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추천
2009.03.15 13:41

빛 속의 잿빛 '로드 The Road'

조회 수 548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로드 The Road

  - 빛 속의 잿빛



  '불편한 진실'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은 이따금 사용한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면 이목을 집중시키는 광고 문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책. 성서의 역사적 위치를 생각한다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저는 의문을 던집니다. 성서는 많은 교훈을 전해주었고-의도한 바대로라면-인간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가며 존재해왔습니다. 성서는 읽어보면 맞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 되도록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도록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은 권선징악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고개가 쉽게 끄덕여질 수 있는 이야기만 인간을 빛으로 인도 해줄 수 있는 걸까요?

  성서가 빛의 길을 닦아 놓았다면, <로드>는 인간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인위적으로 묻어놓고 있는 길을 희미한 빛으로 다시 밝혀 독자에게 잿빛 길로 드러나도록 해줍니다. 이 길은 인간이-더 넓게는 생명이 살아있는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나, 단지 빛을 비추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그런 길입니다.

  무엇이 하나의 '진실'을 '불편한 진실'로 인식하게끔 만드는가?

  소설 속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잿빛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잿빛 세계란 황폐화된 세계이며 약탈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무법자란 단어는 의미가 없습니다. 황폐화된 세계에서 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약탈자들은

    
인간을 사냥해 배를 채우기도 합니다. 법은 커녕 윤리의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런 당혹스러우리만치 당연스럽게 황폐한 세계를 작가는 덤덤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그려냅니다. 황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묘사는 한국의 전통 그림에서 추구했던 여백의 미를 보는 듯도 합니다. 여기서 <로드>만의 매력이 하나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여백에 담겨있는 백색이 아닌 잿빛의 세상으로부터 말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사람에게 이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이야기도 무의미하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황폐화되기 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야기를 아들에게 전해주며, 아비 자신은 마치 몽마가 전해준 환상이자 악몽으로서 그것을 잠자리에서 마주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이유입니다.
  어린 아들은 황폐화된 세계밖에 모릅니다. 아버지와 자신이 '불을 운반하는 자'라고 알며 매우 순수합니다.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어른이 아닌 아이입니다. 아들은 아이로 존재합니다.

  다른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랬죠. 아빠가 그랬어요.
  그래.
  그런데 어디 있는 거에요?
  숨어 있지.
  뭘 피해서 숨어 있는 거에요?
  서로를 피해서.

  - 로드 The Road 中


  저는 처음에 의미면에서 깊이 생각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만큼 나중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편하지만 진실은 온전히 그대로 거기에 존재하는 진실이었습니다. 보려고 하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지금 거기에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다만 불편하기 때문에 피했던 것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나자 이후에는 다른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불편한 이유.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우리가 불편하게 받아들이거나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만들어내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몸이 축 쳐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도무지 손 델 수 없는 생명의 이기심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살아있는 생명이 단 한 번 갖는 값진 것이란 인식을 시작한 이래로 절대 그 누구도 버릴 수 없는 이기심을 말입니다. 이렇게 생기는 이기심은 자아에 대한 인지 혹은 인식 능력이 높은 고등 지능 생명체일수록 심해질 겁니다.
  이 이기심 자체가 '나쁘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기심을 가진 인간이 때로 인간 사회에서 어떤 불편한 진실을 마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고 감추고 묻어버린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아이는 항상 궁금해해. 묻고 또 물어. 불편할 정도로. 가끔은 정말 불편하지.

  <로드>는 다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저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 생각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평상시에는 잊고 살려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성서에 비견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간만에 적극 추천하는 소설이 되겠군요. :)
?
  • 비둘기 2010.01.27 22:34

    논어를 읽기 전과 읽은 후가 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

    근사록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님의 리뷰를 보니 제가 책을 눈으로만 읽은 것 같아 몹시 씁쓸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