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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복은 불과 2년밖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에 조신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가문사람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안사람이라 칭송받던 그녀는 어느순간 변해갔다.
모든 것이 호화로웠지만 만족을 하지 못했고, 타인에게 상냥한 만큼 자신에게 대하는 짜증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자녀교육에 대하여 광적이다시피한 모습을 보였는데, 연달아 낳은 세 딸을 마법사로 키우는데 매년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갔다고 한다.
샤린의 설명에 따르면, 평범한 마법사는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연구실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마법을 배우고 발전시키는 데에 드는 액수는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탑에서 일과 연구를 병행하게 되는 거라고 한다.
자기 딸들에겐 자신이 한 고통을 답습시키지 않고 싶다는 논리를 펴는 베르실라의 교육방식에 의해 샤린에겐 많은 돈이 필요했다. 당당한 한 마탑의 마탑주였음에도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전국 곳곳을 떠돌며 자신의 명성과 마법을 십분 활용해 타국에서 돈을 벌어 보석화시킨 뒤 베르실라에게 보낸 것이었다.
"갖다줄 시간조차 아까워서 고안한 술식이 바로 차원도약게이트일세. 자네들이 잘 알고 있는 라마스칸 게이트의 시초이지."
"아..."
모두들 입을 벌린 채 신음성만 내고 있었다. 아르고니아 최전방 장병들을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다는 라마스칸 게이트의 정체가 사실은 이런 이유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샤린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떠돌이마탑주 생활하기를 10년째, 문득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을 보고싶다는 생각에 잠시 집에 들르기로 했다네. 그리고 그 판단이 잠식되어 있던 내 정신을 일깨웠네."
그는 부인을 놀래켜주기 위해 투명마법으로 몰래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목격할 수 있었다.
더러운 불륜의 현장을. 그녀는 자신과 만나기전 사귀고 있었다는 수습 마법사 리케르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연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고 따로 조용히 얘기하려고 했었지."
"네네."
메이아 상등병을 제외한 네 명의 여고참들이 얼굴을 들이민 채 샤린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이 썅년이?'라고 소리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흥분한 모습을 보니 이 이야기에 가장 깊게 빠져든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그 판단이 실수였다고 한다. 모습을 드러내 가문을 활보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국왕의 병사들에게 체포당했다. 내막을 알고보니 그것은 애초에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모략의 올가미였다.
떠돌이마탑주로 돌아다닌 10년 동안 베르실라는 모든 구도를 바꾸었다. 부마탑주와 작당해 샤린을 타국에 마법을 팔고 다니는 범죄자로 만들어갔으며, 타라크만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독살하거나 포섭해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감옥에 끌려가기 전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한 그는 상황을 타개하려고 했지만 자신은 이미 5년 전부터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린 국가의 중대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결국 타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했고, 망명하기 전에 부정이 들어 자신의 딸들이라도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라 전체에 자신을 범죄자로 만든 그녀가 딸들이라고 진실을 말했을까?
"더러운 타라크만의 성은 이미 버렸고, 당신은 더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니 당장 꺼지라더군. 이 노구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네."
그때가 생각났는지, 회한 어린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저절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망명지로 아르고니아를 선택한 것은 다른 게 아닐세. 세상에서 제일 알려지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 그렇지. 이 노구도 떠돌이생활 말년에 간 페니아에서 알게 되었으니 말일세. 껄껄껄..."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한모금을 입안에 머금다 내뱉는 샤린의 담배연기만이 보급소 안을 맴돌뿐이었다.
침묵의 도가니가 된 분위기를 조용히 둘러보던 칼라 병사장이 마치 살얼음을 살살 깨듯 슬며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흰 그저... 황송할 뿐입니다."
"허허허! 뭐가 황송하단 말인가? 이 노구도 이 나라에서 육십년을 살면서 이 말을 털어놓은 건 자네들이 처음이야. 다 얘기하고나니 속이 시원하구만."
두 남자의 대화가 적막했던 분위기를 그나마 환기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계를 보던 칼라 병사장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철수할 시간이 된 것이다.
곧 보급부대에서 샤린을 데리러 호위병이 올 것이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호위병이 필요없겠지만 군조직은 절차가 중요한 법이었으니까.
"저기... 샤린님."
나는 이걸 물어볼까말까, 아까부터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샤린이 나를 바라보았다.
"죄, 죄송하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
"샤린님은 결혼하시고 1년만에 부인이 어떤 분인지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이혼할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야, 아르펜...!"
칼라 병사장이 곤란하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지만, 손으로 자신을 제지하는 샤린을 보고선 입을 다물고 눈을 굴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마 이건 이야기를 들으며 분대원 모두가 품은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에게 더 물어볼 용기가 없었을 뿐.
"마도왕국은 결혼한지 1년이 지나고 이혼하면 남편이 부인에게 재산의 7할을 물어야 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미워도 같이 살 수밖에 없었지."
말을 마친 샤린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짚으며 물었다. 
"그리고 자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무서운게 먼지 아는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일세."
그러고선 뒤를 돌아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펜타그라프를 탈출해 페니아를 향하는 배의 갑판에서 망망대해를 멍하니 보며 생각하다보니, 내가 살아있는 사역마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거둘 수 있었지."
"..."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은 없지.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샤린은 뒤돌아선 채,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속시원하게 털어놓았다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후회가 지금까지도 가슴에 사무치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보급부대의 호위병이 오기 전까지 샤린은 다른 화제로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왔습니다 샤린 각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석양이 서서히 질 무렵에야 창을 든 두 명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샤린은 두 병사들과 합류하며 우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만나뵙게 되서 영광이었습니다."
"껄껄껄. 나도 자네들을 만나 다행이었네. 아까 했던 말, 잊지 말게나."
"네. 부디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자네들도 무사히들 전역하시게."
서로 덕담을 나눈 채 샤린은 우리와 헤어졌고, 그러고나서야 우리는 소초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힘들테니 대답은 하지말고 들어. 아마 소초장님이 청소는 열외시킬 테니까, 올라가서 적당히 쉬다 자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돼."
선두에 서서 마법등으로 앞을 밝히며 나아가고 있던 칼라 병사장이 말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숨이 턱 밑으로 차오르는 것을 참으며 부지런히 내려왔던 길을 올랐다. 까마득한 오르막길의 연속이었지만 경계활동으로 단련된 우리에겐 꽤나 익숙한 지형이었다.
물론 오르막길이었기에 아침에 내려갈 때처럼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갈수는 없었다.
"잠깐 쉬었다 가자, 얘들아."
중간지점까지 왔다고 생각할 무렵 칼라 병사장이 뒤로 돌아서며 말했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자리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샤린님이 그렇게 기구한 사연을 가지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상념에 잠겨있던 프레카 상등병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올라가면서도 그 이야기를 생각했었나보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깐.
"베일 일등병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물었다. 베일 일등병은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 이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그래도 그분은 선택할 자유가 있었으니까, 업보라고 생각해. 아르펜이 물었을 때도 그렇게 얘기하셨잖아.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듣고 있다가 위화감이 들었다. 주어도 없는 질문을 묻지도 않고 대답하는 베일 일등병의 목소리엔 은근히 날이 서있었다.
"정략결혼은 죄악이야.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자기의지도 없이 맺어야 하는 거니깐."
"그렇군요..."
"그나저나 펜타그라프도 생각했던 것보다 무서운 곳이네. 이혼하면 남자가 거의 전재산을 토해내야 한다니..."
"아무래도 마도왕국이니깐. 남성보다 여성이 마력감응력이 뛰어난게 정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일거야."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문득 우리가 씻고 나왔을 때 샤린이 한 말을 떠올렸다.
'지금 느끼는 그 기분과 그 감정. 앞으로도 잊지 말게.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짐승이니깐 말일세.'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말은 샤린 본인에게도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슬슬 출발하자."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칼라 병사장의 말에 우리 모두 일어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그랬다. 아직도 갈길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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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마지막입니다.
여담이지만 샤린 타라크만의 과거사는 기러기아빠 개그맨인 배동성씨의 이야기를 보고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그거, 하지 마세요!
  • SKEN 2020.06.19 20:53
    으아니! 궁금했던 샤린의 과거가 기러기아빠의 말로와 슬픔을 집대성한 이야기였다니..ㅠㅠ 이야기를 잘풀으셔서 읽는 이도 이입되서 부들부들하게 되는군요. 그지같은 나라의 제도부터 여자의 악독함과 불륜, 기껏 키워놨더니 은혜도 모르는 딸들 까지 분노의 요소가 아주 싹다 들어가있네요 ㅂㄷㅂㄷ 노인의 남은 여생은 부디 행복하길ㅠㅠ