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조회 수 4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IEy6co.jpg


"으하하하! 말도 참 예쁘게 잘한다."

하지만 메이아 상등병은 그 호탕한 성격답게 순진한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는 예티를 더욱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경직했던 나와 안젤리카는, 서로를 마주보며 안도했다. 욕설이 예쁜 표현(?)인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제쳐두고서라도 어쨌든 메이아 상등병이 녀석을 좋게 봤다는 게 중요했다.

"어디서 주운 놈이야 대체?"

자신의 품에 안겨서 얌전히 있는 뇽의 머리를 쓰다듬던 메이아 상등병이 우리에게 물어왔다.
참,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나는 우리가 걸어온 경계로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저희도 이동하던 도중에 발견했는데, 아마도 철책선 바깥에서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철책선 바깥? 그걸 어떻게 알아?"
"...덩치는 저래도 생긴 게 예티랑 판박이니까요.
"응? 예티?"

예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던 메이아 상등병은 그제서야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부사수인 세레나 일등병도 덩달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 예티야?"
"네. 생긴 건 정말 예티에요."

이렇게 인간만한 크기를 가진 놈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단언하진 않았다. 귀엽다고 좋아라 하던 메이아 상등병의 표정이 굳자, 그제서야 초소 안의 분위기는 심각해져만 갔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아르펜?"
"...그걸 물어보려고 데려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와 메이아 상등병의 짧은 대화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나와 그녀의 짬 차이는 거의 2년에 가깝다. 통상적으로 그 정도의 차이가 나면 사실 후임의 의사는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나의 영향력을 사실상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그녀의 권위를 세우기에 충분했기에, 조금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겠냐. 일단 소초로 데려가서 보고해야지."

메이아 상등병의 말에 나와 안젤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이 녀석이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겠느냐의 문제였지.

"그래도 절차상 포박은 해야 돼. 마침 내가 들고 있어서 다행이네."

허리춤에서 포승줄을 꺼내드는 메이아 상등병. 그것은 본래 철책선 밖의 타국인이나 유사인종이 올 경우를 대비해 지급되는 물건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해봤자 길 잃은 고블린을 관찰을 위해 포박하는 게 다였지만 말이다.
경계에 나서는 각 분대의 최고 선임자 한명에게만 지급되는 물건이었다. 

"자 손. 니 따라 오려면 이거 묶어야 된다."
"따라 해봐."
 
나와 안젤리카는 양쪽 손목을 붙이며 손포박을 유도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가 잡혀가는 상황이란 것을 모를 리가 없기에, 이제까지의 순수한 모습을 봤음에도 우리는 살짝 긴장했다.

"우웅?"

하지만 그런 걱정을 금세 눈 녹듯이 사라졌다. 뇽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우리의 동작을 따라했다. 표정이 마치 '이렇게 하면 돼?'라는 것 같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세레나 일등병이 두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머 귀여워라."라고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거 참. 예티와 싸운 얘기를 그렇게 들어선가, 도무지 똑같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그러게요. 얘는 진짜 영급 고블린보다 순한데."

포박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뇽을 관찰하는 메이아 상등병이었다.

"규정대로면 전신포박을 하는 게 맞는데, 저항 한줌 안하는거 보니 이러고 데려가도 되겠다. 너희 먼저 조기복귀해라."
"알겠습니다. 먼저 복귀하겠습니다."

나와 안젤리카는 가볍게 경례를 한 뒤 뇽을 데리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녀석은 양손이 구속되어 있음에도 잘만 내려왔다.

"근무서면서 조기복귀하는 건 또 처음이다."

안젤리카의 표정은 꽤나 얼떨떨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최전방의 생포라는 게 경계병 훈련 때 배우기만 하지 정작 실전에 써먹을 일은 없다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경계병의 규정상 철책선 바깥의 존재를 생포하면 바로 조기복귀해 다음 근무자 한개조를 내보내게끔 규정되어 있었다.
뇽을 끌고 소초 앞 검사대까지 도착은 우리는 이 어색한 상황에 잠시 서로를 보며 쓴웃음을 짓다가, 검사대에 달린 종을 흔들어 소초장을 호출했다.

"아니 너네 아직 근무시간인데 왜 내려온 거..."
"안뇽?"

잠시 후, 소초에서 나온 소초장이 제일 먼저 우리를 보며 의아한 기색을 띄운 채 물어보려다, 내가 쥔 포승줄에 묶인 채 태평하게 인사를 건네는 뇽을 보고선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5초 정도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초장이 그제서야 우리에게 물었다.
"저거 뭐냐?"
"예티입니다."
"저 쪼그만한게?
"네. 저도 안믿기지만 말이죠."

말을 마친 내가 간단한 전후사정을 보고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턱을 짚은 채 생각에 골몰해 있던 소초장은, 나를 빤히 보더니, 메이아 상등병과 비슷한 질문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그거야 소초장님이 결정하실 일이죠." 
"그렇다면 나야 상부에 보고하는 수밖에 없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 소초장은, 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손을 뻗었다.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온순하던 뇽이, 그에겐 무척 격한 반응을 보였다.

"크르릉! 싫어!"

표정까지 일그러뜨리며 소리치는 모습은 흡사 지난 겨울에 보았던 그 예티가 연상될 정도였다.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선 소초장. 한동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상부에서 이 괴물을 데려갈 인원이 올 때까지는 너희가 데리고 있도록. 어떤 사고도 일어나선 안된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초장은 다시 소초로 돌아갔는데, 말투나 태도가 몹시 빈정이 상해 보였다. 지켜보던 안젤리카가 나에게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위엄있는 척은 혼자서 다 하디만 함 으르렁 거렸다고 저러는 거 봐라. 소초장 오늘 마법에 걸린 거 아니가?"
"안젤리카, 소초장은 남자잖아..."

내가 황당한 어조로 탄식하자 피식 웃는 안젤리카였다. 뇽도 그녀를 따라 웃는데, 아까 거친 반응을 보이던 녀석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배도 고픈데 밥이나 무러 가자 아르펜."
"응."

나와 안젤리카는 뇽을 데리고 부리나케 식당을 향했다. 그곳을 향하는 길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고 있었는데, 도착하자 라파 상등병과 취사병 신병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서와라. 그런데 어째 너희만 왔냐?"
"이 녀석 때문에 말이죠."

라파 상등병에게, 우리 뒤에서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 뇽을 보여줘 보았다. 녀석은 향긋한 음식 냄새에 취했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었다. 예티가 어떻게 생겼는지 당연히 알리 없는 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야, 정말 희안하게 생겼네? 이 녀석은 정체가 뭐야?"
"...뇽이라고 합니다."

나는 예티라는 말 대신 녀석에게 지어준 이름을 말하였다. 그러자 라파 상등병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취사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뇽의 앞에 내밀어 보였다.

"이거 한번 먹어볼래?"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감자였다. 코를 벌렁거리다 눈이 휘둥그레진 뇽은 그 자리에서 뺏듯이 감자를 낚아챘다. 

덥썩. 우걱우걱.

한입 두입 집어먹다 이내 부숴버리듯이 먹어버리는 뇽. 녀석은 우물거리며 소화를 끝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쥑이네!"
"뭐? 푸하하하. 안젤리카 니가 가르쳤냐?"

라파 상등병은 뇽이 인간의 말을 한다는 사실보다 사투리를 한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었나보다. 그는 한참 배를 부여잡고 웃겨 죽으려고 했다. 안젤리카는 대답 대신 부끄러움과 대견함이 반쯤 혼재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함께 배식을 받고선 자리에 앉았다.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안젤리카 상등병님."
"너도 맛있게 먹어, 아르펜."

고참이 보는 앞이어서 나는 다시 존칭을 썼다. 하지만 서로 말투 자체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으니, 지켜보던 라파 상등병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흐뭇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안젤리카는 바로 앞의 바닥에서 라파 상등병이 내놓은 짬을 맛있게 먹고 있는 뇽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먹이가 귀한 철책선 바깥에서 와서였을까? 녀석은 뭘 주든 잘 먹었다.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바라보던 안젤리카의 표정이 문득, 흐려졌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아르펜."
"네."
"소초장에게 보고만 올린 이 상태 이대로면, 결국 사단이나 그 이상의 차원에서 내려와 녀석을 데려가게 되는 거 아니가?"
"아마도 그렇겠죠."
"다른 방법은 없겠나? 난 이대로 뇽이 상부에 붙잡혀 가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별로 안 편하다. 내 보기에 쟈는 윽시 순수한 것 같은데 니 생각은 어떤데?" 
"저도 마찬가지에요."

안젤리카의 의견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잠시 수저를 놓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우리는 배운대로, 통상의 절차를 따라 분대 최고선임에게 보고후, 소초장에게 보고를 했다. 소초장은 또 중대장에게 보고를 할테고,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사단장과 그 이상급의 높은 사람에게 보고가 올라가겠지. 
사실 이건 내가 평범한 병사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언더 프로즌의 인정을 받고 0번 척살병이라는 직책을 가진 지금은 선택권이 충분히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내가 지는 부담이 꽤 되었다. 그들과 나는 미묘한 밀당을 나누고 있는 사이니깐 말이다.
어떻게 할까 계속해서 생각하던 나는, 이내 무릎을 탁 치며 결론을 내렸다.

"율라 중사님을 한번 만나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