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04. 10. 無題雜談
습관이 되서 그런지 항상 크로스백을 사면 끈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가더라. 지금 가방도 못 버티긴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계단을 뛰어올라오다가 갑자기 끈이 끊어졌을 때는 가방 자체보다도 주변
시선이 더...가 아니지, 사실 스쿨버스 줄이 길어질까봐 그쪽으론 신경도 안 썼다. 들고 뛰는 게
먼저였으니까. 여튼 그래서 하루 종일 손잡이를 잡고 들고 다녔더니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 피가
잘 안 돌아가나. 집에 와서 두께 1미리 실로 꿰어 놨더니 생각보다 꽤 튼튼해서 원래 상태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대체 가방을 무슨 생각으로 만드는 걸까? ...뭐, 길거리 가게에서 무작정 사버린
나를 탓해야지. 다음 번에 새로 살 때는 캠뉴나 가볼까. 여튼 그런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남은
손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느라 하얗게 질려서 꼼짝 못한다. 발 옆에는 원래 손에 들려 있었던 책을
꾸역꾸역 밀어넣은 종이가방. 이 녀석 너무 먹여서 소화불량이라, 몸통이 옆으로 푹 퍼졌다.
어이...여기서 토하진 마라? 주워담기 힘들다. 밖은 뜨겁다. 봄은 확실히 오긴 왔는데 얘가
꽃샘추위에 쫓겨다니느라 하도 뛰어다녀서 열이 올랐다. 근데 그걸로 나한테 화풀이할 건 뭐냐.
덕분에 얼굴이 따가워 죽겠다. 다행히 버스 천장 뚜껑이 열려있어서 시원한 바람에 숨통이 트였다.
누군진 몰라도 복 받을 거다. 틈은 3센티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공기가 들락날락하기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너무 많이 열리면 바람이 너무 세서 되려 추워지고 너무 적게 열어두면 열어
놓으나마나 한데, 이 뚜껑을 여신 분, 중용의 도를 이런 데다가 실천하시다니. 대단한 내공이다.
중용의 뚜껑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버스 안에 서 있다. 자리가 나도 안 앉는다. 그냥 서 있다보면
자리에 탈만한 사람들이 버스에 오른다. 안 오를 때쯤 되면 거의 내가 내릴 때다. 나름 운동이랍시고
서서 가긴 하는데 무릎과 발목, 다리에겐 적잖은 고역일게다. 사실 내려서 걸어갈 걸 생각하면
버스에서라도 편하게 앉아서 다리를 좀 쉬게 해줘야 말이지. 평소에 안 걷는 것도 아니고. 근데
그런 게 있다.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어떤 이미지의 발현. 그게 좋다.
다른 건 없다. 너무 평범하고 익숙한 건 너무 잘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그게 판화도 아니고, 순간순간
마다 형태는 다 바뀐다. 좀 전에 내가 기둥의 어느 부분에 어느 손가락을 얼마만큼 대고 어느 정도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었는가 하는 건 쓸데없는 문제다. 같으면서 같지 않다. 모순이다. 진퇴양난.
근데 그 창과 방패 장수는 뭘 그걸 고민거리라고 질문 받고 얼굴이 벌개져서 부리나케 도망쳤나
말이다. 절대 못 뚫는 게 없는 창과 절대 못 막는 게 없는 방패라면, 창을 방패에 반쯤 박아버리면
되지 않는가. 그럼 이건 뚫은 것도 아니고 막은 것도 아니여. 뚫린 것도 아니고 막힌 것도 아니여.
여보시오, 무기 장수 양반. 저 버스 뚜껑 여신 분에게 중용의 도를 좀 배우슈. 여튼 평범하고
익숙해서, 하지만 같지 않고 달라서 좋다는 거다. 어..그래서 그게 뭐 어쨌냐고? 어쨌긴.
버스타고 집에 가는 중이란 거지. 어. 그래. 그래. 끊는다.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