앞둔 병사로서 임하고 있던 것이다

  살바토르를 따라가니 앞뜰에 생각보다 넓은 무기고가 있었다. 이곳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강력해보이는 무기들이 진열되있고, 갑옷들은 사람과 같은 비율의 모형에 잘 맞춰서 보관되고 있었다. 살바토르가 갑옷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다들 맘것 골라봐! 제대로 된 것들만 구해놨으니까, 다들 쓸만할거야. 내가 보장하지!"

  각자 맘에 드는 장비를 고르기위해 흩어지고, 하퍼는 무기고 한켠에 진열되어 있던 여러가지 활을 보다가 가장 큰 활을 잡았다. 재질이 나무가 아닌데 아마도 이건 어떤 짐승의 뿔로 만든 것일듯 하다. 냄새나 강도로 보아 아이벡스의 뿔이겠지. 화살은 가장 많이 들어있는 화살통을 골라 허리춤에 매었다.

  그리고 한쪽에 보이는 한손검과 검집중에 가장 많이 진열되있던 것을 골랐다. 

  '많이 있는 만큼 검증되있겠지?'

  하퍼는 수수하게 무늬없는 신갈나무 재질의 검집에서 칼을 뽑았다. 예리한 날은 아니지만 정말 정직하고 신뢰성있어 보였다. 

  '역시 무관집안이라 보는 눈이 확실하구나.'

  하퍼는 활시위에 적당해 보이는 줄을 꼬아 감으면서 주변 동료를 구경했다. 두보아는 이전부터 들고 다니던 슬링을 손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어디선가 낡은 망토를 들고와서 몸에 대보고 있었고, 살바토르는 여러 무기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듯 했다.



  [홍차매니아 06.02 21:01]

  무기고 한 켠에 전용 무기 진열대가 있는 살바토르는 우선 갬비슨(가죽이나 거친 천에 솜을 누빈 갑옷. 패딩아머)을 입었다.

그 위에 사슬 갑옷을 걸치고는 검은색 서코트 하나 걸치고 벨트를 단단히 맺다.

거기에 장검 하나를 왼쪽 허리에 찾다.

칼집이 걸리적 거리지 않게 행어를 적절히 조절한 다음 단검 두어 개를 벨트와 특별히 단검용 칼집을 달은 신발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바토르는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기 앞에 섰다.

벽면에 곱게 걸쳐져 있는 그 무기는 길이만 해도 앵간한 장정보다 컷다.

마치 정겨운 동생을 보는 듯 살바토르는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크크크크. 엉아 왔다. 내 세끼야.”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검을 들어올린 살바토르는 잠시 불빛에 검신을 비춰보는 듯 하더니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두어번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어찌나 크고 중량감이 있는 검인지 한번 바람을 가를 때 마다 부웅 거리는 다소 둔탁한 파공음이 무기고 내를 간간히 울려 퍼진다.

3kg을 살짝 넘는 중량의 이 장대한 양손검은 양손검 중에서도 좀 더 거대한 편이다.

크고 두텁기론 둘째가면 서러울 살바토르가 두손으로 잡고도 남을만큼 손잡이 길이도 넉넉했다.

손을 보호하는 가드 하며 일종의 추가 손잡이라 할수 있는 리캇소에 리캇소와 검신을 구분하는 페링훅에 

관리가 잘되어 빛을 반사하는 검신 등등

특별한 장식 없이 수수한 외형이었지만 아무렇게나 만든 싸구려 검과는 확실히 달랐다.

등에 메달기 편하게 전용 가죽벨트와 헹어를 어깨에 걸치고 버클을 고정했다.

공을 이만저만 들인게 아닌 이 양손검용으로 만든 특별한 매대였다.

등에 단단히 메달려 있으면서 버클만 간단히 조작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도장구이다.

여기에 응급치료용 치료약, 삼각건, 붕대 등이 들어간 주머니를 벨트 뒤편에 찼다.

추가로 방패 하나 더 들까도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번잡하기만해 몸을 움직이기 불편했다.

패딩아머에 좋은 사슬갑옷만 걸치기만 해도 앵간한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충분했다.

실제로 제작년 아그리파의 사병조직인 순찰대를 이끌고 홀슈타인 외곽을 돌며 

야만인과 오크 같은 적대적인 아인종을 상대하면서 체험하기도 했다.

그때 그는 비오는 듯이 쏟아지는 화살비를 꽤뚫고 고슴도치가 다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생체기 하나 입지 않고 그의 적을 도륙해내곤 했다.

무장을 갖춘 살바토르는 무기고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눈 앞에서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준비 다됬느냐.”

  피오레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어제 팔레르모 와인이 사라졌을 때 눈을 뒤집어가며 분노를 토해내던 그 피오레의 모습은 상상조차 안될정도였다.

  “예.”

살바토르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에게 피오레는 자신이 매고 있는 검을 벨트째 풀어 살바토르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가져가지 않으련? 위대하신 선조님인 코르넬리우스님의 글라디우스다.”

  살바토르는 60cm 안팍의 짧지만 묵직한 이 도검을 내려다보았다.

아그리파 가문이 이곳에 뿌리내린 수백년의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야만인, 로만의 적들, 괴물들, 적대적 아인종들을 도륙해낸 검이다.

때론 적에게 죽임을 당해 노획물로 타인의 손이나 전리품으로 전락한적이 있곤했지만 이내 그 아들이나 가까운 친족이 복수에 성공해내며 동시에 아그리파의 손아귀로 되돌아오곤 했다.

  이 검은 아그리파 가문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팔레르모 와인만큼 피오레가 아끼는 이 검을 잠시 집어 들어 검신을 살짝 뽑은 살바토르는 경이감에 찬 눈으로 살펴보더니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넣어두세요. 아버지. 전 아직 이 가문을 이끌어나갈 준비가 안됬습니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피오레는 살바토르에게 응답했다.

  “그럼 이제 가거라. 지하수도를 통해 움직인다면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거야. 그곳에도 경비대가 돌아다니긴 하지만 지난 세월동안 수없이 증축되고 변경되면서 구조가 많이 바뀌었으니 잘만하면 한번도 싸우지 않고 목적지에 갈수 있을게다.”

  “네.”

  몸을 옆으로 돌린 피오레를 지나쳐 나간 살바토르에게 약혼자인 엘레나가 다가왔다.

앞머리를 위로 올려 이마가 들어나 얼굴이 다소 깔끔하게 보였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살바토르의 목을 껴안더니 그조차도 뭐라 반응을 보이기전에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좋은 향기에 달콤한 입맞춤이 더해지자 지난밤 뜨거웠던 순간이 상기된다.

  “다치지 말고 다녀오세요.”

  걱정스럽게 눈썹을 모으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살바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걱정마 엘레나.”

  약혼자와 인사를 나눈 살바토르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하퍼는 준비가 된 거 같았다.

무기고에서 꺼낸 좋은 활에 허리에 패용한 검, 화살통 그밖에 자잘한 장비를 갖추니 제법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온갖 무기와 장비를 걸쳐서 그런지 하퍼의 날렵하면서도 매혹적인 몸매가 유별나게 강조되어 보였다.

특히나 엉덩이를 비롯한 다리 라인은 암컷 표범의 그것만큼이나 날씬하고 탄력있어 보였다.

바로 옆에 약혼자가 있었지만 자꾸만 하퍼의 하체에 눈이 간다.

골반과 허벅지가 구분되는 부분에 벨트를 매서 그런지 더더욱 그 느낌이 산다.

앞에서 보는 모습이 이럴진데 뒷모습은 어떨는지.

  ‘엉덩이는 과연 어떨까?’



  [별바 06.02 22:45]

  두보아는 망설임 없이 방이구로 갬비슨를 선택했다. 그 이상은 솔직히 두보아가 다뤄본 적이 없는 방어구였고, 

관리방법 조차 몰랐기 때문에 손쉽게 포기했다. 갬비슨 위로는 여지껏 입은로브를 걸쳤다. 

무기로는 질기기로 유명한 트롤 가죽으로 만든 슬링과, 매끈한 아몬드형 화강암 석탄를 가득 담은 주머니, 가볍게 만들어진 한손 철퇴를 허리띠에 매달고, 쿼터스태프를 챙겼다. 그리고 아그리파 저택에서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마법의 촉매들을 찾아 허리띠에 매달이놓은 주머니와 로브의 안쪽에 마련된 주머니마다 최대한 쑤셔넣었다.

  일행은 하인의 안내를 받아, 지하수도로 향했다. 지하수도로 연결된 뚜껑을 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지하수도는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하인은 일행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지하수도는 손쉽게 길을 잃기 쉬운 구조였다. 오랜 시간동안 관리를 받지 않아 붕괴된 곳도 있었고, 시 당국 몰래 도둑들이 불법적으로 개조한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동안 수십차례 보수와 개축을 통해 구조가 많이 변형되어 어느 순간 미로가 되어버렸다. 라는 설명을 끝으로 하인은 식수와 도시락을 챙긴 가방을 넘겼다. 

  "이제 내 실력을 보여줘야 겠군"

  "병신, 이거 믿을수 있나 모르겠네..."

 의욕이 가득한 크리스를 보면서 살바토르는 혓바닥을 찼다. 이제는 이용만 할 줄 알지, 어떻게 가동이 되는지 모르는 지하수도는 일반적인 시민들이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곳이었다.

 어둠이 가득한 지하수도를 잘아는 도둑길드의 길드원의 안내가 아쉽기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그리파 저택에 있던 신뢰성이 많이 없는 지도 하나만 믿고 나아가야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도둑길드원 만큼은 아니라도, 지하수도를 대략이나마 알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크리스 어반, 뭔가 허당끼가 다분한 암살자가 지도를 챙겨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가방을 챙겨 먼저 지하수도로 내려갔다.

  "와, 생각보다 냄새가 안나네요"

  하퍼는 놀라워 하면서 그 다음으로 내려갔다. 그 다음으로 두보아가 럭키를 단단히 앉고는 천천히 내려갔다. 잠시 두보아가 위를 바라보니, 살바토르와 피오레가 포옹을 하고 있었다. 

다정한 부자의 모습에 두보아는 잠시 울쩍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품안의 럭키가 혓바닥으로 빰을 핥았다. 차가운 혓바닥에 두보아는 정신을 차렸다. 

  "두보아, 왜 횃불을 챙기지 말고 가자는 거야"

  크리스는 약간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보아는 대답했다.

  "이제 제 실력을 보여드려야 하겠네요" 

  두보아는 로브 안쪽 주머니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한움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입김을 불었다. 간질간질한 기운이 속에서 꺼내지는 기분이 들면서, 씨앗이 싹을 틔었다. 두보아는 싹튼 씨앗울 바닥에 뿌렸다.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찍었다. 순식간에 해바라기가 자라면서, 쿼터스태프를 타고 올라가 자라났다. 놀랍게도 뿌리가 쿼터스태프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쿼터스태프에는 덩굴마냥 뒤엉킨 무척이나 작은 해바라기가 꽃봉우리를 피웠다. 대충 30여개의 해바라기. 

  그리고 해바라기는 꽃봉우리를 터뜨렸다. 그 순간 은은하지만 지하수도를 밝히는 호롱불이 해바라기마다 피어 올랐다. 어둠은 사라지고, 옛 루만인들이 만든 고대 지하수로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잔잔히 흘러내려가는 하수도와 그 위로 덮어둔 석재들. 고약한 냄새조차 감춘 지하수도는 거대한 터널이었다. 

  "와우, 존만이. 희안한 재주를 가졌구만"

  어느새 내려온 살바토르가 껄껄 웃으면서 두보아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기쁘게 쳤다. 두보아는 무척이나 아팠다.

  "이 불빛은 얼마나 가는거야?"

  크리스의 질문에 두보아는 손쉽게 대답했다.

  "대충 하루는 유지됩니다"

  "그래? 널널하게 유지되겠네. 가자고!"

  크리스가 선두로 걷기 시작했다. 두보아는 품에 있던 럭키를 내려놓고 속삭였다. 

  ".......혹시 모르니깐 주의좀 해줄래?"

  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딧불 06.03 02:00]

  크리스는 지하수로 진입을 앞장섰다.

  크리스는 사실 지하수로를 자주 이용한 편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출발하기전에 피오레에게 지도를 받으며 언질을 들었다.

  ‘지하수로에 그냥 가게 되면, 길을 잃기 쉬울걸세. 오랜시간 관리가 안되었기 때문에, 설비가 굉장히 불안할걸세. 도둑들의 이동경로로 쓰이기도 해서, 지도에는 표시가 안된 곳도 있을게야. 그러나 우리 추적자들이 가끔 이용하기 때문에, 그 표시만 따라가면 될 걸세.’

  크리스는 피오레가 쥐어준 종이를 펼쳐본다. 종이엔 ‘우’라고 적혀있었다. 그걸 보며 크리스는 혼자서 조용히 키득키득 댄다.

  ‘킥킥킥, 내가 아무이유없이 길을 찾는다고 자신감이 있던게 아니지롱! 이번에야 말로 내 모습을 보여주겠어! 킥킥킥’

  크리스는 멋지게 길을 찾아 동료들에게 우쭐해하며, 동료들이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존경해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동료들을 유도했다.

  “나만 따라오면 문제 없다구!”

  하퍼의 걱정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소리하지말고 길 찾는데 집중해요..”

  크리스는 하퍼의 말에 반문하지 않고 조용히 지하수도를 따라서 걷는다. 두보아가 만든 조명이 생각외로 밝아서 대략 먼 곳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한참동안 적막하게 걷다가 살바토르가 두보아를 제치고 지나가며 크리스에게 묻는다.

  “야, 손병신.”

  “왜”

  살바토르가 크리스에게 시선이 갔지만, 크리스는 정면을 응시한 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너 암살자랬지?”

  “어, 그런데?”

  살바토르가 무언가 생각하듯이 턱을 쓰다듬다가 이내 크리스에게 물었다.

  “그럼 너 분신술도 쓸 줄 아냐?”

  “그게 뭐야?”

  크리스의 표정에서 물음표가 떠오르며 살바토르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살바토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존만이, 암살자라면서 모르는 것도 있냐”

  “내가 모든걸 알리는 없잖아?”

  갑자기 살바토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해 했다.

  “분신술이란게 말야.. 동방국에서는 암살자를 닌자라고 한다네?”

  암살자라는 말에 크리스는 굉장히 관심이 있는지, 입을 헤 벌리며 살바토르에게 시선이 향했다.

  “엉.”

  “그리고 그 닌자들은 지붕 위를 뛰어다니면서, 조용히 다닐 수 있고, 칼을 등에 차고 다니며, 마법을 쓰는데, 그걸 인술이라고 그런다는 구만!”

  크리스가 살바토르의 말에 아이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오! 그래서?”

  “그래서 그 분신술이라는 마법이, 자신이랑 똑같은 가짜들을 만들어내서 공격할 수 있는 훌륭한 마법이라는 데!!... 너는 병신이라서 못쓰나보네.”

  크리스가 살바토르의 놀림에 볼을 부풀린다. 그리고는 화가 난 듯이 발에 힘을 주어 쿵쿵 걸으며 살바토르를 앞질렀다. 그리고 살바토르는 그걸 놓치지 않고 크리스를 놀렸다.

  “헤헤! 역시 저 병신! 삐졌구만?”

  크리스는 화가 나는 것을 꾹 참으려 주먹을 불끈 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덕분에 일행에서 멀어지고 있는 크리스를 따라 잡으려 일행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세갈래로 나뉘어진 길이 있었다.

  “길이 나뉘어 지네요. 크리스 어디로 가면 되죠?”

  두보아는 크리스가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 확인차 물어본다. 그리고 크리스는 피오레가 그려주었던 그림을 생각하며 주변에 문양이 그려져 있는 곳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처음 시선이 향한 곳은 오른쪽으로 꺽여져 들어가보이는 듯한 방향으로 그 통로의 안쪽엔 ‘아’라고 적혀있었다. 크리스는 자신이 봤던 문양이 아니기에 시선을 중앙으로 돌렸고, 중앙의 통로엔 직진으로 보이는 방향이었는데, 딱히 어떤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한참이나 중앙 통로 부근을 살펴보다가 왼쪽 통로로 시선이 향했는다. 왼쪽 통로는 왼쪽을 향하는 방향으로 점점 꺽여있는 통로였고, 그 왼쪽의 벽에 그려진 문양은 ‘♀’였다. 크리스는 한참이나 오른쪽 통로와 왼쪽 통로를 번갈아 보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여기다!”

  크리스의 손이 향하는 곳은 왼쪽 통로였다. 그리고 크리스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그 뒤를 따라가던 하퍼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말했다.

  “어라..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이 길이 아닌거 같은데..”

  하퍼가 문득 이질감을 느꼈지만, 지하수도 안이었기에, 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은근히 방향감각이 더뎌지는 통에 이질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그걸 들은 살바토르가 놓치지 않고 물었다.

  “엉? 빵뎅이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녜요... 그런데 크리스, 그 길 맞아요?”

  크리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이 길, 확실해!”

  출발하기 전부터 크리스가 미덥지 않던 두보아도 거들어서 물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확신하시는 겁니까, 크리스?”

  크리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적막하게 걸어가며 말했다.

  “응, 사실 피오레 아저씨가 아그리파 추적자들이 가는 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길에 적힌 표시대로만 가면 된다고 말해줬거든.”

  “아... 그렇습니까.”

  크리스의 말에 두보아는 안심이 들었고, 하퍼 역시도 자신의 느낌이 틀렸구나라며 속으로 안심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리스의 뒤를 따랐다.

  ‘뭐, 동물적인 느낌이 틀릴때도 있으니깐.’

  그 와중에 살바토르는 신난 듯이 얘기한다.

  “역시! 우리 아버지라니까. 저 병신이 길을 잘 찾을지 처음부터 불안하셨던 거야!”

  두보아가 난처해하며 살바토르를 제지했다.

  “아니 살바토르씨 그게 아닐겁니다. 그렇게 얘기하시면 크리스씨 또 삐져요.”

  “헤헤! 저 존만이가 뭐 그렇지!”

  그러나 크리스도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사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하퍼의 강제적인 밤씨름에 지친 크리스였기에, 딱히 반론할만한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일행보다 더욱 빠른 걸음으로 길을 향했다.

  “에휴...”

  크리스의 등을 보던 두보아는 크리스가 불쌍한지 한마디했다.

  “크리스씨 괜찮아요. 살바토르씨가 원래 약간 저런 성격이시잖아요.”

  “뭐? 존만이 너 혹시 나를 비하한거냐?”

  살바토르의 언성에 놀란 두보아는 쿼터스태프를 잡지 않고 있는 손을 올려 젓는다.

  “아, 아뇨 그런게 아니라, 크리스씨가 너무..‘

  두보아의 그런 행동에 하퍼는 놓치지 않고, 두보아의 귀에 하퍼가 속삭였다.

  “아직도 찌릿찌릿 하나요? 그 손이?”

  “뜨앗, 그게 아니라!”

  오히려 당황한 두보아는 하퍼를 향해 뒤를 돌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지만,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흔들린 탓에 두보아의 해바라기의 빛이 일순간 줄어들었다가 밝아짐을 반복했다. 그 상황에 답답해진 살바토르가 소리쳤다.

  “야! 존만이! 똑바로 안할래?!”

  “예,옛!”

  일순간 조명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갑자기 크리스의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악!!”

  크리스의 비명에 동료들이 놀라며 외쳤다.

  “크리스!!”

  “야! 손병신!!”

  “크리스씨!!”

  "멍멍!"

  일행들은 크리스가 소리 난 방향을 향해 조명없이 달려갔고, 럭키도 따라서 같이 달렸다. 

그리고 곧 두보아의 빛이 다시 돌아오자 살바토르가 달려가다 말고 멈춰서며 소리쳤다.

  “으악! 잠시만 멈춰!!”

  그러나 갑작스런 상황에 두보아는 멈추지 못하고 살바토르의 등에 부딪쳤고, 순간 살바토르의 뒷꿈치가 들렸다. 다행히 두보아의 무게는 어찌어찌 버텼지만, 그 뒤의 하퍼의 발걸음 소리가 매섭게 들린다.

  탁 탁 탁 탁

  퍼억

  “아얏”

  하퍼는 그대로 두보아의 등에 부딪쳤고, 이 와중에 살바토르와 하퍼 사이에 끼어있던 두보아는 하퍼의 가슴살결이 등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 덕분에 먼추려던 두보아의 다리힘도 풀리며, 하퍼의 무게에 어떻게든 버티려던 살바토르의 뒷꿈치가 완전히 들리는 바람에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고, 결국 이 셋은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이 손병신 존만이!!!”

  “하,하퍼씨 이건 의도한게 아닙니다아~~~!!”

  “지금 그게 문제에욧?!!!!”

  이 일행들은 지하수로의 구멍에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럭키는 구멍앞에 멈춰서서 짖다가 두보아를 향해 같이 뛰어내렸다.


  [포르쉐 06.04 16:11]

  "우아악!!"

  "으악!"

  "꺄악!"

  풍덩!

  모두둘 다양한 비명과 함께 지저분한 지하수로 물속에 빠져버렸다. 물이 생각보다 깊어서 헤엄쳐야할 수준이었기 때문에 떨어질 때 충격을 받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하수에 빠져버려서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다.

  수면 위로 올라와서 천장을 바라보니 사람이 서너명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저런 곳만 골라서 떨어지다니 크리스는 대체 지도를 어떻게 보고 안내한걸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가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 크리스 어디갔죠?"

  수면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던 일행 모두 크리스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크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거야? 떨어진 구멍은 다 같은데 크리스만 사라질리가 없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갈 출구라도 찾을 생각에 하퍼는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일단 어디 올라갈 곳이라도 찾아봐요!"

  그때였다.

  "이쪽으로 올라와봐!"

  크리스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리자 일행모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조금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어둠에 시력이 익숙해지자 낡은 철로 된 사다리가 벽에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와중에 하퍼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언제 저기로 올라간걸까?' 

  어쨋든 일단 사다리쪽으로 헤엄쳐가기 시작했는데, 두보아와 럭키도 하퍼 뒤를 따라오고, 뒤이어 살바토르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헤헷, 어쨋든 여기가 길인가봐!"

  사다리 위에 명랑한 크리스 목소리가 들렸다



  [홍차매니아 06.05 17:25]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과연 바람이 느껴지는게 제대로 길을 찾은거 같긴 하다.

근데 꼴에 베려한답시고 두보아랑 하퍼를 먼저 올려보낸게 실수였다.

밑에서 올라가면서 두보아의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자고 먼저 올려보낸게 큰 패착이었다.

  “빌어먹을.”

  후두둑 떨어지는 역한 하수 냄세에 살바토르는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냄새에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이 기대했던 장면을 볼수없으니 이거 먼저 올려 보낸 보람이 없다.

일행이 모두 사다리 위로 올라서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더럽기 짝이없는 오물을 뒤집어쓴 시간도 생각보다 길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온몸에 껴안았다는 사실에 살바토르는 화가 났다.

이미 일찌감치 올라와서 희희낙락거리는 크리스를 보자 분노가 치민다.

  “헤헤. 이 오크놈아. 더러운 생쥐꼴 되니까 기분 어떠냐?”

  “어이 손병신.”

  놀려대는 크리스를 슬쩍 부른 살바토르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많이 해본 솜씨인 듯 크리스의 뒤로 돌아가더니 

그의 목을 팔뚝으로 휘감아 목을 압박했다.

너무나도 단호하고 당연한 듯이 행동하다 보니까 하퍼나 두보아가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확씨. 뒤질래? 엉? 아주 그냥 강 건너 할아버지랑 상봉시켜줄까?”

  “으갸갹! 커컥!”

  목구멍이 강하게 압박되니 숨이 막힌다.

크리스는 살바토르의 팔뚝을 두들겼다.

시간이 흐르자 숨이 막힐뿐만 아니라 눈앞이 새하얘지는데, 타이밍 좋게도 목을 누른 팔뚝이 느슨해진다.

  “자, 잘못했어! 그만해.”

  “살바토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어서 풀어줘요. 얼굴이 뻘게지려고 해요.”

  하퍼의 만류에 살바토르는 머쓱해진 표정을 지었다.

  방심한 그틈에 크리스는 턱을 당겨 살바토르의 팔똑 안쪽으로 집어 넣더니 양손을 힘을 주어 살바토르의 팔뚝을 당겼다.

힘이 풀리자 재빨리 머리를 살바토르의 품에서 빼내었다.

  “아오 씨. 할 줄 아는 게 욕하고 사람 족 치는거 밖에 없지. 응?”

  “길 안내만 똑바로 했어도 니 목을 졸랐겠냐?”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지하수도의 정확한 구조는 아는 사람이 없다며?”

  “그럼 신중했어야지! 병신아. 엉?”

  “뭐? 이 멍청한 오크놈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하퍼가 가운데 끼어들며 말렸다.

  “그만 좀 해요!”

  두보아는 이 광경을 한숨 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던차이 럭키가 끙끙대며 두보아의 옷자락을 물어 흔들었다.

그는 티격태격하는 일행을 외면하고는 의아해하며 럭키를 내려다 보았다.

  “무슨일이니?”

  그때 지하수도 저편에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명이 아닌 듯 물장구치는 듯한 걸음을 옴기는 소리가 몇가닥씩 들렸다.

두보아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그렇게 끝내줬다니까.”

  “이런 망할 세끼. 키키키킥.”

  “니미 존나 어린년이 내 껄 입안에 집어넣는데, 막 입을 벌려선 이렇게...컥!컥!컥!”

  “미친새끼. 그걸 따라하냐? 내 눈 썩는다 썩어. 크크큭!”

  “망할 창녀였어. 생긴건 예쁘고 멀쩡히 생겼는데, 완전 창녀라니까? 거기 조임이랑 허리놀림도 아주 그냥...!”

  “푸주간의 요한. 그 놈은 지 딸이 이러는 줄 알까?”

  “내가 어떻게 아냐 병신아.”

  두보아는 급히 고개를 돌려 일행을 돌아보았다.

  “모두 조용히해요! 누가 오고있어요!”

  낮지만 급박한 목소리로 두보아가 경고를 했다.



  [별바 06.05 23:46]

  두보아는 지팡이를 털었다. 지팡이에 피어올랐던 꽃이 순식간에 시들어 사라졌다. 동시에 호롱불도 사라졌다. 일행은 어둠에 잠긴 지하수도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무장을 꽈악 움켜잡았다.

잠시 후, 횃불에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4명의 그림자가 지하수도 벽면에 걸린다. 

  "두 놈은 횃불과 검을 들고 있고, 다른 놈들은 창으로 무장했네"   

  크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병신아 진짜로 보이는 것 맞냐?"

  "이래봐도 눈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고"

  살바토르의 타박에 크리스는 억울하듯 답변했다. 둘이 티격태격댈 기세가 보이자 뒤에 있던 하퍼가 둘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하듯 치고는 냉담하게 말했다. 

  "그만해요"  

살바토르는 혓바닥을 차고는, 이내 점점 가까이 일행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주시했다.

불청객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자, 두보아는 이들이 누군지 대충이나마 손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두보아는 로브의 주머니에서 궐련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썩 좋지 않군요. 백골단 녀석들이군요"

  "빌어먹을 시체에 염장질러서, 바닷가에 집어던질 우라질 놈들"

  살바토르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 통에 여지껏 긴장한채 전방을 주시하던 럭키가 흠칫하고는 저도 모르게 꼬리를 말 정도였다.

  명확하게 모습을 들어난 4명의 사내는 제각각 다른 복장이었지만 공통점이 너무나 대놓고 들어나 있었다. 팔뚝마다 관자놀이에 산양뿔이 난 백골문신이 가득했다. 횃불을 가지고 있지 않는 2명의 사내는 붉은 색으로 물든 포대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홀슈타인의 외각을 양분하는 갱단. 온갖 악독한 짓이란 짓을 하는 인간말종들로 유명했다. 그 악명에 걸맞게 푸대에는 손발이 빠져나와 있었다. 채 덜마른 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담배?"

  "아뇨, 그냥 제가 대충 약초가지고 말아둔 겁니다" 

  하퍼의 질문에 두보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떻게 할거야?"

  크리스가 물었다. 살바토르가 장검을 들어올렸다. 장검이 백골단 사내의 횃불에 반짝인다.

  "조져!"

  살바토르가 폭발적으로, 흑표범이 사냥감을 덮치듯 빠르게 움직여, 장검을 휘두른다. 검이 횃불을 든 백골단 갱단원의 목을 날려버린다. 그와 동시에 화살이 다른 횃불을 든 남자의 명치를 꿰뚫었다.

  횃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럭키가 순식간에 튀어나가 푸대를 끌고오던 남자의 발목을 물어뜯고, 두보아가 던진 슬링에 머리가 박살나버렸다. 

  순식간에 벌이진 일. 놀란 백골단 생존자가 창을 휘두려는 순간 살바토르의 검이 내리찍어, 창대를 두동강 내버렸다. 살바토르가 발로 백골단 생존자를 걷어찼다. 생존자는 벽에 부딪쳤다. 호흡곤란에 백골단 생존자가 토를 쏟아냈다.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뭐..뭐야?"

  "크리스...." 

  "뭐.왜.뭐!"

  크리스는 짜게 바라보는 하퍼에게 툴툴거리면서 푸대를 살폈다. 푸대마다 아이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2구의 시체. 그리고 시체에는 크리스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왼손 약지가 깔끔하게 베어 있었다. 크리스의 표정은 무척이나 묘했다. 

  그 순간, 살바토르가 푸대에 있는 아이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는 거칠게 바닥에 쓰러진 백골단 생존자를 발로 걷어찼다.

  "이 지옥에 떨어질 쓰레기 같은 놈! 이 가엾은 아이들을 대체 왜죽인거지?!" 

  양손으로 백골단 생존자를 멱살잡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채로, 질문을 던졌다. 무척이나 강한 눈빛에 백골단 생존자는 공포에 질렸다.

  "나..나으리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요.."

  "말해!"

  "경..경비대요! 경비대입니다. 나,나으리 제발 목숨만은 살려, 살려주세요"



  [반딧불 06.06 18:01]

  살바토르는 백골단원의 멱살을 잡은 채 그대로 지하수로의 벽으로 내동댕이쳤다. 백골단원은 고통에 신음하며 살바토르의 위압감에 몸서리쳤다. 백골단원은 공포감을 보여주듯이, 벽에 기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저앉은 채 뒷걸음치듯이 발을 밀어댔다. 살바토르는 도망치고 싶어하는 백골단원의 모습에, 어차피 도망치더라도 잡을 순 있지만 도망치면 귀찮을 것 같은 생각에 백골단원의 허벅지를 지긋히 밟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뒤 무릎에 팔을 걸친 채 백골단원을 응시했다.

  “아악”

  “경비대...? 요즘엔 너네같은 쓰레기들이 마을을 지키나보지?”

  그러면서 살바토르는 허벅지를 더욱더 강하게 짖누르며, 그 고통에 백골단원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아아악! 나으리 그게 아니오라!”

  꽈악

  “그딴 핑계 필요없고, 너희를 고용한 존만한 씹새끼가 누군지나 말해.”

  백골단원은 고통에 차 힘들어했지만, 뭔가 말하기는 어려워했다. 그 모습에 살바토르는 더욱더 고통을 가했다. 그 와중에 크리스는 포대에 관심을 가졌다. 백골단원이 포대를 놓치면서 포대에 있던 시체가 쓰러져 나와있었는데, 그 중에 왼손 약지가 잘린 손을 보며 의아해 했다.

  “이상하네... 내가 이걸 어디서 봤지? 어디서 분명히 본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어디더라?”

  그 사이 두보아가 살바토르를 말렸다.

  “살바토르, 그러다 죽겠어요. 최소한 정신은 있어야 뭘 알아내던가 하죠.”

  살바토르는 두보아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분노에 가득 찬 채로 백골단원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이 새끼가 말하지 않아도, 사실 누군지는 알 것 같아. 그리고 단지 난 그 것을 더욱 명확하게 알고 싶을 뿐이지. 그리고 이런 새끼들은 죽어도 괜찮아.”

  그것을 보던 동료들은 척하니 보아도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살바토르가 가하는 고통은 상상조차하기 싫었다. 그리고 크리스가 시체를 보며 생각나지 않는 것을 떠올리려 안간힘 쓰다가 다른 부위를 보면 생각날지 몰라 포대를 들어내는 순간 아이의 머리가 포대안에서 굴러 떨어지며 크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이의 머리가 굴러 떨어지는 모습과 머릿 속에서 처음보는 기억이 정지영상과 같이 떠오른다.

  찌릿 찌릿

  “읍...”

  어떤 여자아이가 쓰러지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통이 일어났고, 크리스의 머리를 짖누르며 같은 장면의 기억이 반복됐다.

  치직- 치직-

  “으으윽...”

  크리스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두통을 이기지 못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동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크리스에 시선이 갔다.

  “으아악 머, 머리가..!”

  “크리스?!”

  크리스의 신음에 동료들은 적들의 기습공격인 줄 알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살바토르가 크리스에게 시선이 간 채로 외쳤다.

  “야! 손병신! 기습이냐? 왜 그래?”

  “이건 대체 뭐야, 으아악 제발”

  크리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살바토르가 긴장하며 몸에 힘을 뺀순간 앞의 백골단원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살바토르가 백골단원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백골단원의 입에 뿔피리가 들려있었다. 그 모습에 화가난 살바토르는 욕짓거리를 하며 발로 그대로 백골단원의 안면을 강타했다.

  “이 개새끼가!”

  퍼억!

  거대한 살바토르의 발에 백골단원의 머리가 그대로 벽에 부딪치며 정신잃었다. 그 사이 하퍼가 다가가 크리스를 살펴본다. 

  “크리스? 크리스?”

  하퍼는 고통에 몸부림 치는 크리스를 끌어안아 다독였다.

  “크리스 정신차려.”

  두통에 정신을 못차리는 하퍼가 색기가 가득한 미소로 크리스에게 속삭인다.

  “빨리 정신 안 차리면 당장 따먹어 버린다?”

  번쩍

  갑자기 크리스가 눈을 부릅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리고 하퍼는 크리스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아마 동료를 부르는 뿔피리 일 거야. 정확히 우리 위치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왔던 길로 가면 아마도 경비대로 갈 수 있겠어. 다들 경계하고 이동하자. 먼저 공격하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두보아가 짧게 대답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크리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킨 뒤, 허리띠에 약초를 하나 뽑아내어 크리스에게 어깨에 팔을 올린 채 머리에 올려놓고, 약초가 떨어지지 못하게 손을 덮은 채 크리스를 부축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가 시원해지는 걸 느낀 크리스는 두보아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고마워요. 두보아”

  그 사이 살바토르는 기절해있는 백골단원을 가슴팍을 발로 차더니 뼈가 부서지는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백골단원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지는 것을 보며 자리를 피했다. 사실 그냥 가도 무관했을 것이라 보이지만 의외의 살바토르 모습에 하퍼가 입을 열었다.

  “냉정하시군요.”

  살바토르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백골단 따위는 홀슈타인에서 해악과 같은 존재들이야.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죽이는 이 사람 같지도 않은 쓰레기들은 죽어 마땅해.”

  좀 전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는 살바토르의 모습에 하퍼는 따로 뭔가 더 물어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일행의 앞에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지는 길이 나왔다.

  “어이 손병신 어디로 가야하지?”

  여전히 두보아가 크리스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있었고, 크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은채 살바토르의 말에 눈을 찡그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렇다고 윙크는 하지말고.”

  살바토르의 개그 아닌 개그에 일순간 적막이 찾아왔지만 크리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지도대로라면 오른쪽일거야.”

  그러나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왼쪽에서 수로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와 인기척이 들린다. 그 소리에 살바토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손병신은 도통 믿을 수가 없구만..”

  “....”

  크리스가 살바토르에게 딱히 반문을 하진 못했지만, 사실은 오른쪽 방향은 경비대 울타리 본진 안쪽이었고, 좌측은 본진 울타리 바깥쪽이었다. 일행들은 경비대라고 자처한 백골단원들이 온 쪽이 경비대 쪽이라고 생각하고, 백골단원들이 접근하는 것을 기다렸다.

  “여기서 소리가 들렸다! 가자!”

  다다다닥 · · ·

  백골단원들을 지휘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여러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일행들은 벽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크리스는 발자국 소리에 집중했다.

  “하나.. 둘.. 셋.. 넷...”

  크리스는 백골단원들의 인원수를 체크하며 바닥에 손을 댔다.

  “여덟명 정도네, 다들 놀라지 말고 잠깐 기다려... 페이크워크..”

  크리스가 바닥에 손을 댄 채 뭔가 읊조리더니 크리스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뚜벅, 뚜벅, 뚜벅 · · ·

  일행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발자국 소리에 흠칫하며 놀랐지만, 크리스가 사전에 일행들을 안심시켰기에 더 큰 반응은 없었다. 그리고 크리스로부터 시작된 발걸음 소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두 갈래의 통로 중 오른쪽 통로로 이어졌다. 그걸 본 살바토르는 신기하게 여기며 말했다.

  “손병신 이 새끼, 나름 재주가 있군”

  살바토르의 놀림에 크리스는 대꾸하지 않으며 한번더 읊조렸다.

  “페이크워크. 런”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크리스가 만들어낸 소리는 마치 진짜 발이 달린 듯이 달리는 소리로 변하며 백골단원들의 주의를 끌었다.

  다닥, 다닥, 다닥 · · ·

  발자국 소리는 지하수로를 울리며 백골단원들을 유인했다.

  “저기다!”

  백골단원들의 단장으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에 일제히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백골단원들이 일행을 목전에 둔 채 우측의 통로를 향해 뛰어가는 인영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발자국 소리가 끊기자 백골단원들은 발자국 소리가 끊긴 지점에서 두리번 거리며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일행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하퍼의 대기를 가르는 화살이 전투의 신호탄이 되었다.

  쉬익 퍽

  “으악”

  매서운 하퍼의 화살이 백골단원의 등을 정확히 노렸고, 그 소리에 놀란 백골단원들은 일제히 뒤를 돌았다.

  “뒤다! 뒤에 적이있다!”

  뒤를 도는 찰나에 이미 살바토르가 접근해 부웅하는 파공음을 일으키며 양손검을 휘둘렀고, 그 일격에 목이 분리되며 백골단원 한명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몸이 무너졌는데, 살바토르는 대뜸 그것을 놓치지 않고, 무너지는 백골단원의 손에 들려있는 검의 손잡이 부분을 발로 차며 공중으로 검을 띄웠다. 동시에 검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사이 살바토르가 허리를 숙인다.

  “니 차례다 손병신.”

  살바토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크리스는 살바토르의 등을 발판삼아 도움닫기하여 날아올랐고, 공중에 뜬 검을 잡아 검날의 방향을 아래로 돌리며 날아오른 가속력으로 정면에 있는 병사의 가슴에 검을 내리꽂았다.

  푸욱

  “커헉”

  몇 초도 안되는 순간에 병사 둘이 쓰러지며 백골단원들은 당황해했다. 크리스는 검을 잡은 채 병사가 쓰러지는 것을 몸에 맡기며 착지했고, 두통이 다시 밀려오는지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새끼들을 죽여!”

  백골단장의 목소리에 백골단원들은 일제히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일제히 일행을 향해 뛰어들었고, 두병의 병사들이 크리스를 지나 양쪽으로 살바토르를 향해 조여오고 있었다. 그리고 살바토르의 발 앞에 씨앗 몇 개가 뿌려진다. 그 사이 크리스는 정면으로 내려꽂히는 검을 피해 뒤로 구르며 낙법을 했고, 대기를 가르는 검은 그대로 누워있던 동료 시체를 내려찍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크리스는 허리춤에 있는 포크를 뽑아 정면의 병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양쪽에서 달려드는 병사에 기겁하며 지하수로의 벽을 도움닫기 삼아 점프하며 검을 피하며 병사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 사이 살바토르를 향해 두 명의 병사가 검을 들어 몰아치고 있었고, 살바토르는 우측의 병사는 신경쓰지 않고 좌측의 병사를 향해 다리를 벌리며 검을 날린다. 연이어 살바토르의 몸이 왼쪽으로 돌아가며 병사의 검과 맞추쳤다. 그러나 살바토르의 육중한 힘에 의해 병사는 휘청거렸고, 그 순간 우측의 병사의 기합소리가 들리며 검을 들었지만, 살바토르는 신경쓰지 않고 우측의 병사를 향해 검을 다시 당긴다. 그 순간 살바토르의 다리밑으로 하퍼가 슬라이딩 하며 활을 고쳐잡고 시위를 당겼다.

  휘익 푹

  하퍼의 시위로부터 날아간 화살은 살바토르의 우측으로 찔러오던 병사에게 적중하며 몸이 무너졌고, 살바토르는 검을 고쳐잡고 병사의 목을 향해 우측으로 검을 베어 들어갔다. 

  탱!

  살바토르의 검을 막아내던 병사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고 그걸 놓치지 않는 살바토르는 검을 다시 당긴 뒤 검을 수직으로 들어올리며 그 병사를 내리찍는다.

  쉬익, 카칵 퍼억

  병사의 검은 살바토르의 검을 이기지 못한채 부러지며 병사의 머리를 갈라놓는다. 그리고 살바토르의 다리사이로 슬라이딩한 하퍼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오른발로 땅을 딛고 무릎을 튕겨내며 일어났고, 그 회전력으로 반바퀴 돌며 정면의 크리스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크리스?”

  정면의 병사들의 검을 피하던 크리스는 하퍼의 말에 약속이나 한듯이 몸을 웅크린다. 그러자 하퍼가 튕긴 화살이 크리스의 머리 위를 통과하며 가슴팍에 활이 꽂힌다.

  푸욱

  “으윽”

  그리고 좌측으로 하퍼를 향해 병사가 달려든다. 하퍼는 시위를 놓은 채 멀뚱히 그 병사를 향해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두보아?”

  “으아압”

  병사의 기합소리와 동시에 검이 날려든다. 그리고 동시에 두보아가 외친다.

  “제 차례인가요?”

  순간 하퍼의 앞에 놓여있던 씨앗에서 나무덩쿨이 자라나더니 금새 굵어지며 주먹형태가 되어, 하퍼의 앞에 있던 병사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 모습에 하퍼가 휘파람을 불며 미소짓는다.

  퍼억

  “으악”

  “호~ 멋진데요 두보아”

  그리고 연이어서 하퍼를 향해 대기를 가르는 매서운 화살의 소리가 달려든다. 그 사이 이미 두보아는 다시 하퍼의 인근에 있는 씨앗을 향해 쿼터스태프를 내민다. 순가 쿼터스태프가 은은하게 발광하며 하퍼의 발밑에 있던 씨앗에서부터 나무덩쿨이 자라나더니 방패모양이 되어 화살을 막는다.

  퍽

  그리고 이내 나무방패가 좌우로 갈라지며 중앙에 화살 형태를 이룬다. 하퍼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잡아 시위를 당긴다.

  끼이익

  하퍼가 시위를 당기며 활이 기울어진다. 그리고 그 옆으로 살바토르가 발을 쿵쿵대며 달려나간다. 

  “빵뎅이, 엄호를 부탁한다.”

  살바토르의 말에 하퍼가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하퍼는 시야에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잊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위를 놓는다. 쉬이익 하는 소리가 살바토르를 지나 어두컴컴하게 있는 공간을 찌른다.

  푸욱

  “악!”

  정확히 화살이 명중하며 병사의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크리스는 지하수로의 벽을 타고 달렸고, 크리스를 향해 병사가 검을 가른다. 그러나 크리스는 벽을 도움닫기 삼아 공중제비를 돌며 검을 피했고,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백골단원대장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크리스의 위협에 백골단원대장은 침착하게 검을 날렸고, 크리스의 포크와 백골단장의 검이 맞닿는다.

  챙, 챙, 챙

  크리스는 백골단원의 검을 포크 날 사이로 정확히 끼워 막으며 위협적으로 포크를 날려댔다. 백골단장도 그 무기가 포크인지 뒤늦게 깨달으며 당황해 했고, 그 사이 크리스의 뒤에 있던 병사가 크리스를 향해 달려든다. 그 위압감에 크리스가 몸을 움츠리며 깜짝 놀랬지만, 그 병사의 뒤로 살바토르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어딜보냐 존만아”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바토르의 검이 병사의 등을 관통해 검날이 튀어나온다. 피가 사방에 튀며 그 사이 크리스가 옆으로 낙법을 하며 굴렀다. 동시에 살바토르는 멈추지 않고 백골단장을 향해 돌진했다. 병사를 찌른 채  황소같이 돌진하는 살바토르에 당황한 백골단장은 뒷걸음질 쳤고, 살바토르는 칼에 꽂혀있던 병사에게 발을 올려 그대로 밀어내며 검으로부터 뽑아냈다. 그 병사는 힘없이 백골단장에게 안기며 동시에 쓰러졌고, 백골단장에게 안긴 병사를 보니 눈을 부릅뜬 채로 숨이 거두어있었다. 

  덕분에 백골단장은 자신의 품에 안긴 병사 시체로 인해 낑낑대며 일어나지 못했고, 그 백골단장의 시선 앞으로 조명이 켜지며 일행의 모습이 들어선다.



  [포르쉐 / 06.07 19:55]

  "왠놈들이냐!? 내 부하들을 이렇게 만들다니 배짱도 좋구나!"

  시체 밑에 깔려있던 백골단장이 호기롭게 웃으며 외쳤다.

그러자 살바토르가 병사의 시체를 한쪽 발로 지긋이 밟으면서 외쳤다.

  "니 엄마다!"

  "크아악!"

  백골단장이 살바토르와 시체의 무게에 못이겨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난 그의 정수리에 활을 겨누고 말했다.

  "아이들 시체를 왜 경비대에 가져가려고 한거지? 다음에 할 대답은 신중하게 해야 할거야. 머리에 바람구멍나기 싫다면!"

  그러자 백골단장은 잠시 멈칫하는 듯 했지만, 조금 전의 호기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서 소리를 질렀다.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나?! 어차피 외성에서도 골칫거리인 애들인데 별 신경쓸 이유도 없잖아? 애미애비없는 더러운 애새끼들 몇명 죽여봐야..."

  콕!

  "끄아아아악!!!"

  백골단장이 말하는 도중에 크리스가 포크를 들고 그의 이마를 찔렀다. 이마에 포크가 박힌 백골단장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지하수로가 쩌렁쩌렁 울렸다.

  뽁!

  크리스가 천진난만하게 포크를 뽑자 백골단장의 이마에 난 포크자국으로 피가 새어나왔다.

  "으아아아악! 악랄한 놈들! 난 절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테다!"

백골단장이 발악하자 살바토르가 시체를 치우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살기어린 표정으로 그를 주시한 채 두보아에게 외쳤다.

  "존만이! 이자식좀 꽁꽁 묶어놔!"

  "네!"

  두보아가 그의 발앞에 씨앗을 하나 던지고 정신을 집중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씨앗이 열리고 어떻게 그 작은 공간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나무덩굴이 나오면서 백골단장의 몸을 머리만 남기고 휘감아버렸다. 속박이 끝나자 살바토르가 검으로 땅을 지탱하고 삐딱하게 서서 말했다.

  "어이, 마지막으로 기회준다. 경비대랑 너희랑 무슨 관계냐?"

  "어차피 알려줘도 죽일 것 아니었나? 그냥 어서 죽여라!"

  우드득!

  두보아가 손짓하자 나무덩굴은 더욱더 백골단장의 몸을 조였다. 숨이 막히는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백골단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다가 활시위를 당기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살바토르가 무슨 생각이 있을 것 같아 놔두기로 했다. 

  하지만 살바토르는 거대한 양손검을 거꾸로 해서 칼날을 한손으로 잡은 다음 나머지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백골단장의 정수리를 찍어버렸다. 손잡이를 위로 가게 해서 찍어내린 바람에 무게 중심이 더 실려서 백골단장의 머리는 호박이 쪼개지듯 갈라져버렸다.

  푸욱!

  "살바토르?!"

  두보아도 예상못했는지 놀란 눈으로 살바토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살바토르는 양손검을 뽑은 다음 백골단장의 시체를 발로차 쓰러트리면서 말했다.

  "하! 이자식도 시체 처리나 하는 쪼무래기놈들을 통솔하는 주제에 뭘 알겠냐?! 혹시나 살 수 있을까해서 허세부리는 거겠지. 갈길이나 가자고! 어차피 짐작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아마도 살바토르 역시 홀슈타인에서 이름난 무관가문에다 경험이 많을테니 짐작가는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죽을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백골단장이 너무 여유로웠다. 살바토르의 추리가 생각보다 날카로울지 모르겠다.

  살바토르가 어깨에 양손검을 걸치고 크리스에게 앞장서라고 재촉하며 걸어갔다. 뒤에서 백골단장의 뇌수와 피가 나무덩굴을 적시고 있는 광경에 럭키가 살짝 움츠러들자 두보아가 다독였다. 많은 사람이 죽은 광경에 두보아의 인상이 약간 어두워진 듯 했다. 하퍼는 그런 두보아를 다독이며 말했다.

  "두보아, 어서 가요. 저 사람들은 죽을만 했어요."

  "그럼! 쓰레기같은 새끼들 산채로 화형해도 모자랄 놈들! 존만아 그만 시무룩해있고 여기 앞좀 밝혀줘!"

  앞서가던 살바토르도 욕을 내뱉으면서 두보아의 심경을 거들어주었다.

  두보아가 하퍼를 보며 쓴웃음 짓더니, 하퍼 앞을 지나 살바토르 곁으로 가서 불을 밝혔다. 뒤에 남은 수많은 시체들에 조명이 사라지자 무슨일 있었냐는 듯 어두운 지하수로만 남았다.



  [홍차매니아 / 06.08 19:14]

  경비대원 바우어는 급하게 변소로 달려온 뒤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오늘이 내근인 탓에 갑옷도 안입고 서코트만 입고 와서 그런지,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해체하느라 쩔쩔 맬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지난밤에 무엇을 쳐먹었는지, 이놈의 위장은 무슨 야만인들의 대대적인 습격이라도 일어나는 것 마냥 

부글부글끓어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우 썅. 대체 어제 처먹은게 뭔지. 니미럴 썅.”

  분명 한덩이 쏟아낸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뱃속에서 내는 소리는 여전히 심상치 않다.

일어서려고 하면 뭔가 다시 토해내려 했다.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속을 비워내려고 안감힘을 있는 대로 써서 그런지, 바우어는 변소 한쪽구석에서 들썩이는 바닥 돌을 보지 못했다.

대신 뱃속에서 힘겹게 삐져 나올려는 무언가 덕택에 눈 앞이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이런 썅!”

  파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찬 물결이 그의 장에서 빠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구석탱이에서 들썩이던 돌이 옆으로 밀어 젖혀지며 날렵한 몸 동작으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크리스였다.

힘껏 뱃속의 것을 밀어낸 바우어는, 힘이 빠져서 그런지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어, 소화불량은 정말 짜증나는거죠. 안그래요?”

  바우어는 순간 깜짝 놀라더니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장실에서 뱃속의 부글거림과 전투를 벌이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다른 누군가가 화장실에 들어와있는 것을 알아챌수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낸 크리스는 실실 웃었다.

“아 근데 실례지만 여기가 어디죠?”

“경비대 본부인데, 당신은 누구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요. 뭐요?” 

넉살좋게 말을 건내던 크리스는 순간 표정이 싸늘해 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니 씨! 진정해! 내가 뭔짓했다고 소리지르는거야!”

  “으아아아아악! 똥싸고 있는 경비대원이다!! 경비대원이 똥싸고 있다!!”

  바우어는 당황해하더니 바지를 올리지 않은 상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몇걸음 옮기기도 전에 바지춤에 다리가 걸려 바닥으로 엎어졌다.

  철푸덕

  “아, 죄송합니다. 집을 잘못찾아온거 같아요. 저 이만나갈께요. 안녕히 계세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청산유수처럼 사과의 말을 내뱉고 고양이 지나가듯 슬그머니 고개 숙이며 

방을 빠져나가려는 크리스의 행동에 바우어는 하마터면 '응 잘가' 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러나 다시 판단력이 돌아온 그는 어떻게 해서든 크리스를 불러세우기 위해, 급한대로 대충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입을 열어 그 다음 행동을 이어나갈려고 했다. 

물론 구석탱이에서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의 목을 날려버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쉬각-!

  “이런 멍청한 병신세끼! 나왔으면 제빨리 입막음 해야할거 아니야! 이 니미럴 염병할놈아!”

  살바토르는 피가 흐르는 장검을 바닥에 휘둘러 선혈을 털어냈다.

후두득 하는 소리와 함께 변소 바닥에 검붉은 점이 생겨난다.

뒤이어 두보아와 하퍼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하퍼는 몸을 잔뜩 낮추며 활에 화살을 먹이더니 변소 출입구 너머로 살짝 눈을 내밀어 문 밖의 분위기를 살폈다.

  “제대로 찾아온 거 같은데요?”

  두보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막을 올려야겠군?”

살바토르가 검을 들어올리며 싸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별바 / 06.09 20:57]

  "손병신, 존만이, 빵뎅이... 그래,그래 너도 있는거 알아 멍멍아. 일단 목표는 치키니가 숨긴 비밀을 찾는거다"

"그보다, 제 가방부터 찾아야해요"

하퍼가 대답했다. 자기도 있다고 살바토르의 손을 핧아대던 럭키가 갸웃갸웃 거린다. 하퍼는 럭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럭키가 기분 좋은듯 눈을 감았다. 쪼그려 앉아 경비병 시체를 뒤지던 크리스가 물었다.

"가방? 거기에 뭐가 있길래 그래?"

"굉장히 중요하고 위험한 것"

하퍼가 낮고 야릇한 목소리로 대꾸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나가보자"

"그래. 일단 열쇠꾸러미는 챙겼어"

"빵뎅이, 우선순위는 치키니가 뭔가를 숨기는지, 그거부터야. 대신 가방은 가는 길에 찾을 수 있으면 찾자고. 경비대 압수품 창고에 있을거 같은데 말이야"

일행은 문 밖으로 나선다. 

"잠시 뒷처리좀 하겠습니다."

두보아가 시체를 일행이 올라온 구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서 앙상한 잡초뿌리를 꺼내 피가 묻은 바닥에 던졌다. 쿼터스태프를 가볍게 두들기자, 잡초뿌리가 피를 빨아들이고는 급속하게 성장했다. 메말라버린 핏자국까지 순식간에 뒤덮었다. 두보아는 먼저나간 일행을 따라 나갔다. 

경비대 본부로 쓰이는 이 건물이 과거 홀슈타인 건설당시, 요새의 내성으로 쓰였기 때문에 구조는 굉장히 복잡했다. 익숙하지 않는 손님들이라면 쉽사리 길을 잃기 쉬웠다. 

전형적인 성채 방식대로, 복도가 있었다. 촘촘히 쌓아올린 돌벽과 아치형의 기둥이 들어서있고, 복도의 지붕은 건물 하중을 받기위해 돔형식으로 연결되어 건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부쪽 돌벽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비좁고 작은 창살없는 아치형 창문이 있었다.(그 덕분에 환풍은 그럭저럭 됬지만, 보온성을 꽤나 떨어졌다.) 창문이 없는 복도쪽 돌벽은 육중한 나무문이 일정거리마다 배치되어 있거나, 위아래로 오가는 계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복도를 걷다보면 급작스럽게 길이 꺾이거나, 막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한참 복잡한 미궁같은 건물을 걷던 두보아는 비좁은 창문 밖을 바라본다. 두보아가 보니, 일행이 있는 위치는 1층이었다. 창문 밖으로 바로 보이는 훈련장으로 쓰이는 듯한 공터와 한쪽으로는 무너져내린 감옥이 보였다.

그리고 탈출하던 날, 보였던 맹렬하게 불타오르던 성화(聖火)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성화를 불태우던 어두운 것도 사라졌다. 하지만 미묘하게 남은 불길함을 두보아는 느꼈다.

"존만이! 빨리 가자고"

살바토르는 문 열면서 재촉했다. 벽마다 닫혀있는 문을 열어보며, 일행은 탐색을 계속했다. 어느 방은 식료품이 가득 쌓여있었고, 어느 방은 경비대원의 개인의 방이었는지 생활의 흔적이 가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커다란 연회홀에 도착하기도 했다. 제법 사람들이 오가는 연회홀을 피해, 일행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일행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냈다. 다행인지 아직 다른 경비대원의 눈에 띄이지 않았다.  

일행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 계단의 끝에는 유난히 두툼한 쇠사슬과 주먹만한 커다란 잠열쇠들로 단단히 잠겨있는 철문이 있었다. 잠열쇠는 대단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구멍이 여러개인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조립식으로 이리저리 재껴야 구멍이 간신히 보이는 것도 있었다.  

"이거, 무기고 같군"

살바토르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크리스를 보고 말했다.

"손병신, 진짜, 진짜로 문 딸 수 있냐?"


  [반딧불 / 06.09 22:17]

  크리스는 방금 전, 살바토르가 죽인 병사의 몸에서 꺼낸 열쇠꾸러미를 들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주먹만한 크기의 자물쇠와 열쇠 꾸러미를 번갈아보며, 대략 적당한 열쇠를 찾아 뒤적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 · · 

  크리스가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더욱이 문만 덜렁 보이는 공간이라 유난히 그 찰랑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만 들렸다. 그러나 크리스는 그런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쇠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 · · 

  “이건가?”

  크리스가 열쇠 꾸러미 중 하나를 잡아 열쇠 꾸러미채로 든 채 자물쇠의 구멍에 열쇠를 들이밀었다.

  틱

  “어라 안들어가네”

  자물쇠의 구멍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막히기에 크리스는 다시 열쇠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 · · 

  그리고 크리스는 다시 열쇠를 하나 잡아 자물쇠의 구멍에 들이밀었다. 그런데 애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부드럽게 들어가지 않고 턱에 걸리듯이 끽끽대며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어라, 이것도 아닌가”

  찰랑 찰랑 찰랑 · · · 

  그리고 크리스는 다시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한번씩 열쇠꾸러미를 들어서 자물쇠의 구멍에 가까이 댔다가 다시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린다. 굉장히 집중하는 듯 크리스의 고개가 열쇠꾸러미를 향해 숙여진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동료들의 무언의 탄식이 들린다. 살바토르는 크리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팔짱을 낀 채 지겨운 듯이 앞꿈치로 땅을 톡톡 치고 있었고, 하퍼도 한숨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두보아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서 크리스의 등 뒤로 다가가 들고있는 열쇠꾸러미를 보았다.

  “으히익”

  두보아는 크리스가 들고 있는 열쇠꾸러미를 보며 기겁했다. 열쇠꾸러미는 족히 50개는 되어 보였다. 갑자기 크리스가 열쇠 꾸러미 중에 있는 열쇠 한 개를 잡아든 채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는 두보아에게 열쇠를 들이댔다.

  “두보아 이것봐. 이거 포크같이 생겼지?”

  두보아는 그런걸 찾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크리스의 해맑은 표정에 하고 싶던 말이 쏙 들어간 채 열쇠를 보니 정말로 열쇠의 끝 모양이 삼지창처럼 세 갈래로 뻗은 열쇠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말했다.

  “정말이네요? 끄트머리도 납작한게 정말 포크같아요.”

  “그치? 헤헤 이건 이쁘니까 기념으로 따로 빼서 챙겨놔야겠다.”

  크리스는 열쇠꾸러미 중간에 고리를 뺄 수 있는 부분을 열어서 포크를 닮은 열쇠만 쏙 빼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 열쇠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것인지 크리스가 신기했던 두보아는 크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사람 왜 이렇게 순수해보이지? 암살자 맞나?’

  그리고 이내 크리스는 다시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렸다. 두보아도 열쇠꾸러미 중에 들어갈만한 열쇠를 하나 골라 크리스에게 말했다.

  “이거 해보는게 어때요?”

  크리스는 두보아가 가르킨 열쇠를 잡아들고 자물쇠에 찔러넣어본다.

  스르륵

  “오 들어갔다”

  “정말이네요!”

  자물쇠의 구멍으로 열쇠가 부드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열쇠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열릴 줄 알았던 열쇠는..

  끽끽

  “어라 이 방향이 아닌가”

  크리스는 다시 시계방향으로 열쇠를 돌려봤지만, 자물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봐요..”

  두보아가 낙담하는 말을 했지만, 크리스는 열쇠를 뽑아내어 다시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렸다. 둘이서 쩔쩔매는 모습에 뒤에서 살바토르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며 빈정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 · · 

  “어유!!”

  크리스와 두보아는 살바토르의 눈치를 슬그머니보며 다시 열쇠꾸러미를 뒤적거렸다.

  찰랑 찰랑 찰랑 · · · 

  그리고 크리스가 열쇠를 하나 잡아 들고 자물쇠에 끼어넣어본다. 그러나 중간에 걸린채 열쇠가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아 애먹다가 두보아가 단숨에 잡아 빼고는 급하게 다른 열쇠를 잡아서 끼워넣으려 시도했다. 둘이 급해진 이유는 살바토르가 뿜어내는 기운 때문이었다. 

  “아....”

  두보아가 탄식을 내뱉는다. 열쇠가 도통 열리지 않아 답답한건 두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보아는 열쇠 꾸러미에서 눈이 확 들어오는 열쇠를 잡아들었다.

  “이거에요! 분명히 이거!”

  크리스는 두보아가 잡아 든 열쇠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집중한 탓에 크리스의 눈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크리스가 관찰하던 사이에 두보아는 잡아든 열쇠를 얼른 자물쇠에 꽂아넣었다.

  스르륵

  “두보아, 근데 그거 아까 넣은 열쇠 같은데...”

  “그래요?”

  두보아는 낙담하며 어깨를 늘어트렸고, 그사이 열쇠를 못여는 둘을 보며 답답했던 살바토르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어휴! 진짜 이 두 병신들 그냥”

  스릉

  살바토르가 검을 뽑아들며 양손검을 거꾸로 잡고 들어 올린 채, 크리스와 두보아의 좌측으로 나아가며 자물쇠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손잡이 끝 무게추로 단숨에 내려쳤다. 쇠사슬을 내려친 순간 쇠사슬 파편이 날아오기에 크리스와 두보아는 움츠렸다.

  콰앙!

  쇠사슬의 균형이 무너지며 한쪽으로 쇠사슬이 흘러내렸고, 두보아는 살바토르의 기세에 깜짝놀라 손에서 자물쇠를 놓치고 말았다.

  콰악 데구르르르...

  자물쇠가 무거운 탓에 바닥을 내려찍으며 얼마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그리고 살바토르는 양손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놓고는 호기롭게 문을 양손으로 잡고 밀어냈다.

  “좋아. 이제 간단하군. 가보자구!”

  끼이이익

  살바토르의 힘에 문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이 들어났다. 살바토르는 문의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채 양손을 어리춤에 올려놓고 의기양양하게 섰다. 그리고 일행들은 따라서 들어갔는 데, 두보아는 문득 기분이 이상해서 바닥에 굴러간 자물쇠를 보았다. 자물쇠 주변으로는 열쇠 꾸러미의 고리가 열린 채 열쇠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는데, 자물쇠를 떨어트리기 전에 열쇠를 꽂아놓고 떨어트린걸 기억하며 자물쇠에 꽂힌 열쇠를 보려 다가갔다.

  그리고 갑자기 두보아는 대뜸 괴성을 질렀다.

  “으아!!! 크리스!!”

  “응?”

  크리스가 살바토르 옆에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채 두보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두보아는 고개를 크리스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아까 꽂은 열쇠가 맞잖아요!!”

  바닥에 떨어져있는 자물쇠에 꽂힌 열쇠는 반쯤 돌아가있었다. 그걸 보며 두보아는 괴성을 질러댔지만, 크리스는 가볍게 무시한 채 살바토르와 먼저 문의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 크리스 정말!!”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둘이 같이 문의 안쪽으로 진입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여기 근데 아무것도 안보이는 데”

  그사이 하퍼가 문에서 가까운 우측의 벽 쪽에 다가가 바닥에 뭔가를 줍더니 딱딱거리며 무언가를 맞부딪쳤다. 그리고 이내 벽에 불이 붙으며 연이어서 벽쪽에 달라붙은 횟불에서 불이 들어왔다.

  “오오 역시 빵뎅이”

  “와! 불이다!”

  하퍼가 횟불에 불을 붙이니 문의 안쪽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신나서 좀더 안쪽으로 달려갔다. 문의 안쪽은 딱 양쪽 문 정도의 넓이에 살바토르 어깨에 크리스를 목마를 태운정도로 천장 높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살바토르와 크리스가 얼마 안가서 보니 아래로 이어지는 가파른 통로가 있었다.

  “여기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슬그머니 아래쪽을 보고 있었고, 두보아와 하퍼는 멀찌감치서 살바토르와 크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가볼까요?”

  두보아가 하퍼를 바라보며 말했고, 하퍼는 끄덕이며 유심히 통로의 구조를 관찰하며 걸어갔다. 

  끼익

  “응?”

  크리스가 발 밑에 뭔가가 걸리기에 발을 떼며 바라보았다. 바닥에 무언가 볼록 솓아올라있었고, 방금 밟았을 때 눌러지는 느낌이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꾸욱 발로 짓눌렀다.

  달칵

  이상한 소리에 살바토르가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어 이게 무슨소리지?”

  쿠웅 구르르르르르르르

  연이어서 천장 벽넘어에서 뭔가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크리스도 덩달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살바토르와 크리스의 뒤로 울려퍼진다.

  쿠웅!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놀라서 뒤를 바라보니 통로를 꽉 채우는 검은색 철구가 보인다. 검은색 철구는 함정이었고, 이 철구는 크리스와 살바토르 둘과 두보아 하퍼 이렇게 둘을 나눠버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 엿됐다!!!”

  “으아아악!!”

  구르르르르

  검은색 철구가 점점 굴러가며 살바토르와 크리스에게 향했다.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철구를 한번 쳐다보고 서로를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튀어!”

  “달려!”

  그렇게 둘은 가파른 길을 곧장 내달렸고, 검은색철구는 천천히 굴러가며 가파른 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결국 가파른 길로 굴러내려가며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죽을힘을 다해 뛰쳐내려갔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 · · · · 

  “으아아아아아아”

  둘을 괴성을 지르며 달려내려갔고, 그리고 이내 통로 앞으로 인영이 보인다. 점차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좀비 서너마리가 서서 뉘적뉘적거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비켜 이새끼들아!!!”

  살바토르와 크리스는 앞의 좀비보다 뒤에서 굴러내려오는 구가 더 공포스러웠기에, 좀비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내달렸다.


  [포르쉐 / 06.10 13:52]

  쿠당탕!

바보 둘이 열심히 철구를 굴려준 덕분에 함정은 더이상 없는 것 같다. 나는 두보아와 함께 방의 경사진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으아아아아아! 절로가!! 망할것들!"

철구가 내려간 곳에서 살바토르의 고함소리가 메아리치자 두보아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도와줘야하지 않을까요?"

"아니, 뭐 저사람들이 저런걸로 죽을리 없잖아요."

방끝에 두꺼운 나무 문으로 굳게 닫혀있는 출구가 보였다. 문이 잠겨있진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열자 시원한 바깥 공기가 새어나왔다.

"여깃네."

배낭보다 약간 작은 양가죽으로 만든 낡은 가방, 내가 찾던 가방이 틀림없었다. 가방을 찾고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무기고겸 여러가지 창고를 겸하는 곳인듯 한데, 수감자들한테 압수한 물품도 보관하고 있는 듯 했다. 난 가방을 열고 손바닥보다 약간 큰 주머니를 꺼내 끈을 풀고 검은 가루를 한움큼 쥐어서 확인했다. 두보아가 궁금한 눈초리로 그것을 보면서 물었다.

"이건 뭐죠? 검은 가루인데, 냄새가 좋진 않네요."

내가 한쪽 입꼬리를 슥 올리면서 두보아를 쳐다보자 그도 뭔가 심상치않음을 느꼈는지 더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주머니를 가방에 넣고 가방을 어깨에 교차해서 메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으르릉-

"왜그래?"

럭키가 물품이 가득한 방한 구석 앞에서 으르렁대고 있자 두보아가 다가가서 럭키를 진정시켰다. 개의 감각은 믿을 만 하기때문에 아마도 무언가 찾은 듯 한데, 나도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이곳과는 다른 이질적인 냄새, 습기가득한 이끼냄새와 시체썩는 냄새등 확실히 무언가 있었다.

"럭키가 아마도 무언가 찾은 것 같은데, 비밀장소 같은게 아닐까요?"

두보아도 럭키의 시선과 냄새를 감지한듯, 물품들을 치우고 벽으로 다가가서 쿼터스태프로 어느 지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 근처인데요?"

그리고 두보아가 쿼터스태프로 벽을 툭툭 치자 뒤에 공간이 있는 듯 텅빈 울림이 들렸다.

"잠깐, 여기가..."

드륵-

벽면에 무릎정도 되는 위치에서 약간 튀어나온 돌이 보이자 두보아가 쿼터스태프로 지긋이 누렀다. 그러자 벽면이 회전하면서 사람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통로가 열렸다. 조금전 맡은 냄새들이 더욱더 확실하게 나기 시작했다.

"내려가야할까요?"

두보아가 경계하며 물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살바토르와 크리스도 조금 전에 다시 지하로 내려갔고, 아마도 이런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은 치키니와 경비대가 숨기는 중요한 곳일테니 내려가는 것이 났지 않을까? 난 두보아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역시 내려가야겠죠? 럭키야 가자!"

럭키가 조용히 앞장서고 우리가 뒤따라갔다.

둥글게 아치형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횃불이 군데군데 밝혀져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통로이기 때문에 횃불이 밝혀져 있겠지.

통로를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다보니 냄새가 점점 짙어진다. 그리고 익숙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우렁찬 고함소리는 살바토르였다.

"치키니! 너 이새끼 뭔 작당을 꾸미는 거냐?!"


  [별바 / 06.10 15:03]

   


  [홍차매니아 / 06.12 12:20]

   “아니 씨부럴! 웬 좀비떼야!”

살바토르는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무슨 잡초치는 것도 아니고 한번 검을 휘저을때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어기적 거리는 인영들이 서너씩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다른 좀비들도 많았는데, 살바토르는 이를 전부 상대해 가며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쿠쿠쿠쿠쿠-!

“염병할 저 쇠덩이 좀 어떻게 해봐!”

살바토르와 크리스를 노리는 듯 쇄도하며 굴러가는 저 묵빛 구체가 살바토르의 칼날을 피한 좀비들을 짓이겨서 처리하고 있었다.

눈앞에 어슬렁 거리는 좀비들은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씨부럴! 니미! 젠장!”

“이거 언제까지 달려야 되는거야!”

크리스는 그의 약간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생존을 향한 본능덕택에 발걸음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었다.

어서 이 악몽이 끝나기를 바랄뿐이다.

“어? 길이 끊켰다!”

크리스가 외쳤다.

정신없이 앞길을 베어나가던 살바토르는 다가오는 좀비 하나를 그대로 손을 밀처내더니 크리스가 던진 말에 앞을 주시했다.

그런데 길이 끊키기 바로 앞에 천장에 녹은 촛농으로 뒤덮인 낡은 나무 샹제리가 보였다.

“손병신! 저기....”

살바토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크리스는 제빨리 그의 위로 뛰어 올라 어깨와 머리를 각각 밟아 오르며 도움닫기 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이 망할 세끼가!”

발작적으로 욕설을 내뱉은 살바토르 역시 뛰어올랐다.

타고난 각력덕택에 힘차게 뛰어오른 그의 아래로 의식 없는 좀비들이 손을 뻗는다.

이윽고 촛대에 크리스가 매달렸다.

그리고 거기에 살바토르도 매달렸다.

아무래도 덩치가 있고 몸에 걸친 갑옷에 무기며, 거기다 촛대가 매달린 높이도 있다보니 힘찬 도약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의 다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이 세꺄! 빨리 안떨어져?”

“너 같으면 떨어지겠냐 병신아?”

말을 주고 받는 사이 사람이 매달린 충격으로 촛대가 진자를 그리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거대한 구체는 굉음을 내며 그들 아래로 지나가더니 꺼진 땅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거대한 구체가 지나간 자리엔 피와 썩은 살이 다져진 길이 펼쳐져 있었다.

무저갱 같은 구멍속 너머에선 그 후로도 한두차례 굉음이 들려왔다.

“대충 모면한거 같은데?”

크리스가 말했다.

“아마도.”

“그럼 좀 떨어져 이 오크놈아! 팔이 끊어질거 같단 말이야!”

그때 뚜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매달려 있던 촛대 일부분이 떨어졌다.

우지끈.

“으악!”

쿵소리를 내며 먼저 살바토르가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그 위로 크리스가 떨어졌다.

자신의 위로 떨어진 크리스를 받은 살바토르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더니 그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아오씨! 뒤지는 줄 알았네.”

크리스가 뒤척거리며 일어났다.

“이봐! 사람을 그렇게 집어 던지냐? 엉?”

“흥! 그러기에 누가 내머리를 디딤돌로 쓰랬냐?”

그때 아직 그들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고 있던 촛대를 천장에 메달아 놓고 있는 밧줄이 한두가닥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찌직 거리는 소리에 두 남자가 머리 위로 올려다 보았다.

낡은 샹제리가 그들의 눈에 완전히 들어왔을때는 너무 늦은뒤였다.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굴렸다.

그런데 그 둘이 몸을 날린 옆쪽 벽면이 갑자기 회전하더니 둘을 그 너머로 넘겨버렸다.

“으아아악!”

“또 뭐야!!”

둘은 한데 뒤엉켜 굴러떨어졌다.

대체 왜 이곳에 이런게 있는지는 명확한바 없으나 그 둘은 비탈진 곳을 따라 뒹굴뒹굴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평평한 바닥을 만났다.

평지에 닿은 두 남자는 두어번 더 뒹굴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엎어졌다.

온몸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엎어진 그 상태로 잠시 동안 둘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둘 가운데 먼저 몸을 일으켜 세운 쪽은 살바토르였다.

“...염병.”

어기적 거리며 몸을 일으킨 살바토르는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분실한 물건이 없다 확인했다.

등에 메달린 양손검은 무사하다.

허리춤의 장검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

벨트와 검집에 흠집이 생긴건 마음이 좀 아프긴 한데, 어쩔수 없지.

그 외에 단검도 무사하고 유사시에 쓸 치료용 약제 등 모든 장비가 무사했다.

“어디. 손병신은 괜찮나?”

뒤이어 크리스를 살펴보려던 살바토르는 어둠속 저편에서 빛이 세어나오는걸 볼수 있었다.

기절한 동료를 뒤로 한체 살바토르는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옴겼다.

멀지는 않았다.

몇걸음 채 옴기지도 않았는데, 출구가 나오더니 그 너머로 보니 대저택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홀 공동이 나타났다.

“뭐야.”

천장에 잔뜩 드리어진 종유석은 이 동굴의 만들어진 세월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많았다.

거대한 공동 곳곳에는 햇불이 걸려있었다.

밟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굴내 여러 기물과 구조를 파악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니미럴 대체 여긴 또 뭐야.”

나지막하게 욕지꺼리를 내뱉은 살바토르는 동굴 내부로 발걸음을 옴겼다.

대체 여기가 정확히 뭐하는데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분명한건 그가 이곳에 온 첫 손님은 아니었다.

벽면이란 벽면에는 일일이 다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좋지 않은 문구와 기하학적인 도식과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다 코끝을 마비시킬정도로 썩은내가 진동했다.

벽면에 걸친 햇불을 하나 빼어 들어 그것들은 비추어 보던 살바토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이런 망할 곳은 대체...! 응? 저건 또 뭐야.”

자세히 살펴보니 동굴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골격의 무언가가 웅크리듯 둘러있었다.

마치 배의 용골을 연상케 하는 그것은 살바토르로 하여금 호기심과 강한 신비로움을 들게 만들었다.

“무슨 용의 무덤인가?”

드래곤 슬레이어 전설이라면 살바토르도 몇 번인가 들어봤다.

어렷을적부터 전사들의 세계를 동경해 강하게 체력을 단련하고 각종 무술을 익히며 군사학을 공부하며 신화와 전설관련 설화집을 즐겨 읽던 그는 용을 살해한 뛰어난 전사들의 일화를 잘 알고 있었다.

홀슈타인 인근에서 용을 사냥했던 기록이라면...

“앵? 이건 또 뭐야. 치키니. 그놈인가?”

거대한 골격의 산 앞에 누군가를 발견한 살바토르는 눈을 가늘게 떳다.

그리고 이내 그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행위도.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살바토르는 크게 분노하며 외쳤다.

"치키니! 너 이새끼 뭔 작당을 꾸미는 거냐?!"


  [별바 / 06.12 23:32]

  치키니의 광소(狂笑)가 울려퍼진다. 허파 밑바닥에서 퍼올리는 차디찬 비웃음. 광기가 질퍽거리는 웃음은 사방을 메운다. 

그리고 지하가 또다시 떨린다. 흙먼지가 떨어질 정도의 진동. 

럭키가 겁먹고 꼬리를 말고는 낑낑거린다. 두보아는 지하를 울리는 진동에 균형을 잃고 통로 벽을 붙잡고 간신히 서있었다.

"맙소사,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두보아는 저절로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순례자'인 두보아에게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무척이나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사방을 짓누르고 흘러가는 거대한 힘에 두보아는 맥을 못출 정도였다. 두보아의 쿼터스태프에 피어오른 해바라기 호롱불은 자꾸만 꺼질려고 했다.

하하하하하!

치키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멤돌았다.

"정신차려!"

하퍼의 일갈에 두보아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두보아는 자신의 코를 소매로 훔쳤다. 피가 묻어났다. 럭키가 겁에 질린 소리로 컹컹거렸다. 통로의 끝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굵직한 어둠덩어리. 줄기가 얽히고 얽힌 덩굴과 같은 어둠덩어리와 그 속에서 푸른 불꽃을 피우면서 타오르는 망자들이 파도를 이루며 역류하고 있다. 체온을 뺏는 서늘함이 순식간에 통로를 가득 메웠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분노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통로를 질주한다. 망자들은 썩어 문들어졌지만, 그들의 돌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 놈이 제 발에 걸려 쓰려져도, 망자들은 넘어진 놈을 짓밣으며 달린다.

두보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서늘한 공기가 폐를 얼어붙게 만들 것만 같았다.

"하퍼, 뒤를 봐주십시요!"

두보아는 크게 소리치고는 로브 주머니에서 작은 겨우살이 토막을 꺼내 망령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두보아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하고 기억하며 또한 느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것. 전승되고 전파되며 기록되는 것들. 두보아는 숨을 크게 들이 내셨다. 자신의 반쪽을 훔쳐간 그녀. 카나리아의 웃음소리가 자꾸만 떠오른다. 두보아의 감정 밑바닥서 희망이 솓아오른다. 

"럭키! 짖어!"

두보아의 외침에 두려움을 떨친 럭키가 크게 짖어댔다. 일정한 박자, 일정한 크기. 

개의 짖는 소리는 삿된 것을 쫒아낸다. 라는 신비학적 요소와 강한 인내심을 상징하는 겨우살이. 야만인들의 북구 신화에서 겨우살이가 빛의 왕자를 죽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던가. 두보아는 영리하지 못한 자신의 머리에 몇날 몇일로 붙어 잔소리를 퍼붓던 작은 입술을 생각했다. 두보아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일어서라!"

두보아는 외쳤다. 두보아가 던져진 겨우살이 토막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겨우살이 토막에서 새싹이 틔이더니, 순식간에 자라난다. 그리고 통로 바닥에 떨어지자 마자, 시린 녹색 빛을 강렬하게 발한다. 시력을 빼앗는 빛이 사그라들자, 기적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겨우살이가 모든 망자를 꿰뚫었다. 망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단단히 꿰뚫린 망자들은 질주를 멈추고는 제자리서 헐떡거린다. 망자들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두보아는 품에서 약초 권렬을 꺼내 입에 물었다. 두보아의 호흡은 헐떡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코에서 코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입술은 어느새 갈라져버렸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무척이나 졸렸다. 럭키가 차가운 혓바닥으로 두보아의 손을 핥았다. 두보아는 털털하게 럭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딧불 / 06.13 19:26]

  " 우우웅 · · · 어 이애기 뭐언 자악드아아앙으으을 꾸우우우미이이이느은 거어어냐아아아“

  크리스가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말소리가 늘어지듯이 들린다. 크리스는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뭔가 차디차고 위화감이 느껴져서, 누워있는 채로 땅을 딪고 상체만 들어올린 채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짧은 복도 앞으로 횟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주변 벽면엔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붉은 문양들이 있었다. 

  우두둑

  크리스가 일어서면서 관절들이 비명을 지른다. 살바토르와 같이 굴러떨어진 탓인지 몸이 쑤시고 뻐근하다.

  삐이-

  두통과 함께 머릿 속을 시끄럽게 하는 소리가 머리를 짓누른다. 그 고통에 크리스는 머리에 오른손을 올렸다. 그리고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왼손으로 벽면을 잡고 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짧은 복도를 지나오니 흐릿하지만 넓은 동굴인 듯한 모습이 보였고, 살바토르의 모습으로 보이는 인영과 동굴 중앙에 뭔가 거대한 인영이 보였다. 크리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벽에 기댄 채 눈을 한번 비비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리고 동시에 크리스의 동공이 커진다.

  크리스의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크리스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동굴 곳곳에 매달린 횃불과 벽면 곳곳에 새겨진 검붉은 색으로 칠해진 기하학적인 음각들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로 보이는 뼈가 보였다. 그리고 뼈의 주변으로는 많은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중앙의 드래곤 머리 뼈를 자세히 보니 고개가 좌측을 향해 있었고, 드래곤 머리 뼈 앞에서 치키니가 서 있었는데, 치키니를 중심으로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흑마법사들이 호를 그리며 줄을 서 있었고, 치키니의 옆으로 검은 구체가 떠있었다. 그 구체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언데드 몬스터의 수가 밀집해 있는 것을 보니 그 구체에서 망자들이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망자들은 드래곤의 머리가 바라보는 방향의 통로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정면에서 누군가의 호통이 들린다.

  “아니 씨, 저 개새끼가?”

  이 동굴의 사태에 분노가 차오른 살바토르가 치키니를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치키니는 얼굴에 비열한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치키니 주변의 널부러진 시체 사이에 있는 아이들의 시체에 크리스의 시선이 끌렸다.

  찌잉

  “읍... 우웨엑”

  아이들의 시체를 보자마자 전에 봤던 어떤 여자아이의 모습이 멋대로 떠오르며 크리스를 울렁거리게 했고, 크리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냈다. 이상한 소리에 살바토르는 뒤에 있는 크리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이 손병신, 혼자 뭘 쳐먹었길래 토하냐”

  크리스는 머리가 띵하고 속이 너무 불편해서 살바토르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설마 너 저기 시체보고 토한거냐? 암살자 주제에 비위가 약하네”

  시체 따위에 비위가 상해서 토한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는 속이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속을 게워내는 고통과 동시에 눈에서 눈물이 같이 나오며 눈앞이 잠시 흐려졌는데, 크리스는 팔 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눈을 뜬 순간 바닥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스텀프 해머같이 생긴 단순한 직사각형의 각진 모양의 피 묻은 망치가 갑자기 바닥에 보였다. 크리스는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팔등으로 눈을 비볐다.

  “아니 웬 망치가..”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바닥에 망치는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몇 번이고 눈을 다시 뜨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좀 더 앞을 보니 방금 전에 본 망치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중앙에 밀집해있던 망자들의 시선이 살바토르로 향하는 것이 보인다. 

  “이 씨부럴 좀비 떼 다 죽여버리겠어”

  살바토르가 허리춤에 매달린 양손검을 뽑아내 든 뒤 맹렬하게 튀어 나갔다. 살바토르는 느릿느릿한 망자들을 단숨에 여럿을 썰어버렸고, 그로 인해 망자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그 사이 크리스는 다시 망치를 향해 나아갔다. 살바토르가 망자들의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에, 크리스는 주변 상황을 신경쓰지 않고 어기적 걸어가다가 망치의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인 채 다시 망치를 살펴본다. 투박한 직사각형의 스텀프 망치가 뚜렷하게 있었고, 망치엔 피가 선명하게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가 손을 내밀며 망치를 잡으려 했지만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망치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크리스는 묘한 심정에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살바토르의 뒷쪽으로 망치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는 다시 망치를 향해 어기적 걸어갔다. 망치를 향해가는 크리스의 동공이 서서히 흐려진다. 주변이 아비규환인데도 불구하고 크리스의 의식은 오직 망치에게만 향해갔다. 망자들을 썰어가던 살바토르는 전보다 더 많아진 망자의 수에 당황하며 뒷걸음질쳤고, 동시에 크리스와 부딪쳤는데, 크리스의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바닥에 시선이 집중된 채 앞으로 어기적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앞엔 망자들이 쏟아져 오고 있었다.

  “하압! 하압! 야이! 하압! 병신아! 하압! 어디가!”

  살바토르가 급히 튀어나가 크리스의 앞에 있는 망자를 쓰러트리며 크리스의 안전을 확보했고, 무언가에 홀린듯한 크리스의 모습은 살바토르의 말을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대뜸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손을 뻗었다. 그 사이 망자 한 마리가 다시 크리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살바토르는 그걸 놓치지 않고, 크리스의 겨드랑이를 잡고 당겨내어 달려드는 망자로부터 크리스를 지켜냈다. 그리고 잡아 든 크리스를 그대로 뒤로 밀쳐내어 던진 뒤, 다시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 망자들을 베어나갔다. 살바토르가 좀비들을 베어나가면서 틈틈이 크리스의 모습을 힐끔 쳐다봤지만, 아무리 봐도 크리스의 모습이 이상했다. 그리고 크리스의 동공이 풀린 채 다시 좀비같이 앞으로 걸어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살바토르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저 병신까지 나를 애먹이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망자들의 공세에 살바토르는 뒤로 물러서면서도 망자들을 베어 나갔고, 어느새 다시 크리스가 살바토르의 뒤에 와있었다. 그리고 그와중에 크리스가 읍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망... 치...”

  짜증이 치민 살바토르는 뒤돌아 크리스의 멱살을 잡아 당기며 고개를 크리스한테 들이밀었다.

  “이 병신아! 지금은 병신짓 할 때가 아니라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이런 제기랄!”

  크리스의 시선에서 살바토르의 어깨 옆 망자들의 사이를 지나 치키니의 뒤에 있는 드래곤 뼈에 망치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비춰진다. 그러나 크리스 본인도 왜 망치에 시선이 홀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갑자기 치키니가 양 손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세찬 바람과 동시에 어둠의 구체에서 악령들이 쏟아져 나왔고, 악령들은 동굴 안을 헤집었다. 치키니가 일으킨 풍압과 악령들에 살바토르는 크리스를 내려놓고 검을 왼 손에 든 채 오른팔을 들어 바람과 달려드는 악령을 막았다. 그사이 크리스는 다시 일어나 좀비같이 어기적 망자들의 품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었고, 살바토르는 하는 수 없이 크리스의 멱살을 잡아 들고는 들어왔던 통로로 내달렸다. 그런데 살바토르가 통로로 고개를 돌린 순간 악령 한 마리가 살바토르의 등을 뚫고 들어가 가슴팍으로 튀어나오며 살바토르의 몸을 관통했다. 이로인해 살바토르는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끼며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내 동굴을 헤집고 다니던 악령들이 몇 마리씩 짝을 지어 뭉치더니 검은 색 구체가 되어 떠 있다가 부풀어 오르며 하반신이 없는 사람의 형태로 변했고, 덩치는 살바토르 둘을 합쳐놓은 듯한 크기였으며, 허리쯤부터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몸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인영의 모습은 어깨와 팔이 두터운 근육의 형태로 우람해 보이는 모습이 가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악령의 눈에서는 붉은 색 안광이 빛나고 있었고, 그 시선은 마치 살바토르를 바라보는 듯했다. 살바토르는 네 다섯마리 정도 떠있는 거대한 악령의 모습에 공포감을 느꼈다. 점차 다가오는 망자들까지 위압감에 절망감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살바토르 앞으로 크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살바토르의 시선이 크리스의 얼굴로 향했고, 크리스는 여전이 멍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크리스의 입에서 읍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망... 치...”

  살바토르는 그 모습에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진짜 이 병신” 


  [포르쉐 / 06.14 20:43]

  난 두보아가 탈진상태였기 때문에 조용해진 계단을 먼저 내려가보았다. 조금 더 내려갔더니 바깥이 보이는 철창문이 잠기지 않은 채 닫겨 있었다. 두보아가 있는 계단 위쪽으로 크게 소리쳤다.

"출구에요! 몸 추스르고 내려와요."

철창에 다다르자 바깥에 희안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체에는 수많은 망자들이 한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는데, 그곳을 바라보니 크리스가 넋이 나간듯 차원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살바토르가 그의 곁에서 달려드는 망자를 베어나가면서 크리스에게 뭐라 욕을 퍼붓고 있었다.

철창을 열고 들어가자 치키니와 흑마법사들이 드래곤이라 생각되는 거대한 머리뼈 앞에 서있었고, 주변에 수많은 시체들이 끔찍하게 서있었다. 흑마법사 하나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 하자 망자들 일부가 방향을 바꿔 나에게 돌진해왔다. 난 활시위를 당기면서 살바토르에게 소리쳤다.

"살바토르! 크리스! 무슨일이에요!?"

살바토르가 나를 바라봤지만 대답할 여유가 없이 망자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뒤에서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려는 크리스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었다. 살바토르가 양손검을 대각선으로 긋자 망자둘이 한꺼번에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반대쪽에 달려드는 망자에게 발길질을 하고 정면에 달려든 망자에게 양손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뒤에 같이 달려든 망자하나가 검에 같이 꽂히는 바람에 양손검이 제때 빠지지 않자 살바토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았다.

"끝도 없겠는데! 빵뎅이! 존만이랑 같이 지원해줘!"

그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외친 다음 장검을 뽑아 차례대로 호쾌한 원을 그리며 망자 둘을 베었다. 뒤쪽에 크리스에게 달려드는 망자들을 어깨로 밀쳐 나가떨어지게 한 다음 장검으로 왼쪽에 달려든 망자의 허리를 찔러 들어올린 후 냅다 던지면서 주변에 망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틈이 생기자, 양손검을 뽑아올리고 한바퀴 휘둘러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살바토르가 이쪽을 바라보고 외쳤다.

"이것들 그쪽으로도 간다!"

난 정신을 차리고 어느새 서른걸음정도 앞까지 달려들고 있던 망자를 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망자의 무릎에 화살을 꽂아넣었다. 

쿠당탕!

나뒹구는 망자때문에 뒤에서 달려오던 망자 대여섯명이 같이 넘어지면서 돌진속도를 늦췄다. 그동안 재빨리 작은 석궁에 볼트를 장전한 다음 허리춤에 걸고 화살통에 화살 3발을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다섯걸음 정도까지 근접해오는 망자 둘에게 화살을 발사했다.

"크엑!"

허리와 가슴이 뚫린 망자 둘이 주춤하면서 뒤에서 달려오던 망자들의 속도를 늦추었다. 화살통을 슥 어루만지고 화살을 뽑아 왼쪽에서 달려드는 망자의 머리를 쏜다음 오른쪽에서 네발로 달려오는 망자를 향해 허리춤에 있던 석궁을 빼내어 쏘았다. 

"꽤액!"

망자가 목에 볼트가 관통된채 나뒹굴었다. 

난 다급하게 석궁을 바닥에 팽겨치고 정면에 달려드는 망자 셋에게 화살을 두발 갈겼다. 그리고 남은 망자 하나가 코앞까지 달려들자 활을 길게 빼서 잡은 후 망자의 머리를 후려쳐 나뒹굴게 만들었다. 

스릉-

나머지 손으로 등뒤에 메고 있던 한손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코앞까지 달려오는 망자가 셋, 그 뒤에 수십마리의 망자들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한손검을 한바퀴 돌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왼쪽에서 망자의 팔이 날아오는 걸 느껴 허리를 숙여 피한 후 정면에서 달려드는 망자의 턱을 활로 후려쳤다. 그리고 옆에서 뛰어드는 망자의 가슴에 그대로 칼이 꽂히게 한 다음 어깨로 밀어 쓰러트렸다. 처음에 팔을 휘두르던 망자가 뒤에서 달려들자 재빨리 왼쪽으로 굴렀다. 망자가 이번에도 헛손질을 하며 자세가 무너져 휘청하자 그대로 한손검을 잡고 머리를 베었다. 

"아흑!"

반대쪽에서 미처보지못한 망령이 달려들어 손톱을 내 허리에 박아넣었다. 재빨리 활로 그 망자의 머리를 후려갈겨 떼어냈지만 손톱이 빠지자 피가 주륵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정도 상처야 금방 회복되니 개의치 않았지만 통증은 어쩔 수 없는지 잠깐 휘청했다.

퍽!

망자하나가 나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내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빵뎅이!"

멀리서 살바토르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하퍼! 조금만 참아요! 럭키, 가!"

컹!

몸을 일으키면서 철창쪽을 바라보니 두보아가 다급하게 나무 씨앗을 던지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럭키도 맹렬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반가웠다.

"케엑!"

망자하나가 달려들자 활을 집어던져 저지했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한손검을 주워든 다음 망자 둘의 가슴과 허벅지를 차례로 그었다. 

그 순간 어깨에 무엇인가 메달렸다.

"으윽..."

망자가 왼쪽 어깨를 세게 물자 고통이 전해지면서 한쪽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 했다. 간신히 버티면서 놈의 머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고통이 하나 둘 늘어가자 점점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어쩔 수 없나?'

코앞에 망자를 무심하게 베어넘기면서 시간이 느려지는 것 처럼 주변이 천천히 가는 듯 했다. 고민이 더해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달려들던 망자들이 무언가에 얻어 맞고 나뒹굴기 시작했다. 마침내 겨우살이 줄기가 망자들을 덮치기 시작하고, 럭키가 망자 하나의 목을 물어 쓰러트린 뒤 나에게 달려왔다. 난 안도하며 럭키를 보고 웃었다.


  [홍차매니아 / 06.15 20:08]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파악이 안된다.

이놈의 치키니는 아이들을 죽이며 대체 뭔 수작들이고 혼떨어진 망자들이 왜 경비대 지하를 설치고 다니며, 그리고 저 망령들은 대체 무엇이며, 그리고...

“이 병신세꺄! 어딜 또 쳐가는거야!”

급박한 와중에 자기 동료가 넋이 나간 것을 보노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오! 이 병신세끼! 손병신 발병신을 넘어 이제 정신까지 나갔냐?”

분노어린 목소리를 토해내는 살바토르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크리스의 뒷덜미를 잡았다.

강하게 끌어당겨 뒤로 내팽겨 치더니 주변에서 달려드는 망자들을 마주보며 검을 뒤로 늘여트려 잡았다.

그리고 사선으로 비스듬히 널찍하게 검을 휘둘렀다.

장대한 강철의 회오리가 휘몰아칠때마다 사지가 잘리는 시체가 늘어나 바닥을 피와 살점 그리고 내장으로 수놓는다.

한번 검을 휘두를때마다 세네명씩 쓸려나가며 운신할수 있는 공간이 크게 만들어지니 무슨 청소를 하는 기분이다.

제법 정리를 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사각을 파고 들며 뒤쪽 측면에서 망자 하나가 입을 벌리며 달려든다.

무언가 있다고 느낀 살바토르는 앞으로 크게 발을 디디며 뒤돌아 보며 칼을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검신에 걸리적 거리는 느낌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 자리엔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비스듬히 상체가 잘려나가 허리에 매달려 피와 창자를 쏟아내고 있는 망자가 있었다.

살바토르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발로 걷어차 치웠다.

“이런 니미럴.”

어기적 거리며 일어서는 크리스를 향해 살바토르가 걸어갔다.

“이런 짐 덩어리 갖고는 싸움을 할 수 없지.”

살바토르는 혀를 차면서 양손검을 가죽 도장구에 걸쳐서 등에 찬 다음 버클을 잠갔다.

다시 넋잃은 행진을 하려는 크리스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등 뒤로 돌아가 그의 목을 팔뚝으로 감싸앉아 졸랐다.

목을 압박하는 레슬링 기술로 살바토르는 크리스의 경동맥을 살짝 눌렀다.

자칫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험이 많아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잠시 바둥대던 크리스가 축 처지자마자 어깨에 가볍게 어깨에 들처맺다.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합류해서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게 나으리라.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고 있던 차에 살바토르는 갑자기 기척을 느끼더니 크리스를 내팽개쳐 치더니 앞으로 몸을 날려 굴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뒤돌아 봄과 동시에 장검을 꺼내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다.

뒤돌아본 그곳엔 지금까지 지켜보고만 있던 치키니가 마찬가지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고 있었다.

챙!

“이놈의 개세...”

검과 검이 부딪친다.

살바토르는 욕지꺼리와 함께 분노를 토해내려 했다.

그러나 입에서 비집고 나오는 비속어를 채 완성도 하기 전에 치키니가 발을 바꾸며 살바토르의 바깥쪽 측면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며 검을 놀렸다.

치키니의 검은 뱀처럼 살바토르의 검신을 타고 넘어오며 그의 목을 교묘하게 노리며 들어왔다.

살바토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움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도 역시 능숙한 검객이다.

앞선 발을 뒤로 물리며 치키니와 몸을 마주한다. 

동시에 검을 끌어 당겨 몸을 보호한다.

다시 검신대 검신이 마주한 상황이 다시 만들어졌다.

살바토르는 이대로 힘으로 찍어누르며 검을 찔러넣을려 했다.

그러나 치키니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주 잠깐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더니 살바토르에 맞서 검을 밀어 붙여 검대 검으로 엮어 들어갔다.

검신과 길죽한 손보호대로 살바토르의 검을 봉쇄한 치키니는 왼손을 뻗어 검신과 검신이 엮인 부분을 잡아 챘다.

그런 다음 발을 때며 춤을 추듯 빙글 몸을 돌리며 살바토르와 거리를 벌리며 물러서니 살바토르의 손에서 어느세 칼자루가 슥 하고 빠져나왔다.

살바토르의 표정에서 한층 더 짙은 당혹감이 베어나온다.

‘...빌어먹을 디스암!(disarm)’

평상시 자신보다 작은 덩치에 상대를 얕보고 있었는데, 적어도 검술에선 한경지 위라는 사실을 확인한 살바토르는 이를 들어내며 상대를 마주 보았다.

이러한 반면 치키니는 다소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으나 무장봉쇄로 빼앗은 살바토르의 장검까지 양손에 검 한자루씩 쥐며 살바토르를 놀리는 듯 한쪽 검을 손아귀에서 돌렸다.

“너 같이 힘과 덩치만 앞세우는 머저리는 리투아니아 숲에서 많이 상대해봤다. 오크, 야만인 부족장, 셀수도 없는 온갖 마물들. 그리고 그것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서 내 성전을 기념하는 전리품이 됬지.”

“그럼 이제 네놈이 전리품이 될 차례군.”

치키니의 말에 받아친 살바토르는 왼쪽 어깨의 버클을 끌어 내리더니 양손검을 꺼내들었다.

“이야압!”

장대한 검신이 춤을 춘다.

위에서 내려쳐지는 양손검에 옆으로 몸을 피하며 치키니는 한쪽 손에 들린 검을 자루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검신을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 상단을 보호했다.

그럼과 동시에 다른쪽 검을 찔러 넣을려 했다.

챙!

금속성과 함께 치키니는 방어를 위해 내세운 장검을 놓쳤다.

게다가 양손검의 길이도 제법 길어서 공격을 위해 내세운 다른 쪽 검은 살바토르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

살바토르의 양손검이 빙글 돌더니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검격이 가해진다.

치키니는 자신에게 남은 장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쥔다음 오히려 살바토르 몸 안쪽으로 달려들며 손 보호대를 양손검의 아래쪽에 가져다 데었다.

파각!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치키니는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재차 자세를 잡은 치키니는 손잡이를 허리춤 한쪽에 가까이 당기고 검신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세워 몸을 보호했다.

검신 끝는 그의 눈높이에서 비스듬히 살바토르를 향해 있었다.

뒤이은 검격에 대비하는 다소 방어적인 자세였다.

파각!

재차 충격이 가해졌다.

동시에 치키니의 자세가 풀렸다.

치키니는 망치로 후려맞은 듯한 충격에 손을 털며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잡았다.

살바토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치키니는 일단 수세로 몰리자 도저히 싸움을 풀어나갈 수 가 없었다.

“크하하하! 아까의 그 염병할 기세는 어디로 팔아먹었냐. 이 망할놈아!”

“큭!”

살바토르가 힘이 무지막지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을 초월했다.

순찰대 사령관을 지내며 살바토르도 역시 오크와 야만족들을 도륙했다는 명성은 전혀 허황된게 아니었다.

게다가 단순히 힘만 앞세운게 아니라 검술도 상당했고, 감각도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살바토르 말대로 전리품이 될 사람은 치키니 본인이 될지도 몰랐다.

결국 검을 놓친다.

챙!

“이제 엄마한테 좀 처맞아야지. 치키니 이 염병할새끼야?”


  [별바 / 06.16 16:00]

  망자가 불타오른다. 어둠덩어리가 끓어오른다!

 일행이 쓰러드린 망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불길한 어둠에 끌려간다. 치키니가 살바토르와 싸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제단에는, 로브를 입은 흑법사 한 명이 대신 의식을 진행한다.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를 목줄로 채운채로 거칠게 끌고와 제단에 올려놓는다. 날카로운 단검으로 난도질 한다. 또다시 한명의 생명이 사그라들고, 어둠덩어리가 더욱 크게 박동한다.

 그리고 어둠덩어리에서 망자가 다시금 일어선다.

생명의 존엄을 모독받은 이들은 일행을 향해 한발자국씩 전진해온다. 피로와 두려움을 모르는 이들의 전진은 서서히 일행을 갉아먹는다.  

 동시에 일행의 무기로 박살난 망자들과, 제단의 희생자들의 산산조각난 육신이 어둠덩어리에 삼켜진다. 원통한 이들의 귀곡성과 음울한 흑법사들의 주문을 외우는 소리에 거대한 청동왕관을 쓴 해골이 어둠덩어리에서 몸을 꺼내, 세상에 나타났다. 청동왕관을 쓴 해골은 안구가 위치할 뚫린 구멍이 없는 거대한 해골이었다. 청동왕관을 쓴 해골이 일어서자, 어둠덩어리가 뼈와 인간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는 난쟁이 해골들과 뼈로 된 거대한 기타를 치는 거대한 오우거 해골 하나가 뱉어졌다. 악기를 다루는 해골들은 청동왕관을 쓴 해골의 주위를 돌면서 기쁨의 춤을 췄다. 해골악단은 낄낄 거리면서 자리를 잡았다.  

 "어리석은 자들아! 이제 종말을 고할 때이다!"

 거대한 울림이 청동왕관을 쓴 해골로 부터 뿜어져나왔다. 청동왕관을 쓴 해골은 어둠덩어리를 집어 삼켰다. 거대한 갈비뼈 사이로 어둠덩어리가 박동한다. 그리고 난쟁이 해골들이 북을 일제히 쳐댔다. 오우거 해골이 웃어대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북의 울림. 날카롭고 질주하는 기타소리!

 망자들이 괴기한 웃음과 비명소리가 해골악단의 연주를 타고 울려퍼진다!

 청동왕관을 쓴 해골이 바닥에 주저 앉는다. 어둠덩어리가 음악에 맞춰 더욱 더 빠르게 박동한다. 박살난 망자들과 희생자들의 육신들이 청동왕관을 쓴 해골에게 빨려들어가듯 휩쓸려간다. 동시에 또다시 멀쩡한 망자들이 어둠덩어리서 뱉어진다.  

 박살난 망자들과 희생자들의 육신이 청동왕관을 쓴 해골의 뼈 사이로 서서히 채워진다. 그들은 절규하며 비통하며 울부짖으면서 영원토록 박제가 되버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둠덩어리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청동왕관을 쓴 해골은 서서히, 거대한 관문처럼 뒤바꿔 간다.

 "멍청이!"

 두보아는 자기에게 타박을 주는 리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제서야 몰려드는 망자들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보아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흐릿하게 자신의 옆에서 떠있는 리키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본, 창백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얼굴. 리키는 시린 푸른 눈동자로, 청동왕관을 쓴 해골이었던 관문을 보며 말했다. 

 "지옥문이 열리고 있어"

 점점 완성되가는 관문은, 안쪽에서 무섭게 두들기는 소리가 해골 악단의 음악소리를 타고 울려퍼졌다.


  [반딧불 / 06.16 20:13]

  ‘므와아.. 뫄뤼아....’

  “으음...”

  쿠웅!

  ‘므와아.. 므아아아리아,,,’

  쿠웅!

  크리스의 귀에서 큰 울림 소리와 함께 명확하게 들리지 않고, 반복되며 뭉개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쿠웅!

  ‘므와아... 느와아리아’

  쿠웅!

  “으으음...”

  크리스의 귀에서 반복적으로 울리던 소리는 점점 뚜렷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치는 듯한 큰 울림소리 역시도 더욱 뚜렷하게 들리며 점점 커진다.

  쿠웅!

  ‘느와아아.... 나리아!!!’

  “으아아악”

  머릿속을 울려대던 소리와 말소리에 깜짝 놀란 크리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굉장히 시끌시끌한 소리에 서서히 고개를 좌측으로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쿵떡 쿵떡 쿵떡

  오우거를 닮은 괴기스러운 거대한 해골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난쟁이 해공들이 뼈같이 보이는 북을 들고 일제히 노래에 맞춰 연주하고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뼈로 이루어진 듯한 거대한 관문이 우뚝 서있었다. 크리스는 난생 처음 보는 현실에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너털 오른손을 든다.

  짝!

  그리고 난데없이 자신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아직도 입을 다물지 않은 크리스는 다시 왼손을 들어 왼쪽 뺨을 마저 갈겼다. 그리고는 휘둥그레 눈을 뜨며 외쳤다.

  “으아아아악!!!”

  크리스는 자신의 뺨을 때려 불그스름해진 채 그대로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우측 편으로 살바토르와 전에 봤던 치키니라는 사람이 보였다.

  챙! 데구르르

  “이제 엄마한테 좀 처맞아야지. 치키니 이 염병할새끼야?”

  살바토르의 일격에 검을 놓친 치키니는 그대로 살바토르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런 치키니의 앞에 살바토르는 검을 치키니의 면전 앞으로 들이밀고 있었고, 치키니는 자신의 앞에 들이민 검의 끝자락에 시선이 갔다가 살바토르의 표정을 물끄러미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내 크게 웃어댔다.

  “크하하하하”

  “뭐지 이 미친새끼가 실성했나”

  치키니는 짧게 대소(大笑)했다가 멈추며 말없이 살바토르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일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입꼬리에 화가 치민 살바토르는 이내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어깨에 가져갔다. 그리고 치키니를 벨 생각에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간 채로 치키니의 목을 향해 검을 휘날린다. 그런데 그 순간.

  ‘그아아아악’

  “읍”

  살바토르가 검을 날리다 말고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온 거대한 악령에 놀라 흠칫하며 치키니를 향해 베어가던 검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틀어 악령을 향해 사선으로 베어냈다. 악령을 베니 마치 연기를 베듯 허황없이 검이 방향이 힘을 잃고 하늘로 치솟았다. 살바토르는 연이어 당황을 금치 못했고, 벤 자리엔 검은색 연기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악령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정면으로 날아왔다.

  ‘그아아아아’

  살바토르는 우뚝 들고있는 검을 그대로 내려치며 연이어 오는 악령을 베어냈지만, 연기를 벤 느낌이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악령을 벤 검은색 연기가 사라지자 바닥에 있어야할 치키니가 없어져있었다.

  “제길!”

  살바토르가 주변을 살펴보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치키니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치키니가 가는 방향엔 미쳐 신경쓰지 못했던 거대한 기타를 치는 오우거와 북치는 난쟁이 해골들, 그리고 그 뒤쪽으로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관문이 우뚝서있었다.

  “이런 씨부럴 이건 또 뭐야”

  살바토르가 그 자리에 서서 어이없다는 듯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크리스가 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살바토르의 그런 모습을 보며 살바토르도 나와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크리스가 잠시 넋넣고 있는 사이, 바짝 옆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크어억.. 크아아악..”

  망자 한 마리가 어느새 크리스의 면전 앞에 와있었다. 크리스는 망자에게 시선이 돌아가다 말고 갑자기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으억”

  크리스가 쓰러지는 모습은 누가 봐도 연기처럼 보였고, 크리스는 망자의 접근에 일단 죽는 척을 했다. 망자 한 마리는 크리스 곁에 다가와 허리를 숙여 크리스의 몸을 코로 큼큼 냄새를 몇 번 맡더니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어 일어서고는 자리를 떠났다. 크리스는 눈을 힐끔 떠서 망자가 가는 것을 보며 벌떡 일어났는데, 돌아가던 망자는 갑자기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즉시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꿀꺽”

  적막한 침묵이 몇 초간 흘렀다. 그리고 크리스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벌떡 일어나서 냅다 달리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저리가! 저리가! 좀비 따위 질색이란말야!”

  크리스가 이리저리 달려다니는 것을 보며 망자가 대뜸 크리스를 뒤쫓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망자들도 크리스의 괴성에 멈춰서서 크리스를 다들 한번씩 보고는, 연이어서 크리스를 뒤쫓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양손을 올린 채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그 사이 뒤에 쫓아오나 싶어서 슬쩍 고개를 돌렸더니 망자 대군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는 식겁하며 더욱더 괴성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아아악!!! 이런거!! 딱!! 질색이야!!! 으아아아악!!”

  크리스가 괴성을 질러대며 동굴 안을 휘젓는 덕에 더욱더 많은 망자들이 크리스의 뒤를 따라 떼를 지어 쫓아다녔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크리스는 바로 앞에 망자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크리스는 망자의 앞에 멈춰서서 망자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가방에서 포크를 하나 쏙 꺼내더니, 포크로 망자에게 찌르는 시늉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오지마! 너! 오지마! 너! 죽인다!”

  공포를 모르는 망자는 그저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다가갔고, 크리스는 망자를 정말 무서워 하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크리스는 다가오는 망자를 향해 포크를 연이어 허공에 찔러대다가 그대로 걸어오는 망자의 눈을 찔렀다가 포크를 빼냈는데, 하필 그 포크에는 망자의 눈깔이 뽑혀서 나왔다. 뽑아낸 망자의 눈깔을 보며 기겁하며 포크를 잡아든 채 냅다 망자를 피해 옆으로 달려다녔다.

  “끄아아아아아!!!”

  그렇게 달리던 도중 눈앞에 두보아와 하퍼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크리스의 모습에 두보아와 하퍼가 의문을 가진 채 바라본다. 

  “뭐, 뭐죠? 크리스?”

  두보아가 크리스의 모습에 당황한 채 물었지만, 크리스는 그저 괴성을 지른채 달려왔고, 마치 두보아와 하퍼를 보지 못한 듯이, 그냥 지나쳐갔다. 두보아와 하퍼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크리스가 지나가는 뒷모습만 멀뚱히 보고 있었는데, 크리스가 하퍼의 앞에 지나가는 사이 망자의 눈깔이 꽂힌 포크를 손에 놓쳐 공중에 빙빙 돌다가 정확히 하퍼의 뒷머리에 비녀처럼 꽂혔다. 그런데 둘은 크리스의 모습에 포크가 머리칼에 꽂히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크리스의 행동에 이상한 느낌을 받은 두보아와 하퍼는 동시에 크리스가 지나왔던 길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어마어마한 망자 대군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두보아아 하퍼는 입을 쩌억 벌렸고, 이내 하퍼와 두보아는 서로 쳐다보더니, 서로같이 크리스가 달려간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의 욕짓거리가 들렸다.

  

  [홍차매니아 / 06.19 12:17]

  “저 새끼들! 어디로 튀는거야!”

기껏 동료들과 합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들이 어디론가로 튄다.

그 뒤로 수없이 많은 망자들과 해골들이 뒤따른다.

“아니 니미럴. 뭔 짓거릴 했길래 저것들도 뒤따라가는거야?”

살바토르는 허탈해 했다.

대체 동료들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뭉쳐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보려 해도 모자랄판데 갑자기 도주하다니.

그는 눈앞에 가득 들어온 청동왕관의 거대한 해골과 이를 중심으로 도열한 수많은 해골들, 망자들 등등.

마치 종말이 시작됬을 때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의 군대가 이런 진용일까 싶었다.

이제껏 베어넘겼던 망자들보다 곱절은 더 많은 넋나간 사람형상을 한 무언가가 진군한다.

크고작은 해골병단들도 이에 함께한다.

낡아 문드러져 군대군대가 부서져나간 방패로 진용을 갖추고 칼날에 이가 나간 검을 들며 진형을 갖춘다.

여기에 시선을 두는 살바토르는 이를 악물었다.

“썅!”

그는 짧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는 그 위에 다시 코이프(사슬 갑옷에 연결된 일종의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가죽 끈으로 단단히 조여맸다.

괜히 후회되는게, 이럴줄 알았다면 투구도 가져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양손검을 들어 올려 얼굴 오른편에 세웠다.

청동왕관을 쓴 해골왕은 살바토르쪽으로 돌아본다.

눈동자가 없으니 뭘 보는지 분간이 안되나, 분명한건 저 해골바가지의 얼굴 형상이 살바토르쪽으로 향해있다는 것이다.

살바토르는 좋지 않은 예감에 온몸을 전율했다.

“퉤.”

그 불안감을 떨쳐내려하는 듯 그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덤벼. 이 빌어 처먹을 염병할 해골바가지들.”

해골왕이 살바토르를 향해서 손가락을 뻗는다.

그와 동시에 뼈밖에 안남은 기병 하나가 나타나 검을 빼들어 무어라 소리친다.

주인의 지휘에 맞추어 뼈다귀 말이 앞발을 든다.

주변에 포진한 병사들이 일제히 좌우로 흩어지며 살바토르를 감싸듯 달려든다.

여지껏 공드려 짠 포진을 망치며 산개하며 달려든다.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상황을 파악한 살바토르는 자신을 포위하는 좌우익 중 한쪽으로 달려들었다.

달려가던 해골 하나가 멈춰서더니 살바토르와 마주 달린다.

군데군데 파손된 원 방패를 들고 도끼를 치켜든다.

함성을 지르려는 듯 아래턱이 벌여진다.

“흡!”

이에 맞서 살바토르도 짧게 기합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둘럿다.

퍼석

크고 장대한 양손검과 그의 무지막지한 힘 덕택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에게 달려든 해골 하나가 두 동각이 난다.

다른 해골이 옆에서 달려든다.

검을 쓰기엔 다소 짧다.

그 즉시 살바토르는 몸을 빙글 돌려 달려드는 해골과 마주했다.

왼손을 손보호대 위 리캇소를 잡으며 양손검을 짧게 고쳐 잡는다.

그는 창술을 벌이는 것처럼 위에서 떨어지는 해골병사의 무기를 짧게 고쳐잡은 무기로 옆으로 걷어내더니 그 빈틈으로 칼날을 찔러넣었다.

입 한가운데 칼날을 맞은 해골 병사는 이내 실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그런 그의 뒤에서 다른 병사가 장검을 들고 달려든다.

“그아아아아-.”

무저갱에서 아우성치는 망자들의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살바토르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기가 떨어지고 있는 등짝은 사슬갑옷으로 단단히 보호받고 있었다.

찰싹 거리는 충격에 살바토르는 깜짝 놀라며 발작적으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사슬갑옷이 감싼 두터운 팔뚝은 그자체로도 거대한 철퇴였다.

퍽-!

“항아리 깨진 기분이 어떠냐? 이 망한 놈들아. 엉? 참고로 머리통이 항아리다.”

아주 가볍게 뒤를 공격한 해골병사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살바토르는 해골 병사의 머리통에 꽂혀 있던 양손검을 뽑아 들었다.

“이야아아아아아!”

허공을 찢어내는 듯 기합을 내지르며 그는 온힘을 다해 사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번 칼날이 번뜩일 때 마다 수많은 죽은 자들의 몸이 박살이 나고 흩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군세는 끝이 날줄을 몰랐다.

해골왕의 뒤편 어둠속에서 죽은자들의 행렬이 계속해서 밀려나온다.

이러다간 중과부적으로 이 군세에 밀릴 것이다.

‘도망쳐야겠군.’

살바토르는 동료들이 사라진 구멍으로 시선을 두었다.



  [별바 / 06.19 13:14]

  

  [반딧불 / 06.19 17:53]

  두보아와 리키가 대화하는 말이 일행이 있는 구멍에 울려퍼졌다. 그 덕분에 크리스는 듣고 싶지 않아도 대화를 들 수 밖에 없었고, 더욱이 외부로부터 두보아가 만든 나무 벽을 성난 듯이 두드리는 망자들의 소리는 더욱더 무서웠다.

  다닥 다닥 다닥 · · · 

  쩌적

  두보아가 만든 나무 벽이 망자들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는 소리마져 들린다. 그 소리에 일순간 일행들과 말을 하던 리키에게 적막함과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리키가 적막함을 깨고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곳도 곧 위험해질 것 같아. 나야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빨리 방법을 모색해야할 거야.”

  두보아가 난처한 기색을 표한다.

  “방법은 정면돌파 뿐인가..”

  두보아가 슬쩍 크리스가 있는 곳에 시선이 갔다.

  ‘외부에는 살바토르, 그리고 크리스가 저러니.. 이래서야 암살자라고 해도..’

  문득 생각이 떠오른 두보아가 얼굴에 느낌표를 띄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주먹을 쥔 채 왼손바닥을 내려친다.

  “어차피 저기 좀비들도 크리스가 끌고 온거잖아요.”

  두보아의 말에 일행들이 크리스에게 시선을 향한다. 그리고 크리스도 두보아의 입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소리를 듣고 두보아에게 시선이 향했다.

  “크리스는 암살자지요..? 그렇죠?”

  크리스는 대답없이 두보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보아의 말에 리키가 두보아에게 시선이 갔다가 크리스를 번갈아보며 비아냥거렸다.

  “으엑, 저 겁쟁이가 암살자란 말야?”

  두보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멍!”

  럭키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보아를 바라보며 밝게 짖었다. 그리고 럭키의 짖음때문인지 외부를 두드리는 망자의 타격소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 소리는 마치 수백만명이 도망치는 듯한 울부짖음과 같았다.

  “말하고 싶은 건!”

  두보아가 말 한마디를 외치고는 갑자기 크리스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웅크리고 있는 크리스의 멱살을 잡아 올린 채 고개를 크리스 얼굴 앞으로 들이밀며 응시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크리스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제 애 같은 짓은 그만 둬야하는 겁니다 크리스. 이제 크리스 당신이 나서줘야 할 차례에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다 죽습니다.”

  굳건한 두보아의 의지가 눈동자 속에서 불타오른다. 크리스는 두보아에게 멱살이 들려있는 채로 아무말 하지 못하고 떨림만 느껴졌다. 크리스가 두보아의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지...”

  두보아가 슬그머니 크리스의 멱살을 풀었고, 크리스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부터 벽을 타 넘고가서 저 망자 떼를 다른 곳으로 유인해주세요. 그리고 이 위치가 은근히 좋은 이유가, 드래곤의 머리 뼈와 가깝습니다. 크리스가 적들을 유인해주면 우리는 드래곤의 머리 뼈 뒤로 돌아갈겁니다. 그 곳엔 반드시 지하로 가는 길이 있을 겁니다.”

  크리스는 두보아를 올려다보았고, 두보아는 굳은 표정으로 양손에 주먹을 쥐며 크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두보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드득

  두보아의 뒤편으로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다시금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일행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 크리스. 이제 암살자의 힘을 보여줄 때 인거 같습니다. 어서 나가서 시선을 끌어주세요.”

  크리스는 두보아의 뒤 구멍의 입구로 시선이 향했고,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딪고 일어섰다.

  “해,해볼게...”

  “좋아요 크리스. 부탁합니다.”

  크리스가 일행을 뒤로 한 채 나무 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빈센트도 좀비왕을 잡지 못했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저들은 좀비왕이 아니야...’

  크리스가 구멍이 끝나는 지점에 서서 나무 벽을 바라보며 손을 갔다댔다. 그리고 두보아에게 시선이 향했고, 두보아는 크리스의 시선에 말없이 오른손을 뻗었다.

  기이익

  기이하게 나무 벽이 앞으로 살짝 허리를 굽히며 크리스가 올라갈 틈을 만들었다. 크리스는 올라갈 틈을 사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편으로 리키의 말이 들려왔다.

  “내가 살다살다 저렇게 겁쟁이 같은 암살자는 처음 본다. 저래서 파리 한마리나 잡을 수 있긴 한가.”

  리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보아가 하지 말라는 듯이 리키의 손을 잡았다. 리키의 시선이 두보아에게 가자, 두보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에 리키가 한숨쉬며 말했다.

  “알았어!”

  크리스는 그런 일행을 뒤로한 채 나무 벽을 잡고 올라갔다. 평소 암살자들이 하는 벽타기를 배워둔 크리스에게 나무 벽을 잡고 올라가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곧 벽의 끝에 상체만 빼꼼 내밀어서 벽 앞의 상황을 확인했다.

  벽 넘어에는 몇 마리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망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살바토르로 보이는 사람 주변에 꽤 많은 해골병사가 있었는데, 살바토르가 점점 지쳐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오우거와 난쟁이 해골들이 해골관문 근처에서 연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의 좌측편으로 드래곤의 머리뼈와 마법사들이 보였고, 어째서인지 치키니는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는 겁먹은 채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가 자신이 나왔던 구멍입구를 한번 바라보니, 자신을 향해 비아냥 거렸던 리키가 얼굴을 빼꼼 내밀어서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다시 시선을 동굴 광장 쪽을 향했고, 힘차게 양팔을 밀어올려 서서 나무 벽의 끝자락에 올라섰다. 그리고 크리스는 긴장을 가득 머금은 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엔 망자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서서 꽤 높이 올라온 상태였다. 확실히 이런 상황이라면 일행들이 위험했다. 크리스는 눈을 지긋히 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블러드 나이프 길드를 위하여’

  크리스는 팔을 활짝 벌리고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모습에 리키가 탄성을 내질렀다.

  “오 저 녀석 뛰어내렸다”

  두보아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리키의 말에 구멍의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사이 크리스는 망자들 품으로 떨어지는 듯 했는데, 공중에서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고는 망자들을 사뿐 사뿐 밟으며 반대편으로 내달렸고, 크리스에게 집중된 망자들이 크리스를 향해 손을 뻗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넌 내가 먹고 말겠다 라는 본능을 가진 채 크리스를 향해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숨을 꾹참고 수많은 망자들 위를 달리며 발을 디딜 곳을 빠르게 체크하며 발을 옮겼다. 암살자의 본능인 클라우드 워크의 능력 덕분에 망자들이 손을 뻗어도 가볍게 도약하며 순식간에 망자들 떼로부터 반 이상을 지나왔다. 그런데 너무 숨을 오래참은 것 때문인지 크리스의 숨이 가빠올랐고, 순간 집중력을 놓치고 좀비의 손에 발목이 잡혀 좀비들 사이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퍼억

  “끄읍!”

  순식간에 망자들이 몰려들었고, 크리스가 넘어진 자리로 수많은 망자들이 몰려들어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사이 리키가 나무벽 위에 올라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녀석 저기 잡힌 거 같은데 어쩌지”

  두보아가 리키의 말에 손을 뻗어 나무 벽을 내렸다.

  “그럼 지금이 기회다.”

  두보아가 나무 벽을 내리자 몇몇 망자들이 크리스가 있는 곳을 향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두보아의 인기척에 뒤를 돌았는데, 럭키가 그 망자의 목을 물어 뜯고, 두보아가 인근에 있는 망자를 쿼터스태프로 망자를 후려치며 처리해갔다. 그리고 또 하퍼가 활를 좁게 잡은채 인근의 망자의 목을 후려치며 가볍게 처리했고, 그사이 두보아가 멈춰서서 걱정에 찬 눈빛으로 크리스가 있는 망자들의 산 쪽을 살폈다. 두보아가 두리번거리며 망자들의 산 쌓여가고 있는 곳을 바라보니, 망자들의 산 옆으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망자들의 사이로 갈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지나가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두보아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일행을 향해 외쳤다.

  “자 지금이에요! 관문이 열리기 전까지 화룡을 처리하러 가야합니다! 서두르세요!”

  일행은 드래곤의 머리뼈 뒤쪽을 향해 달려갔고, 간간히 멍뚱히 서있는 망자들도 처리해갔다. 그리고 그사이 크리스는 신교자의 고행이라는 암살자의 기술인 후드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달달 떨며 망자들의 사이를 지나갔다. 크리스의 인기척이 굉장히 줄어든 상태에서 망자들이 인간이 아닌 이래야 크리스를 인식하긴 어려웠다. 크리스는 몰려든 망자들 떼를 조금 지나서 고개를 뒤로 돌려 두보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일행은 차질없이 드래곤의 머리 뼈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걸 본 크리스는 한편으로 안심해 했지만, 망자들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가지 않기 위해 다시 정면으로 다서려는 순간, 망자 한 마리가 크리스를 응시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 망자를 자세히 바라보니 처음에 누워있있을 때 자신에게 다가온 망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크리스는 헤하며 멋쩍은 웃음으로 오른손을 들어 망자에게 인사를 했다.

  “헤,헤... 너,너 또보네?”

  망자는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더욱 험상굳은 얼굴로 크리스에게 달려들었고, 크리스는 후드를 뒤로 펄럭이며 발을 뻗어 정면의 망자를 걷어찼다.

  퍼억

  “에라 모르겠다!! 망자들아!! 나 여기있다!! 나잡아봐~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악!”

  크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근처 망자를 발로 딪고 순식간에 올라가 망자들의 떼 위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크리스의 비명에 망자들의 시선이 다시 크리스에게 뺐겼고, 망자들이 다시 크리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망자들의 떼가 끝나는 지점에 착지해 달려나갔다.

  타앗.

  “끙차, 그래도 적응은 별로 안되네, 으아악!! 저리가!”

  그리고 크리스가 달리고 있는 방향은 살바토르가 있는 곳이었다. 크리스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살바토르에게 달려갔고, 살바토르를 바라보니 상당히 지친모습으로 있었는데, 크리스는 정면에 있는 해골병사를 발로 걷어차며 살바토르에게 외쳤다.

  “야!! 튀어!!”

  살바토르는 크리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크리스는 그런 살바토르의 앞을 쌩하며 지나갔다.


  [홍자매니아 / 07.03 07:47]

  “야이 손병신! 어디로 가라는 거야!”

크리스가 달려나가는 모습에 살바토르는 허망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 뒤를 따라서 하퍼와 두보아가 뛰어가고 있었다.

“이봐 저 병신세끼가 대체 뭐라 하는거야!”

“드래곤의 머리쪽으로 가요!”

그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 둘 또한 크리스의 뒤를 따랐다.

아 근데, 왜인지 한명 더 있는거 같은데?

‘왠 여자지?’

두보아 근처를 배회하는 여자를 본거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두리번 거리던 살바토르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장검을 발견했다.

몸을 날려 땅바닥을 구르며 장검을 주으며 그는 동료들의 뒤를 따랐다.


  [별바 / 07.06 12:14]

  리키가 말했다.

"지옥문이 열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두보아가 물었다.

"막을 방법은 없나?"

"당장은...... 없어. 시간이 필요해."

리키의 안색은 안좋았다.

"도움이 필요해"

"그래"

리키의 말에 두보아가 즉각 대꾸했다. 리키가 달리는 크리스에게 소리쳤다.

"얼빵한 친구! 더 시선을 끌어봐! 우리는 저 지옥문이 열리는 시간을 끌테니까!"


  [반딧불 / 07.09 20:13]

  크리스는 리키의 외침에 얼어붙어버렸다. 가뜩이나 좀비무리에서 도망쳐오는데 바지에 오줌쌀뻔한걸 참았는데 또 시선을 끌으라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아니.. 시선을 얼마나 더..”

  누가 들을 수 있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에서 크리스의 기가 죽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크리스는 먼발치에서 정면으로 몰려드는 망자 군단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 망자군단이 몰려오는 소리는 마치 수백마리의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와 같았다. 발디딜 틈없이 채워진 망자군단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크리스는 오른발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정면을 향해 달리려는 폼새를 갖췄다.

  “일단.. 이게 내 역할이라면, 해야만 하는 거겠지.”

  그리고 크리스는 망자 군단의 정면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망자 군단은 정면으로 달려오는 크리스가 먹이라도 되는 마냥 크르릉 거리며 침을 흘려대며 먹이를 향해 더욱더 강하게 지면을 차대며 그 발소리는 전장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소리와 같다. 크리스는 정면의 망자 군단을 향해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창기병이라도 되는 듯 크리스는 맹렬히 달려간다. 그리고 점차 망자 군단과 다다라 갈 때 쯤, 크리스의 이마위로 땀이 한방울 흘러내린다. 그것은 마치 크리스의 긴장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꿀꺽"

  크리스가 마른 침을 크게 삼키고는 다다른 망자 군단을 향해 뛰어든다. 

  “크아아아”

  망자 군단은 바로 앞의 크리스를 향해 먹이를 기다리는 새 새끼처럼 입을 쩌억 벌려댄다. 그리고 크리스는 곧 입을 벌려대는 망자의 얼굴을 오른발로 찬뒤 그대로 밀어내며 그 힘으로 인해 뒤로 쓰러져가는 망자를 도움닫기 삼아 망자 군단의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크리스가 발로 찬 망자로 인해 뒤에 있던 망자들이 속력을 늦추지 못하고 그대로 발이 걸려넘어지며 연쇄적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앞으로 쓰러지는 도미노와 같이 멈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연이어 쓰러졌다. 그리고 크리스는 그 위로 사뿐 사뿐 망자들을 밟아대며 군단의 위를 구름을 밟듯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뒤쪽의 넘어지지 않은 망자들을 유인하며 도미노를 멈추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신나게 날아다니는 크리스를 망자들은 막지 못하며 서로 제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멈추지 못했고, 넘어진 망자들은 아등바등거리며 서로 일어나려하다가 도리어 일어나지 못하는 웃을 수 밖에 없는 현장이 연출되었다. 어느새 망자 군단의 뒤쪽으로 착지한 크리스가 가방에서 로프를 꺼낸 뒤 동굴의 벽에 다가가서 두리번 거리다가 튀어나와있는 바위를 하나 찾아낸 뒤 다가가 로프를 마위에 둘러서 단단하게 동여맸다. 그리고는 뒤쪽에 있던 망자들이 몸을 돌려 오는 것을 한번 흘깃 본 뒤, 바위에 묶인 로프를 톡톡 당겨보며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하고는 곧바로 망자 군단의 외곽으로 달려다니며 로프로 망자 군단을 통째로 묶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 크리스를 모르는 망자들은 크리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들이 엉키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크리스는 적당히 뒤엉키지 않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망자들을 유인하며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바위로부터 뻗어나와 있는 로프를 확인하며 로프의 아래로 슬라이딩했고, 그와중에 로프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남은 로프 부분을 단단히 잡은 채 조금씩 로프를 풀어냈다. 로프에 감싸여진 망자들은 서로 로프에 의해 조여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크리스는 로프의 길이가 거의 끝난 것을 확인하며 로프의 끝부분을 잡은채 땅에 발을 딪고 몸이 기울어질 때까지 더욱더 강하게 로프를 잡아당겼다. 크리스는 로프를 놓지 않을 각오로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로프를 당겼는데, 신음소리까지 날 지경이었다.

  “끄으으!”

  로프로 한데 모은 망자들의 모습은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그랗게 모여 벌레가 우글우글 하듯이 바둥거렸고, 한데 뭉친 망자들은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크아아악”

  “그아아악”

  크리스를 잡아먹으려 벌려댄 입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소리는 먹이를 먹으려 질러대던 소리에서 고통스런 신음 소리로 바뀌었고, 크리스는 한발자국씩 발을 디디며 망자들 쪽으로 다가간 뒤 발로 망자를 밀어내며 손이 닿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곧바로 망자들을 감싸고 있는 로프에 당기고 있던 로프의 끝을 매듭으로 재빨리 묶은 뒤, 망자군단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며 바닥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헥.. 헥..”

  크리스가 머리에서 땀을 한바가지 흘러내리며 주저앉은 채 아비규환인 망자군단을 구경했다.

  “헥... 헥...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크리스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홍차매니아 / 07.18 23: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죽은자들의 군대는 아직 그 수가 제법 많았다.

망자들은 대열을 이루어 천천히 진군해왔다.

살바토르는 그 광경을 냉정하게 꽤뚫어보고 있을 뿐이었다.

“살바토르!”

신경을 온통 망자들에게 쏟아붙고 있던 터라 하퍼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며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뭔데. 빵뎅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 하퍼는 손에 큼지막한 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망자들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걸 저쪽으로 던져요!”

“이게 뭔데?”

“닥치고 던져요!”

그말에 입술을 삐쭉 내민 살바토르는 문득 하퍼의 엉덩이를 찰싹 치면서 그녀의 손에서 병을 낚아챘다.

깜짝 놀라해하며 항의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없이 한쪽 발을 내 딛으며 팔을 길게 뻗어 병을 던졌다.

투사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망자의 대열 위로 놀아올랐다.

이에 급히 하퍼는 활을 꺼내어 미리 준비한 화살에 불을 붙인 다음 살바토르가 던진 병을 향해 쏘아보냈다.

화살은 대열 가운데 위에 떠 있는 병에 명중했다.

쾅-!


  [반딧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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